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관 사칭·심리 압박 등 수법···“신고·거래정지 절차 간소화 시급”
2012년 7개 기관 참여 협의회 출범···주먹구구 운영에 사기피해 급증

/ 이미지=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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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서울중앙지방검찰청 XXX 수사관입니다. △△년생 OOO씨 맞으시죠. 귀하 명의로 개설된 은행 통장으로 사기 용의자 ◇◇◇로부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돈이 입금됐습니다. 수사를 위한 통화 중 개인정보를 말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정부의 근절 노력에도 최근 수년간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는 오히려 급증하고 있다. 기존 관계기관 협의체가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운영된단 비판과 함께 보이스피싱 신고와 수사, 예방 등을 한 번에 처리 가능한 원스톱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단 조언이 제기된다.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단속에도 온라인 등을 중심으로 보이스피싱 경험담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지난 7일 네티즌 A씨는 가입자 약 106만명 규모의 한 패션 커뮤니티에 자신의 보이스피싱 경험담을 올렸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A씨는 자신의 모르는 휴대전화 번호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 속 인물은 2020년 10월 영등포구에서 A씨 명의로 만들어진 통장이 중고사이트와 포털 등의 사기통장으로 이용돼 피해 금액이 3200만원이라고 바람을 잡았다. A씨가 그 시기에 통장 개설한 적이 없다며 소속을 묻자 서울중앙지검 신 아무개 수사관이라며 보이스피싱을 유도하려 했다.

금융감독원과 경찰청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사기 수법은 크게 정부기관 사칭형과 대출 빙자형으로 나뉘는데 A씨 사례는 정부기관 사칭형에 속한다. 정부기관 사칭형은 먼저 검찰이나 경찰 수사관인 것처럼 구체적 사실관계를 제시하고 전문용어 등을 섞어가며 고압적 말투를 사용해 접근한다. 이어 피해자가 명의도용 등 범죄에 연루돼 조사가 필요하단 방법으로 심리적 압박을 가하면서 고립된 공간으로 유도해 제3자의 도움을 차단한다. 

이들은 개인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며 피해자의 의심을 해소한다. 경우에 따라 수사관이 일정 부분 역할을 수행한 후 다른 사람이 검사 역할을 수행해 신뢰감을 높이기도 한다. 이후 피해자의 계좌 잔액 등 금융자산 현황을 물은 후 자산이 충분할 경우 불법 여부를 확인한 후 원상복구해주겠단 명목 등으로 국가안전계좌 등으로 자금을 송금하거나 직접 전달하도록 유도한다.  

이같은 사기 수법은 이미 정부가 매뉴얼을 만들어 대국민 계도에 나섰던 내용이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공공연하게 사기 수법으로 이용되고 있다. 정부의 보이스피싱 근절 노력이 실효를 거두지 못한단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는 지난 2012년 금감원과 법무부, 경찰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7개 기관이 참여한 전기통신금융사기 방지대책협의회를 출범시킨바 있다. 하지만 협의체 설치 이후 지금까지 관계자들이 회의를 연 것은 10여차례에 불과하고 회의록 조차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유동수 의원실 관계자는 “회의 개최 횟수만 봐도 방통위는 8번, 금감원은 17번, 과기부는 2번 등 제각각”이라며 “경찰청은 (협의회를) 총괄하고 있지만 모른다고 한다”며 “회의 내용을 요구했더니 회의 자료를 만든적이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손을 놓은 사이 보이스피싱 피해는 크게 늘었다. 유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5709건이었던 사고 건수는 지난해 3만1681건으로 5.5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피해 금액은 595억원에서 7000억원으로 11.8배 급증했다. 올해는 증가 추세가 더 가파른 상황이다. 1~7월 기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발생 건수는 1676건 증가했고 피해액은 1051억원 많았다.

보이스피싱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계좌 정지가 빨리 되도록 보완책을 마련하는 게 가장 시급하단 조언이다. 지급 거래가 정지돼야 사기범들의 돈 인출이 막히고 해당 금액을 재판 이후 돌려주게 된다. 그런데 신고 절차가 매우 복잡해 골든 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단 지적이다. 

유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는 일단 경찰에 신고를 하고난 뒤 은행에 가서 계좌 거래 정지 요청을 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한 두시간 지나면 피해를 막을 골든타임은 이미 지나간 것”이라며 “한 곳만 전화해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무의미한 상태인 보이스피싱 범정부 협의체를 활성화하기 위해 상설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단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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