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반도체 1위 인텔 파운드리 도전장···TSMC는 獨공장 염두하기도
하만 인수했지만 전장사업도 암울···스마트폰 경쟁사 애플 車시장 노크
소형전지 1위 이룬 삼성의 배터리사업···LG·SK에 비해 투자속도 늦어
‘극적인 복귀’ 노림수 위함이냐 지적에 재계 “불가능···복귀효과 상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재계 1위 삼성이 정체 중이다. 국내 경제에 끼치는 영향력이 지대하고 각종 신수종사업의 전면에 나서온 기업이기에 경제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삼성의 대대적인 투자와 적극적인 M&A가 후퇴한 시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법리스크 확대된 시기와 맞물렸다는 지적이다. 

이 부회장이 구속·수감된 시기 삼성의 행보가 더욱 정체됐던 게 사실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25일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판결에 승복하고 재상고를 포기했다. 반년여 간 이어져 온 수감생활 기간 동안 삼성의 대외행보도 위축됐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삼성뿐 아니라 국가경제를 위해 이 부회장의 조속한 복귀 필요성을 재계가 피력하는 가운데 과연 이 부회장이 삼성과 국가경제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점도 제기된다.

◇인텔·TSMC·애플·LG 속도 내는 라이벌···삼성은 위기인가

28일 재계와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삼성을 둘러싼 위기감이 고조된 것은 라이벌 회사들의 행보와도 무관치 않다. 핵심수익원인 반도체와 전통적 주력사업인 가전·스마트폰 등을 비롯해 ‘4대 미래사업’으로 점찍은 인공지능(AI)·5G·바이오·전장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사업영역을 구축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 온 삼성은 유독 라이벌이 많은 회사다.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가 각축전을 벌이던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시장에 최근 시스템반도체 1위 인텔이 도전장을 냈다. 인텔이 2025년까지 파운드리 사업 확장을 위한 로드맵을 공개하며 삼성과 TSMC 압박에 나섰다. 두 회사의 주요 고객사들이 인텔로 갈아타게 될 것이란 우려가 확대되는 가운데 TSMC도 미국·일본에 이어 독일에도 신규공장을 설립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반도체 시장에서 재현될 치킨게임을 준비하는 모양새다.

앞서 삼성은 인텔을 제치고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1위에 오르겠다는 청사진을 공개한 바 있다. 파운드리 시장에서도 TSMC를 제치고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의 입지를 다질 전망이었다. 지금과 같은 기세대로라면 삼성의 목표달성은 물론이고, 삼성이 꿈꾼 통합 반도체 주도권을 경쟁사들에 내어줄 위기다. 경쟁사들에 버금가는 대형 프로젝트가 공개돼야 하지만 미국 반도체 추가투자를 제외한 별다른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지 않다.

전장·배터리 분야도 마찬가지다. 삼성의 대표적인 국내 라이벌 기업인 LG가 전장과 전기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중대형 배터리사업에선 LG그룹이 두각을 나타낸다. 스마트폰 사업을 과감히 접은 LG그룹은 LG전자를 통해 전장을 LG화학·LG에너지솔루션 등을 통해 배터리와 배터리소재사업에 적극적인 투자를 펼치고 있다. LG전자는 글로벌 전장기업 마그나와 합작사를 설립했으며, LG배터리는 중국의 CATL과 세계 1위를 다투고 있다.

전장사업은 삼성의 ‘차세대 미래먹거리’로 점쳐졌던 분야다. 삼성이 가장 최근에 단행한 M&A는 2016년 미국 전장업체 하만 인수였다. 80억달러(약 9조2000억원)를 들였다. 당초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현재까지 성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배터리 분야에서도 삼성의 성장속도가 더디다. 한 때 소형전지 세계 1위를 기록하며 높은 기술력을 자랑하는 삼성SDI의 국내 순위는 LG에 이어 2위다.

