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행정 11부, ‘문책경고 등 취소청구의 소’ 선고 공판 진행
5가지 사유 중 한 가지만 인정···금감원 사후 징계 행태 ‘질타’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사진=우리금융그룹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사진=우리금융그룹

[시사저널e=이기욱 기자] 금융권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의 DLF(파생결합펀드)사태 중징계 취소 소송 1심이 손 회장의 승소로 결론났다. 재판부는 손 회장을 비롯한 우리은행 경영진이 내부통제기준에 포함돼야 할 ‘금융상품 선정 절차’를 실질적으로 마련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지만 해당 사항만으로 중징계를 내리기 어렵다고 결론냈다.

오히려 재판부는 금융감독원에 대해 조사결과에 따른 짜맞추기식 사후적 징계 행태를 비판하며 보다 명확하고 예측가능하도록 제도를 개편할 것을 당부했다. 금감원의 이번 패소는 현재 중징계를 앞두고 있는 전·현직 증권사 CEO들과 은행권 CEO들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 11부는 27일 오후 손 회장이 금감원을 상대로 제기한 ‘문책경고 등 취소청구의 소’ 사건의 선고공판을 열었다. 앞서 지난해 1월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는 DLF사태 당시의 관리·감독 책임 소홀 등을 이유로 손 회장에게 문책경고 징계를 내렸고 손 회장은 법적 판단을 받기 위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재판부는 금감원이 제재의 이유로 들었던 5가지 사안 중 단 하나만이 처분 사유로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내부통제를 위한 상품선정절차인 ‘상품선정위원회’를 형식적으로만 마련했을뿐 실질적인 견제 역할을 수행하기는 힘들게 만들어놨다.

가장 문제시 된 것은 상품선정위원회 9명의 위원들에게 의결 결과를 전달하는 절차를 제대로 마련해놓지 않은 점이다. 위원들 사이의 정보유통 절차가 미흡했기 때문에 상품선정위원회의 의결 결과가 상품출시 부서인 WM추진부의 의도에 따라 조작되고 왜곡될 수 있었단 지적이다. 재판부는 이런 구조상의 문제점을 손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사전에 인지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재판부는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은행 내부규정에 반드시 포함돼야 할 내용이 흠결돼 있는지 여부”라며 “우리은행의 ‘정보유통 절차의 흠결’ 때문에 상품선정위원회 위원들이 의사결정 과정의 왜곡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합의제 의사결정 기구로서 기능을 하지못하도록 한 것”이라며 “우리은행이 소비자보호와 시장질서 유지 등을 위해 내부통제기준에 포함시켜야 할 ‘금융상품 선정절차’를 실질적으로 마련하지 않았다고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재판부는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손 회장에 대한 중징계는 취소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금감원의 중징계는 총 5가지의 처분사유가 모두 인정된다는 전제 하에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상품설명절차 생략 등 나머지 4개의 처분사유들은 모두 인정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금감원) 측은 마련된 내부통제규범의 내용이 미흡하거나 실효적이지 않아도 제재를 할 수 있단 입장이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며 “나머지 4가지의 처분 사유를 보면 (우리은행이) 내부통제 규범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처분사유에 법령 위반 내용을 적시했으나 이는 세부 내용이 다소 미흡한 것을 지적한 것에 불과하다”며 “피고는 적법한 것으로 인정된 처분사유의 한도에서 원고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제재 관련 재량권 행사를 다시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오히려 재판부는 금감원의 무리한 중징계에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다. 감독 당국이 조사에서 나온 문제점들을 다소 모호한 내부통제규범 마련 의무에 끼워 맞춰서 제재 근거로 활용했단 지적이다.

재판부는 “금융 감독 당국이 결과에서 유추하고, 그에 꿰맞춰 조사결과에서 나온 문제점에 관한 책임을 사후적으로 묻기 위한 방편으로 내부통제규범 마련의무 부과규정을 이용하는 것은 법치행정의 근간을 흔드는 것으로 허용되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지배구조법과 시행령 등 법령과 고시를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개정해 예측가능성과 실효적 규제가능성을 동시에 높여줄 것을 제안한다”고 조언했다.

이번 재판 결과로 인해 금융당국의 중징계를 앞둔 다른 금융사의 CEO들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윤경은 전 KB증권 대표, 나재철 전 대신증권 대표는 라임펀드 사태와 관련해 금감원으로부터 직무정지 징계를 받은 상태며 박정림 KB증권 대표와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에게도 문책경고 징계가 내려진 상황이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상 증권사 CEO에 대한 최종징계 권한은 금감원장이 아닌 금융위원회에 있기 때문에 이번 재판 결과를 계기로 최종 징계가 경감될 가능성도 있다. 앞서 지난달 6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손 회장의 행정소송 1심 결과를 지켜본 후 라임펀드 관련 CEO징계를 확정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또한 현재 손 회장과 동일하게 DLF사태 중징계로 금감원과 행정소송을 벌이고 있는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의 재판 결과에도 일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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