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핀테크 육성책에 무너진 공정 경쟁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 원칙 없이는 갈등 반복 불가피

[시사저널e=이기욱 기자]대환대출 플랫폼을 둘러싼 주요 시중은행과 금융당국의 갈등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금융당국은 자신들이 추진 중인 대환대출 플랫폼에 은행들을 참여시키기 위해 수 차례 간담회를 열고 의견 조율의 시간을 가졌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현재 주요 시중은행들은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별도의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금융당국 대환대출 플랫폼의 출시 예정 시기가 오는 10월인 점을 감안하면 두 개의 플랫폼이 별도로 운영되는 것을 막기는 힘들어 보인다. 결국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에서 금융사들의 대출 정보를 조회하고 보다 간단히 대환대출을 실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애초의 취지는 그 의미가 크게 퇴색될 수밖에 없게 됐다.

현재 시중은행들과 금융당국이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표면적인 이유는 서비스 범위에 대한 이견이다. 은행들은 대환대출 플랫폼의 서비스 범위를 ‘중금리 대출’로만 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하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기존 은행들의 반발심이다. 금융당국의 대환대출 플랫폼은 빅테크 기업의 앱을 바탕으로 구축될 예정이다. 때문에 해당 플랫폼에 참여하면 자연히 빅테크의 앱을 키워주게 된다는 우려가 은행들 사이에서 커져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빅테크에 대한 반발심을 키운 것은 금융당국의 핀테크 육성 정책이다. 금융산업 혁신을 이유로 빅테크, 핀테크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해준 결과 이들 기업은 기존 금융사들에 비해 유리한 환경에서 빠른 속도로 금융업에 진출했다. 대표적으로 네이버나 카카오 등 대기업들의 금융업 진출을 두고 시민단체 등에서 ‘금산분리 원칙 위반’이라는 지적이 줄곧 제기돼왔으나 금융당국은 특별한 대응에 나서지 않았다.

빅테크 기업에 대한 기존 금융사들의 반발심을 줄이기 위해서는 금융당국부터 새로운 원칙을 수립해야 한다. IT기업들의 시장 진입을 위해 문턱을 낮춰야했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으며 이제는 금융사와 빅테크 기업들이 생존 경쟁을 펼쳐야하는 시기가 됐다.

이미 시중은행들보다 덩치가 작은 지방은행들의 경우 빅테크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지방은행들이 시중은행들과 달리 금융당국의 대환대출 플랫폼에 참여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으로 분석된다.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대환대출 플랫폼과 같은 갈등은 재현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오는 27일 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규제 완화보다는 규제 차별 해소에 중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고 후보자는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서를 통해 “빅테크 금융산업 진출은 디지털 혁신을 촉진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서도 “이것이 제대로 발현되려면 기존 규제와의 규제 상충·공백을 공정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 정권의 남은 임기를 고려하면 고 후보자의 임기는 1년이 채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 기간 안에서라도 확실한 원칙을 세워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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