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치형 제작해온 SK이노, 각형 경력직 채용 실시···“기술확보 차원”
양산 땐 국내유일 각형업체 삼성SDI와 경쟁 불가피···점유율 턱밑 추격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SK이노베이션이 ‘각형배터리’에 힘을 쏟는 분위기다. 2030년 테슬라를 넘어 전기차 판매 1위에 오를 것이라 예견되는 폭스바겐그룹을 비롯한 복수의 완성차업체들이 각형배터리 장착을 유력시함에 따른 대응전략으로 풀이된다.

SK이노베이션이 각형배터리 양산에 나설 경우 삼성SDI와의 신경전도 격화될 전망이다. 삼성SDI는 국내서 유일하게 각형을 제작하는 업체다. SK이노베이션의 턱밑 추격을 허용한 삼성SDI 입장에서는 SK이노베이션의 품종 다변화가 달가울 리 만무하다. 격차가 좁혀진 상태서 SK와 직접적인 수주경쟁을 치르게 되기 때문이다.

12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SK이노베이션은 ‘각형배터리 셀 공정분야’ 경력직 구인공고를 냈다. 배터리는 셀 형태에 따라 각형·원통형·파우치형 등으로 분류된다. 각각 나름의 장단점을 지닌 세 형태의 배터리를 모두 취급하는 업체는 국내에 전무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원통과 파우치형을, 삼성SDI는 각형과 원통형을 생산한다. SK이노베이션은 그동안 파우치형 한 가지 형태만 주력해왔다.

파우치형은 원통·각형의 장점을 개량한 형태며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배터리다. 문제는 완성차업체가 원통형·각형을 고집할 경우 대응이 불가하다는 데 있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LG가 납품하고 있는 전기차 판매 1위 테슬라의 경우 원통형을 고집하고 있다. 테슬라를 넘어설 것으로 유력시되는 폭스바겐그룹은 당초 각형보단 파우치에 무게를 둔 전동화를 계획했으나 올 상반기 각형 탑재 전기차 비중을 80%까지 늘릴 계획임을 공표했다.

폭스바겐그룹은 지분투자를 단행하고 합작사(JV)를 함께 설립한 파트너인 스웨덴의 노스볼트, LG·삼성·SK 국내 배터리 3사, 중국 1위 기업 CATL 등 5개 회사를 핵심 거래처로 두고 있다. 신생기업인 노스볼트를 제외한 양산능력이 검증된 4개 회사 중 각형을 생산하는 곳은 삼성SDI와 CATL 뿐이다. 삼성SDI에 수혜가 예상되지만 K배터리를 배척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업계 안팎의 전언을 종합하면 폭스바겐그룹은 LG·SK 등에도 각형 제작을 요구했다. LG는 이미 두 종류의 배터리를 양산하고 있어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했으나, 파우치형만을 생산해 온 SK는 각형배터리 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SK이노베이션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개발 착수는 지난 5월부터며 단기간 내 일정수준 이상의 성과가 있던 것으로 파악된다.

 

/표=김은실 디자이너
/ 표=김은실 디자이너

문제는 각형 제작능력을 지닌 경력직 절대다수가 삼성SDI 출신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앞서 SK이노베이션의 경력직 채용으로 LG에너지솔루션 출신들이 대거 이동했다. 파우치형만을 고집했기에 LG 인력들이 주를 이룬 셈인데 이 과정에서 영업기밀 침해 논란이 촉발된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번 채용공고를 통해 “전형과정 중 타인의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도록 모든 주의를 다하고 있다”면서 “입사지원서를 포함한 각종 서류에 영업비밀이나 영업비밀로 오인 내지 우려될 수 있는 사항들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한 뒤 제출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럼에도 한 차례 논란의 소지가 발생했던 만큼, 삼성SDI가 이를 예의주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뿐만 아니라 양사의 신경전 또한 격화될 전망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세계시장 점유율 1~4위는 CATL(29.9%), LG에너지솔루션(24.5%), 파나소닉(15.0%), BYD(6.9%) 등이다. 이들의 뒤를 잇는 게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이다. 백분위로 표기된 두 회사의 점유율은 5.9%로 동률이나 사용량 면에서 삼성SDI가 근소하게 앞선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상반기 삼성SDI 점유율은 6.4%였으며, SK이노베이션은 5.0%였다. 업계는 이르면 하반기 SK가 삼성을 추월할 것으로 점친다.

북미 최대규모인 조지아공장 가동이 본격화되는 내년 초부터는 SK이노베이션이 역전을 넘어 삼성SDI와의 격차를 벌릴 수 있을 것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11일(현지시간) 하우 타이 탱 포드 최고 운영책임자(COO)는 JP모건이 주최한 컨퍼런스에서 “블루오벌SK가 미국뿐 아니라, 유럽에도 생산거점을 설립하게 될 것이다”고 발언했다. 블루오벌SK는 지난 5월 포드와 SK이노베이션이 설립을 약속한 배터리JV(조인트벤처)다.

삼성SDI도 미국투자를 계획 중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규모·위치 등이 나오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오는 1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가석방 이후 삼성SDI의 대규모 배터리 투자가 가능할 수 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지만 현재로선 확실치 않다.

한편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각형배터리 상용화를 결정할 단계가 아니며, 이번 채용도 상용화가 목적이 아니다”면서 “다양한 배터리 기술력 확보와 기존 파우치형 배터리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개발 측면에서 실시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 석·박사 중심의 채용을 실시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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