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기간 중 소액연체자, 전액 상환시 신용점수 불이익 없어···금융권 연체이력 공유 제한
성실상환자와 형평성 문제 제기···학습효과 누적시 악의적 연체자 증가 전망

은성수 금융위원장(사진 가운데)이 11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코로나19 신용회복지원 금융권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은성수 금융위원장(사진 가운데)이 11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코로나19 신용회복지원 금융권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이기욱 기자]금융당국의 코로나19 신용회복지원 정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금융당국은 코로나19 사태로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취약 채무자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부 연체 이력을 삭제하는 ‘신용 사면’ 방안을 시행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소액 연체자, 전액 상환 차주만을 지원 대상으로 제한해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침이지만 금융권에서 신용질서 혼란이 발생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유통·통신정보 등 비금융정보를 활용한 선별 지원이 대안으로 제시됐으나 이 역시 현재 신용평가 시스템으로는 실현하기 어렵단 의견이 지배적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11일 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저축은행중앙회 등 주요 금융협회의 기관장들과 ‘코로나19 신용회복지원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간담회에는 소상공인·중소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책 지원이 부족한 개인채무자들을 위한 추가 지원 방안이 논의됐다.

논의 결과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코로나19 기간중 발생한 개인 또는 개인사업자의 소액 연체가 전액 상환된 경우 해당 연체이력을 금융권에 공유하지 않기로 했다. CB사(신용조회회사)가 연체 이력을 신용평가에 활용하는 것도 제한함으로써 연체 이력이 차주의 신용점수와 금융거래 조건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할 방침이다.

이는 지난달 20일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사항에 따른 후속 조치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당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으며 채무 상환 과정에서 연체가 발생한 분들 가운데 그동안 성실하게 상환해 온 분들에 대해서 신용회복을 지원할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금융당국은 이번 조치에 따른 신용평가, 여신심사 결과 등이 향후 금융사 경영실태평가나 직원 내부성과평가 등에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면책조치도 마련하기로 했다. 은 위원장은 “채무 연체로 인해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신용점수 하락, 대출 거절 등 금융접근성 저하가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이는 (코로나19) 위기 이후에도 정상적인 경제생활복귀를 어렵게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신용회복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규모 신용 사면에 따른 모럴헤저드 등의 부작용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은 위원장은 “코로나19란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연체이력에 한정해 지원할 경우 신용질서에 미치는 영향 또한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의 이런 전망과는 달리 금융권에서는 부정적 전망들이 다수 제기되고 있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취약 차주들의 금융접근성을 향상시켜야한다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그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욱 클 것이란 지적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성실상환자와의 형평성 문제다. 소액연체라 할지라도 그 이력을 금융권에서 삭제할 경우 동일한 상황 속에서 채무 상환을 최우선으로 했던 차주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단 의견이다. 연체로 인해 악화된 금융사의 건전성은 고스란히 다른 차주들의 이자 비용 증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성실상환자들은 오히려 불이익을 받아온 셈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신용회복 지원방안의 취지와 방향성에는 백번 공감하기 때문에 (금융사가) 무작정 정책에 반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하지만 자금을 투자 등에 활용하지 않고 대출 이자 상환에 성실하게 사용한 차주들은 ‘바보’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각 차주별 개인 사정을 모두 알 수 없기 때문에 정말로 생활비 등의 돈도 없어서 상환을 못한 것인지 투자 등의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악의적으로 연체를 했는지 알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장기적 관점에서 모럴헤저드로 인한 신용질서 혼란도 발생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 코로나19 이후의 금융시장 안정화에는 도움될 수 있지만 유사한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차주들 사이에서 학습에 의한 악의적 연체가 일어날 수 있단 지적이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만약 다음에 금융위기가 또 한 번 일어난다면 은행원들 조차 ‘우선 대출을 받고 투자를 하자’란 생각을 할 것”이라며 “그로 인한 문제점은 나중에 정부가 구제해줄 것이란 믿음이 사회 전반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소액’의 기준이 어떻게 정해질지 그 대상이 얼마나 될지는 구체적인 정책 방안을 봐야 알겠지만 이를 통해 구제받은 차주들이 나중에 성실하게 상환에 임한다는 보장도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통신정보와 유통정보 등 비금융정보를 활용해 성실 상환에 대한 의지를 보였던 차주들만을 선별해서 지원해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현재의 신용평가 시스템으로는 해당 방식을 정책으로 삼기는 무리가 있는 상황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비금융정보를 활용하면 금융정보만으로 판단하는 것보다는 세부적인 분류가 가능하겠지만 아직 이를 신용 사면 등의 주요 정책에 활용하기는 이르다”며 “각 금융사별 내부 정책에는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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