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 사장 인선 놓고 신경전
‘박원순 지우기’에 민주당 격분
‘여당 다수’ 서울시의회 등 돌려
정비사업 규제 완화 차질 우려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오세훈표’ 주택 공급 계획에 빨간불이 켜졌다. / 그래픽=시사저널e DB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과 여당 소속 서울시의회 의원들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오세훈표’ 주택 공급이 차질을 빚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등이 담긴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 등 오 시장의 주요 부동산 정책들이 서울시의회의 협조 없이는 실현되기 어려워서다. 취임 당시 약속했던 서울시의회와의 상생과 협치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다. 

◇‘오 시장 추천’ 김헌동 경실련 본부장 탈락 이후 신경전

7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오 시장은 최근 서울주택도시공사(SH) 임원추천위원회가 추천한 SH 사장 후보자 2명을 모두 ‘부적격’으로 판정했다. 앞서 SH 임추위는 지난달 26일 SH 사장 후보자로 정유승 전 SH 도시재생본부장과 한창섭 전 국토교통부 공공주택추진단장을 최종 추천한 바 있다. 이번 결정으로 4개월째 비어있는 SH 사장 자리는 더 공석으로 남아있게 됐다.

업계에선 SH 사장 공석 장기화를 감수하고 오 시장이 내린 결정이 서울시의회와의 갈등에서 비롯됐다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앞서 임추위는 김헌동 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을 후보자 심의에서 탈락시켰다. 여당 소속 시의회 위원들이 낙제점을 준 것이 영향을 미쳤다.

임추위는 서울시(2명), 서울시의회(3명), SH(2명) 등 위원 7명으로 구성됐다. 시의회 위원 모두 더불어 민주당 소속이다. 김 본부장은 오 시장이 직접 추천한 인사였다. 김현아 전 국민의힘 의원이 ‘부동산 4채 보유’ 논란으로 자진 사퇴한 데 이어 오 시장 입장에선 두 번이나 고배를 마신 셈이다.

◇‘박원순 지우기’, 민주당에 미운털···시정질문 파행에 시의회 선전 포고 “오 시장 반민주주의자”   

일각에선 오 시장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 지우기’에 나서면서 민주당에 미운 털이 박혔다는 관측도 나온다. 오 시장은 지난달 본인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서울시장 오세훈TV’를 통해 박 전 시장 시절 추진된 ‘태양광 사업’과 ‘사회주택’의 비리 가능성을 언급했다. 사회주택의 경우 2000억원이 넘는 세금이 투입됐지만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며 담당자에 대한 법적 대응도 예고했다. 이 밖에 법적 박 전 시장의 대표 업적으로 꼽히는 ‘서울로7017’와 ‘한강 노들섬 사업’, ‘재건축 흔적 남기기 정책’ 등도 재검토 되거나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오 시장의 행보가 ‘박원순 지우기’라며 비판에 나섰다. 이날 오전에는 민주당 소속 의원들과 한국사회주택협회가 합동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들은 “오세훈 시장 측 주장은 사회주택 취지를 훼손한데다 통계를 왜곡했다”며 “자체 전수조사 결과 (예산낭비·임대료 기준 위반 등의)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열린 서울시의회 본회의 시정질문에서 관련 내용으로 민주당 소속 시의원들과 충돌했다. 이경선 시의원이 사회주택 정책을 비판한 ‘오세훈TV’ 내용을 문제 삼으면서 별도 답변 기회를 주지 않자 거세게 항의하며 회의장을 퇴장했다. 시의회가 발언 기회를 주는 조건으로, 오 시장이 1시간 40분 만에 본회의장에 돌아왔으나 갈등은 좀처럼 봉합되지 않았다.

급기야 민주당은 오 시장을 향해 사실상 선전포고를 했다. 민주당 서울시의원들의 수장격인 김정태 운영위원장은 시정질문 종료 이후 “10년 만에 의회민주주의 현장이 유린당했다”며 “오 시장은 스스로 반의회주의자, 반민주주의자였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중도 퇴정 사태 이후 시의회 의원들 사이에서 변화된 분위기가 감지된다.

◇‘오세훈표’ 정비사업 규제 완화, 시의회 협조 필수···공급 계획 차질 우려   

양 측의 갈등으로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를 통한 주택 공급 계획도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서울시는 재개발 장벽으로 작용해 온 ‘주거정비지수제’(주민동의율 노후도 등을 점수화해 일정 점수 이상이 돼야 재개발사업 신청을 할 수 있게 한 제도) 폐지와 ‘공공기획’(서울시가 민간 정비사업에 개입해 인허가 과정을 단축시켜주는 제도) 도입, 정비사업 동의절차 간소화 등의 방안을 담은 ‘2025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주거정비 기본계획) 변경을 추진 중이다. 서울시는 공공기획의 경우 이달 말 사업지 공모에 착수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오는 10일 열리는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계획이 무산된다.

서울시가 당장 이번 달 발표를 준비하고 있는 ‘서울비전 2030’과, 연말 발표할 ‘2040 서울플랜’도 서울시의회와 협조 없이는 실현되기 어렵다. 서울비전 2030에는 한강 지천의 활용도를 높이는 이른바 ‘제2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 등 서울시의 5년간 도시계획이, 2040 서울플랜에는 공동주택 35층 층고 제한을 해제하는 방안 등이 담길 예정이다. 두 계획 도두 서울시의회 심의를 받아야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오 시장이 취임할 때만 해도 과거의 악연은 잊고 서로 상생과 협치를 하자는 분위기였으나 지금은 대립이 극에 달했다”며 “앞으로 행정감사와 SH사장 후보 인사청문회, 내년도 예산안 심의 등 서울시와 시의회가 맞부딪히는 자리가 많아 대치 상태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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