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 신규 대환대출 중단···가계대출 규제로 사업 추진 불가능
'빅테크 종속' 걱정하던 대형 은행 "예견된 일"···'관치금융' 우려도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국내 최대 은행인 KB국민은행이 대환대출(대출 갈아타기)을 잠정 중단하면서 금융위원회가 추진하던 비대면 대환대출 플랫폼 사업도 좌초될 가능성이 커졌다. 금융위는 다음 달에 비대면 대환대출 플랫폼을 내놓을 계획이었지만 최근 가계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사업도 중단됐다. 은행권은 앓던 이가 빠졌다는 분위기다. 빅테크(거대 정보기술 기업)에 종속된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기존 은행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으로 사업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최근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전세대출의 타행 상환조건부 신규대출 취급을 오는 29일부터 제한하기로 했다. 다른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이들이 저렴한 금리의 국민은행 대출로 갈아타는 수요를 막기 위한 조치다. 

국민은행이 대환대출을 중단하면서 금융당국이 추진하던 비대면 대환대출 플랫폼 사업도 사실상 백지화되는 분위기다. 다른 시중은행과 인터넷은행들도 신용대출 한도를 줄이는 등 가계대출 총량 관리에 들어간 상황이라 대환대출 플랫폼이 구축돼도 실제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는 당초 다음 달까지 은행권을 시작으로 카드와 캐피탈, 상호금융, 저축은행 등 금융권을 망라하는 대환대출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계획했다. 대환대출 플랫폼이 구축되면 소비자는 모바일로 각 금융권의 대출금리를 비교해 금리가 낮은 쪽으로 손쉽게 갈아탈 수 있다. 

하지만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금융당국 수장으로 임명되면서 분위기는 급격히 변했다. 고 위원장은 가계대출 줄이기 위해 강한 규제 정책을 시행할 것을 천명했다. 이에 NH농협은행은 주택담보대출 사업 자체를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가계대출 조이기 정책과 상충되는 대환대출 플랫폼도 무기한 연기됐다. 고 위원장은 취임 후 대환대출 플랫폼 사업에 대해 "재검토 기한에 구애받지 않을 것이고 시간이 걸려도 충분히 협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함께 금융위가 최근 카카오페이 등 빅테크 기업의 금융 상품 비교 서비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점도 대환대풀 플랫폼 사업을 시작하기 어렵게 한 요인이 됐다. 

은행권은 예고된 일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위가 애초에 계획을 기존 은행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사업은 계속 갈필을 못잡는 형국이었다”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당국이 가계대출 조이기에 들어가는 바람에 사업도 사실상 어렵게 됐다”라고 말했다.  

전통 은행들은 그간 금융위의 대환대출 플랫폼 사업에 반대했다. 빅테크 기업에 종속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대환대출 플랫폼은 기존 은행이 아닌 핀테크 플랫폼을 활용하는 방안으로 추진했다. 플랫폼을 제공하는 기업 가운데는 카카오페이, 토스 등이 포함됐다. 빅테크 플랫폼에 은행이 대출 상품을 제공한다면 제조와 판매 분리 현상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시중은행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이와 함께 은행이 핀테크에 중개수수료까지 줘야 하는 점도 불만을 키운 요인이다. 

이에 대환대출 플랫폼 준비 기간 내내 잡음이 이어졌다. 금융위의 계획을 납득하지 못한 기존 은행들은 핀테크가 참여하지 않는 은행권 독자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카카오뱅크가 은행권 독자 플랫폼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하면서 은행-빅테크 간의 갈등 구도는 더욱 깊어졌다. 지난달에는 5대 금융지주 회장들이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에게 대환대출 플랫폼 사업 범위를 중금리 대출로 제한하자고 의견을 내기도 했다. 

시중은행은 걱정하던 문제가 사라져서 한 숨 돌렸다는 분위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환대출 플랫폼 사업, 빅테크 금융상품 비교 서비스 등 최근 시중은행이 염려하던 일을 모두 금융위가 알아서 정리해줘서 상황이 묘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관치금융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이 관계자는 “당국의 정책 기조에 따라 사안이 정리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관치금융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셈”이라며 “또 언제 당국의 정책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은행들이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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