조세연 의견 반영 없이 현 제도 고수
“기재부, 국감 직후부터 제도 개편 선 긋는 발언”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정부가 최근 상속세 개편에 대해 전문기관의 조언을 반영하지 않은 채 당분간 현재 제도를 고수하겠단 입장을 내놓은 데 대해 뒷말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관련 논의를 주도하지 못했단 비판과 함께 추진 의지 자체가 없었단 분석이 제기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상속세 개편이 필요하단 지적에 대해 적극 검토하겠단 취지의 답변을 내놨다. 당시 기재부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관련 용역을 요청한 상황이라 홍 부총리의 발언을 놓고 상속세 논의가 탄력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기재부는 최근 국회에 제출한 검토 보고서에서 핵심 쟁점이었던 상속세율과 유산취득세 전환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내놨다. 현재 최고세율 50%인 과세체계를 조정하는 건 신중해야 한단 것이다.  

보고서를 보면 일단 기재부는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 세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위이고 총 조세 대비 상속세 비중도 지난해 기준 2.8%로 2019년 OECD 평균인 0.4%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공제 제도를 적극 운영하고 있어 과세 인원이 피상속인 305만명 중 2.9%(1만명)에 불과하고 실효세율이 0.55~35.10%로 명목세율 10~50%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부와 소득 재분배 측면에서 소득세를 보완하는 성격이 있는 상속세 기능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아울러 상속세 과세 강화가 필요하단 의견도 있어 적정한 세 부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어렵단 점을 들며 세율 조정에 신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표=김은실 디자이너
/ 표=김은실 디자이너

하지만 기재부가 용역을 맡긴 조세연 보고서엔 25년째 바뀌지 않는 상속세 공제 한도를 물가 상승에 맞춰 조정해야 한단 내용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공제제도를 오랜 기간 유지한단 것은 고자산가 범위를 확대 적용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공제 금액을 상향 조정하는 것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세연은 지적했다.

물가 상승과 자산가격 상승을 고려하지 않은 공제 금액을 적용할 경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과세 대상이 아니었던 사람들이 과세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고도 했다.

조세연은 상속이나 증여의 과세 대상을 고자산가로 한정짓길 바란다면 공제액을 명목 금액이 아닌 실질 금액으로 전환해 적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물가연동제로 공제액을 물가 상승률에 연동해 조정되도록 하거나 일정 간격을 두고 공제 금액을 상향 조정해야 한단 것이다. 

조세연은 또 상속과 증여간 세 부담 격차를 완화하려면 현재 상속세는 유산세, 증여세는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각각 과세하는 방식을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유산세 방식은 피상속인 또는 증여자가 남긴 총 재산을 기준으로 납부세액을 결정한다. 반면 유산취득세 방식은 각 상속인 또는 수증자가 받은 재산을 기준으로 납부세액을 결정한다. 

기재부는 이같은 조세연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예정된 수순이었단 분석이 나온다. 현실적으로 상속세 개편은 예민한 사안이라 장기간 논의를 거쳐 진행될 수밖에 없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세제가 유산세를 오랫동안 유지하다가 최근 상속세 문제가 불거지면서 유산취득세 필요성이 제기됐다”며 “유산취득세가 바람직하단 얘기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지금 당장 시행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 사망 후 상속세 문제가 본격화됐지만 국세 세법을 다루는 국회에서 여야간 각 당이 추구하는 제대로 된 상속세법 개정안이 제시된 건 아니다”며 “분위기가 충분히 무르익진 않았고 논의할 정도의 배경은 된 수준”이라고 말했다.

정책 현안에 정통한 한 경제 전문가는 “올초 기재부가 상속세제가 불합리한 점이 있다면서 논의를 주도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론 전혀 주도하질 못했다”며 “결과적으로 지금 세율이나 유산세 문제등 주요 현안에 대해 모두 추진이 어렵단 입장을 냈는데, 이유는 분명 있겠지만 가을 조세소위에서 논의하겠단 발상 자체가 무리였다”고 말했다.

기재부가 국감 당시엔 상속세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실제론 바꿀 의지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인사는 “정부 임기말 사회적으로 민감한 상속세법을 지난 여름 세법 개정안 때도 아니고 정기 국회가 열리는 11월 중반에 논의하겠단 게 말이 되나”라며 “국감 당시 (검토하겠단) 부총리 발언은 둘러대는 답변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한 기재위 의원은 “국감 당시 홍남기 부총리가 상속세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지만, 국감 직후 기재부는 검토란 말이 상속세 개편을 반드시 할 계획을 갖고 얘기한 건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를 해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19일까지 기재소위가 열리지만 상속세 관련 논의가 진전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다른 기재위 관계자는 “언론에서 호들갑을 떨었지만 의미가 없는 게 올해 조세소위 안건에 관련 상속세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논의 자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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