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 부동산 관련 대출 한도 축소···주거 안정 대책 마련 시급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기회가 더욱 멀어지고 있다. 정부가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 대출에 이어 집단대출까지 옥죄고 나서면서다. 대출을 받아 ‘빚투’하는 가수요를 막겠다는 의도지만 당장 입주를 앞둔 실수요자들은 대혼란에 빠졌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집단대출 규제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글이 빗발치고 있다. 지난 17일 올라온 '생애최초 주택 구입 꿈 물거품. 집단대출 막혀 웁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은 동의가 1만5000명을 넘었다.

글쓴이는 “현재 신규 분양 아파트 입주 한 달을 앞두고 집단대출을 막는 바람에 고금리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며 “금리가 아무리 높아도 선착순으로라도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 눈치까지 봐야 하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이어 “은행 대출 한도를 막지 말고, 서민과 실입주자들에게는 집단대출을 풀어줘야 한다”며 “힘들게 된 청약, 생애 첫 주택 구입을 이런 식으로 막는 것은 서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거듭해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주문하자 시중은행들은 대출 한도를 대폭 축소하고 있다. NH농협은행에 이어 KB국민은행은 오늘부터 집단대출 관련 입주 잔금대출 취급 시 담보 조사 가격 운영 기준을 ‘KB 시세 또는 감정가액’에서 ‘분양가∙KB시세∙감정가액 중 최저금액’으로 바꿨다. 이 경우 시세보다 낮은 분양가가 기준이 돼 대출 액수는 줄어들게 된다. 입주자들의 자금 조달 계획이 틀어질 수밖에 없다. 집단대출과 동시에 전세대출과 주택담보대출 한도도 축소됐다. 하나은행과 IBK기업은행도 동참했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증가세가 멈추고 자산 시장 버블이 가라앉을 때까지 가계대출 억제를 지속적·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실수요자들의 호소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대출 제한조치는 연말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앞으로도 입주 물량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연말까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신규 입주 물량은 5만4054가구에 달한다. 입주라는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당장 잔금 마련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습이다. 일각에선 돈을 구하지 못한 서민들이 2금융권이나 사금융으로 몰릴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수요자인 청약 당첨자가 본청약과 입주 때까지 겪을 수 있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무주택자들에 대한 대책도 시급하다. 매매∙전셋값이 치솟은 상황에서 대출 규제를 더욱 조여버리면 월세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가계대출이 문제 된다면 중앙은행 금리 인상을 올리고, 집값 급등이 문제라면 공급으로 해결하면 된다. 빚투 가수요와 애꿎은 실수요까지 묶어버린 다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 될 수 있다. 실수요자 보호나 무주택 서민층의 주거 안정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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