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공모에서 낙마, 오 시장 권유로 재도전
2006년부터 인연, 취임 직후 정책 조언 구해
정책적 교감 상당···부동산 정책 힘 실어줄 듯

오세훈 서울시장이 김헌동 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을 SH 사장 최종 후보자로 내정했다. 임명 의지가 강한 만큼 두 사람이 서울 부동산 정책을 위한 한배를 탈 가능성이 높아졌다.  / 그래픽=시사저널e DB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김헌동 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과 한배를 탈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8월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공모에서 낙마했던 김 본부장을 재공모를 통해 SH 사장 최종 후보자로 낙점하면서다. 서울시 안팎의 반발과 우려에도 김 전 본부장을 임명하겠다는 오 시장의 의지는 확고하다. 그동안 두 사람이 교감이 많았던 만큼 부동산 정책에 힘을 실어 줄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장기적으론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적 포석이란 해석도 나온다.

◇재수 끝에 SH 사장 최종 후보로 내정···오 시장, 임명 의지 강해

18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시는 지난 12일 SH 사장 3차 공모에서 최종 후보로 추천된 김 전 본부장에 대한 인사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검증 과정 이후 서울시의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최종 임명한다. 다만 시와 시의회가 맺은 인사청문회 관련 협약에 따라 인사청문회에서 ‘부적격’ 의견이 나오더라도 임명을 강행할 수 있다.

김 전 본부장의 SH 사장 도전은 이번이 두 번째다. 김 전 본부장은 김현아 전 SH 사장 후보가 ‘다주택 논란’으로 탈락한 이후 오 시장의 제안으로 SH 사장 2차 공모에 응했다. 하지만 지난 8월 SH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의 면접에서 탈락했다. 여당 소속 시의회 위원들이 낙제점을 준 것이 영향을 미쳤다. 이후 임추위가 후보 2명을 추천했지만 오 시장이 모두 부적격 판단을 내리면서 3차 공모가 실시됐다.

김 전 본부장이 재공모에 나선 것은 오 시장이 공모 지원을 다시 권유하면서다. 오 시장이 재차 지원사격에 나선 만큼 김 전 본부장의 임명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오 시장은 김 전 본부장이 한차례 낙마한 이후 공개적으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 3일 서울시의회 시정질문에 출석해 “김 전 본부장님 같은 분을 모셔서 서울 아파트값을 잡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정책적 판단을 했다” 며 “그분께 응모를 제안 드렸고 다행스럽게도 그분이 거기에 응해 주셨다”고 말했다.

◇2006년부터 인연···김 전 본부장 제안한 정책으로 효과 톡톡 

오 시장이 김 전 본부장 모시기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집값 안정을 위한 부동산 정책 모델을 함께 만들 수 있는 적임자라고 판단해서다. 사실 두 사람은 서울시 정책을 두고 과거 머리를 맞댄 적이 있다. 인연은 오 시장이 서울시장에 당선된 2006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오 시장은 김 전 본부장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 김 전 본부장은 후분양제와 분양가 원가 공개, 분양가 상한제 등의 정책을 제안했고, 오 시장은 이를 받아들였다.

시장에 적용하자 효과는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2006년 9월 80% 완공 후 후분양 도입을 선언했다. 은평뉴타운 등지에서 후분양으로 공급된 아파트는 선분양보다 분양가격을 10% 낮출 수 있었다. 후분양제를 통해 건설원가를 면밀히 검증한 덕분이다. 이어 분양원가 공개 항목도 61개로 대폭 확대했다. 당시 서울 장지, 발산지구는 61개 항목을 공개하지 않은 판교 신도시에 비해 3.3㎡당 평균 분양가가 500만∼700만원 낮았다. 당시 건설업계 투명성 확보와 서울 집값 안정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두 사람이 서로 신뢰를 가진 배경이다. 김 전 본부장은 오 시장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서울시장 오세훈TV’에 수차례 출연해 오 시장의 정책을 적극 지지하기도 했다.   

◇토지부임대 주택, 오세훈표 ‘반값 아파트’ 기대···“대권 위한 정치적 자산 확보” 

이번에 오 시장이 기대하는 정책은 ‘토지부임대 주택’이다. 토지임대부 주택은 토지 소유권은 공공이 갖고 건물만 분양하는 주택이다. 아파트 원가에서 60%를 차지하는 토지 가격이 제외되기 때문에 분양가를 절반 이하로 낮출 수 있어 최근 집값 폭등을 막을 대안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오 시장은 후보 시절 강남구 서울의료원 부지 등을 꼽으며 SH 주도로 반값 아파트를 공급하겠다고 공약했다. 토지임대부 주택은 김 전 본부장이 줄곧 주장해 온 사안이기도 하다. 김 전 본부장은 SH 사장이 될 경우 토지임대부 주택을 활용해 강남에서도 30평형대 아파트를 3억원에 공급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실현된다면 오 시장 역시 ‘서울 반값 아파트 공급’이라는 새로운 부동산 정책 모델을 확보하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오 시장의 정치적 행보에 도움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오 시장이 대권주자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집값 안정화 등 가시적인 성과가 필요하다”며 “집값 폭등으로 불만이 많은 상황에서 서울 시민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기회다”고 말했다. 이어 “SH는 서울시의 주택정책을 전방위로 지원하는 핵심적인 공공기관이다”며 “김 전 본부장의 경우 정책적 교감이 많은 만큼 오 시장이 끝까지 밀고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 전 본부장은 1982년 쌍용건설에 입사해 부장으로 퇴직한 뒤 2000년부터 20년 간 경실련에서 활동한 시민운동가다. 2004년에는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를 세워 분양가 원가 공개, 분양가 상한제, 택지공급체계 개선 등 공급 관련 정책을 제안해왔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수요 억제 중심의 정책으로 인한 집값 폭등을 강하게 비판해 ‘저격수’라는 별명도 얻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을 처음으로 문제 삼고, 최근에는 SH의 공공 주택 고가 분양 의혹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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