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F행정소송 항소 촉구·중도상환수수료 감면 등 직접 개입 사례 증가
금감원장 해임요구권 부여 법안도 등장···국회 본연 역할로 제한돼야

[시사저널e=이기욱 기자] 정부, 금융당국이 금융사들의 경영에 개입하는 ‘관치(官治)금융’은 오랜 기간 국내 금융산업의 가장 큰 고질병 중 하나로 존재해왔다. 정부가 CEO의 선임에도 관여했던 과거에 비해 그 정도가 완화되기는 했지만 현재까지도 금융사들은 수많은 관치에 시달리며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관치를 뛰어넘는 정치(政治)금융까지 가세해 금융사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과거에도 정치권은 금융당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금융산업에 영향력을 행사해왔지만 그 압박 강도가 점차 강해지고 있고 개입 방법도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정무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 12명이 우리은행 DLF(파생결합펀드) 중징계 관련 행정소송 항소 여부를 놓고 고민을 하고 있던 금융감독원에 직접적인 압박을 가했다. 당시 의원들을 “항소를 포기하는 것은 금감원이 자신들의 제재 조치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며 “그렇다면 제재 조치에 참여한 사람들은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책임소재를 추궁하는 의원들의 발언에 금감원은 항소로 응답했고 1심 승소를 통해 해소됐던 우리금융지주의 CEO리스크는 재발됐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는 은행의 수수료 산정 시스템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한 여당 의원이 윤종원 기업은행장에게 가계대출의 중도상환수수료를 면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하자 윤 행장은 “중도상환 수수료의 한시적 면제·감면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지난 1일 실제로 기업은행은 내년 3월까지 가계대출의 중도상환수수료를 50% 감면하겠다고 발표했다.

금융감독기구에 국회가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법안까지 등장하고 있다. 정무위 소속의 한 야당 의원은 지난달 국회 상임위원회에 금감원장의 해임요구권 부여하는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금감원장 해임요구권뿐만 아니라 금감원 결산·인력운용계획안 등에 대한 승인 권한까지 국회 상임위에 부여하고 있다. 금융사에 대한 금감원의 처분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판단할 경우 국회 소관 상임위가 의결을 거쳐 그 처분의 취소 또는 집행의 정지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민간 금융사에까지 국회가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금융산업에 대한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의 가장 큰 문제점은 표를 위한 포퓰리즘이 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금융당국과의 관계 설정만으로도 버거운 금융사들에게 추가적인 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

금융은 민생과 직결돼 있다. 때문에 정치권이 금융산업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범위는 입법과 정부기관에 대한 감독 등 국회 본연의 역할에 제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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