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그룹 명칭 사용안하는 계열사비중 삼성 39% 현대차 39.6% SK 56.1%
같은 그룹일지라도 브랜드 사용료 지불해야···“규모 작은 회사엔 큰 부담”
브랜드파워 보유 때도 별도사명···“내부매출 高비중 회사 의도된 거리두기”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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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대기업 사명은 ‘삼성+전자’와 같이 그룹 명칭과 영위하는 사업영역을 표기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 같은 작명법은 핵심계열사 일부에 국한된 것으로 파악된다. 그룹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 계열사 수도 상당하다. 규모가 작은 계열사들의 경우 브랜드 사용료 등의 감면을 위해서 별도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타 기업과의 합작사 또는 기존 보유한 브랜드 명칭을 사용하게 되는 경우에도 그룹명을 따르지 않는 다는 게 재계의 설명이다.

30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금년도 공시대상기업집단 자료에 따르면 4대그룹 계열사 수는 330개다. 3위 SK그룹이 148개로 4대그룹뿐 아니라 공시대상 기업들 중 가장 많은 계열사를 보유했다. 삼성·현대자동차·LG그룹은 각각 59개, 53개, 70개 계열사를 거느렸다. 이들 중 그룹명을 사명에 사용하지 않는 기업 수는 ▲삼성 23개사 ▲현대차 21개사 ▲SK 83개사 ▲LG 53개사 등으로 파악됐다.

비율로 보면 ▲삼성 39% ▲현대차 39.6% ▲SK 56.1% ▲LG 75.7% 등이다. 4대그룹 중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낸 LG그룹의 경우 전체 계열사 4분의 3이 별도의 사명을 보유했으며, SK그룹도 절반 이상이 SK란 명칭을 사용치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 역시 계열사 세 곳 중 한 곳이 별도의 사명을 사용 중이며, 현대차그룹 역시 ‘현대’ 또는 ‘현대차’ 사명을 이용하지 않는 계열사 비중이 40%에 육박했다.

현대차그룹은 계열분리된 회사다. 고(故) 정주영 현대 창업주가 구축한 현대그룹은 한 때 확고한 재계 1위 기업집단이었으나 현대상선(현·HMM) 매각으로 중견기업으로 전락한 상황이다. 현대차를 비롯한 현대중공업·현대백화점·HDC현대산업개발그룹 등 분리된 그룹들은 여전히 재계 상위권에 포진했다. 상황적 특성상 ‘현대’라는 사명사용이 제한적일 수 있다. 범(凡)현대 계열사들에 유사한 계열사가 있거나, 신규 론칭 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삼성·SK·LG 등은 사정이 다르다. 삼성·LG의 경우 창업주 타계 후 상속·승계 과정에서 수차례 계열분리를 실시했으나 모태가 유지된 그룹이다. SK는 고 최종건 창업주가 작고한 뒤 동생인 고 최종현 회장이 그룹을 이끌었다. 현재는 최종현 회장의 장남 최태원 회장이 SK를 이끈다. SK 지배구조를 보면 최 회장 일가가 SK㈜를 중심으로, 창업주 3남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과 일가가 SK디스커버리를 중심으로 별도의 지배력을 행사한다. 그룹 내 소그룹 체계인 셈인데 그럼에도 SK란 공통된 브랜드를 유지한다.

그럼에도 이들 세 그룹의 통일되지 않은 계열사 비중이 상당했다. 그나마 삼성은 제일기획·호텔신라 등과 같이 삼성 명칭을 사용하지 않아도 나름의 존재감이 큰 회사들을 제외하면 상당수 회사들이 ‘S(에스)’로 시작하는 특징을 보였다. 삼성의 영문 첫 글자를 공통분모로 삼은 회사로는 보안·부동산서비스 종합기업 에스원이 대표적이다.

 

자료=공정위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자료=공정위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재계 관계자는 “삼성·SK·LG그룹 계열사들 중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회사들은 그룹과 동일한 사명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면서 “상장회사들만 놓고 보면 절대다수가 그룹명을 공유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같은 그룹일지라도 명칭사용은 무료가 아니다”면서 “지주사 또는 핵심회사가 보유하는 경우가 다반사기 때문에 규모가 작을수록 회사부담을 낮춰주기 위해 별도의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지주사 체계인 SK그룹과 LG그룹은 각각 SK㈜와 ㈜LG가 상표권을 보유했다. SK이노베이션·SK하이닉스·LG전자·LG화학 등이 그룹명칭 사용 대가로 이들에 로열티를 지불한다. 지주사의 경우 오너일가의 직접지배력이 높은 회사다. 오너의 수익확대를 위해 지주사가 계열사들에 과도한 로열티 사용료를 요구하진 않는 지 관계당국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규모가 작은 회사들에도 통일된 그룹명을 요구하게 될 경우 수사선상에 오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룹명칭 통일이 기업 가치에 저해되는 경우에도 별도의 사명을 사용하기도 한다. M&A를 통해 인수되거나 태생부터 별도의 브래드를 키워 온 회사들이 이에 해당한다. 최근 기아자동차에서 사명을 변경한 기아의 경우 현대자동차의 대표적인 완성차 브랜드로 널리 알려졌지만, 사명부터 로고·슬로건에 이르기까지 현대차와 별개의 브랜드 아이덴티티(BI)를 자랑한다.

1944년 설립된 기아는 1997년 7월 부도를 맞은 뒤 이듬해 4월 법정관리에 돌입했다. 이듬해 10월 현대차에 인수됐다. 기아를 인수한 현대차그룹은 별도의 브랜드로 유지했다. 기술개발 등은 공유하지만 판매·마케팅·디자인 등은 별도로 운영했다. 그룹 내 경쟁을 유도한 전략은 주효했고 현대차·기아가 내수완성차 시장을 양분하게 됐다.

‘재벌가 여식의 사업’이라 일컬어지는 호텔도 그룹 명칭과 이원화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3녀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사장이 운영하는 사업체들도 그룹과 별개의 BI를 유지하고 있다. 경남 거제에 소재한 삼성호텔은 호텔신라가 아닌 삼성중공업 소유며 호텔신라가 위탁경영 중이다. 이를 제외하면 삼성의 호텔브랜드는 호텔신라·신라스테이 등으로 대표된다.

공교롭게도 두 그룹 광고계열사(제일기획·이노션)들도 전통적인 작명법을 따르지 않았다. 그나마 ‘제일’이란 명칭은 삼성에서 분리된 CJ그룹에서도 공통적으로 사용된 명칭이지만 이노션의 전신이 금강기획임을 감안하면 ‘의도된 거리두기’란 평이 짙다. LG의 광고사업 계열사(지투알·HS애드)도 LG란 사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들은 그룹 내 일감이 주축이다. 당국의 규제로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는 추세지만 그룹사가 곧 고객사다보니 보다 거리를 두려는 것 같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광고업종 외에도 매출의 상당수가 그룹에서 발생하는 회사들도 별도의 이름을 갖는 사례가 잦다. LG그룹 사옥 보수·관리 및 곤지암리조트·골프장 운영사인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S&I코퍼레이션)의 경우에도 회사 이름만 놓고 봤을 땐 LG가 쉬이 연상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회사를 대표하는 사명 설정작업은 매우 중요한 업무로 평가된다”면서 “거듭된 논의를 거쳐 최종 확정되게 된다”고 답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합작사가 아니더라도 모든 계열사가 그룹 명칭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업적 실익여부에 맞춰 회사 명칭이 지어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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