삼성SDI는 올 2분기 배터리사업 흑자를 달성하며 안정적인 실익을 키워간다는 평을 얻지만 규모의 경제면에선 일부 우려를 낳고 있다. 전기차 시장 대응 초기 삼성도 중국·유럽 등에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했지만 미국 등 신규시장 진입은 다소 뒤쳐진 상황이다. 북미 최대규모 생산라인을 건립 중인 SK이노베이션은 세계 4·5위 수준인 삼성SDI를 넘어 LG·CATL과 함께 글로벌 빅3로 거듭나겠다는 포부와 함께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스마트폰 최대 라이벌 애플의 변화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애플은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한 전기차 ‘아이카(iCAR·가칭)’ 론칭 준비가 한창이다. 아이폰·아이패드 등 기존 제품들과의 호환성을 바탕으로 한 모빌리티 시장 진입을 꿈꾸고 있다. 삼성도 하만을 통해 2019년 구글과 글로벌 완성차 판매량 4위 스텔란티스 전신인 피아트크라이슬러(FCA)와 커넥티드카 생태계 구축을 위한 협력에 나섰지만 현재까지 눈여겨 볼만한 성과를 내진 못했다.

 

삼성 서초사옥. / 사진=연합뉴스
삼성 서초사옥. / 사진=연합뉴스

◇‘극적 복귀효과 연출위한 고의성’ 주장도···재계 “불가능한 의심”

삼성 사업의 속도감이 저해된 것은 2016년 전후다. 이 부회장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에 연루되며 그를 둘러싼 사법리스크가 고조되기 시작했을 시기다.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이 확대된 삼성물산(舊)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도 문제시됐다. 여기에 프로포폴 투약혐의까지 더해져 복역 중인 형과 별개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최근 이 부회장의 가석방 논의가 정치권의 화두다. 가석방은 수형 중인 재소자가 형량 등 일정 요건을 갖춘 상태서 개선의 여지가 뚜렷해 추가적인 형 집행이 불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당국이 임시로 석방하는 것을 일컫는다. 내년 7월 출소가 예정된 이 부회장이 가석방 기본요건 중 하나인 형기의 60%를 채우면서 논의가 본격화된 것으로 파악된다.

당초 재계에서는 대통령의 사면을 요구했다.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주요 경제단체에선 줄곧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등과의 4대그룹 간담회에서도 사면관련 건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대통령이 인가하는 사면은 형벌이 감해지지만, 법무부가 판단하는 가석방은 임시석방이라는 차이가 있다. 가석방일 경우 이 부회장은 형기종료일로부터 5년간 취업제한에 해당돼 즉각적인 경영복귀가 불가능하다. 수감보단 가석방이 낫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하지만, 가석방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사면돼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대두되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고의로 기업활동에 제약을 거는 것이라 의심한다. 사면 또는 가석방 직후 삼성이 주요 계열사·사업 중심으로 대대적인 투자와 M&A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경우 이른바 ‘이재용 복귀효과’를 스스로 입증할 수 있으며, 추후 전개될 이 부회장 관련 재판에서도 이 같은 효과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재계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의심이다”고 입을 모은다. 경쟁사에서도 부정적인 반응들이다. 모 기업 관계자는 “삼성이 점찍은 신수종사업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하고 변화한다는 점이다”면서 “오너 한 사람을 위해 기업활동에 제약을 걸 경우 자칫 경쟁에서 낙오해 되돌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계열사 별 독립경영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반도체·전장·배터리 등 대규모 투자가 절실한 분야일수록 소수의 이사회·경영진이 결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 마련이다”면서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성공한 월급쟁이일 뿐인 그들의 잘못된 선택이 손실의 원인이 될 경우 자리를 보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위 ‘오너의 결단’이라 불리며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오너회사가 지닌 확실한 장점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재계는 이 부회장의 복귀효과가 상당할 것이라 점쳤다. 정체된 투자와 대형 M&A가 활기를 띠고 고용효과 증진 및 외교적 실익으로 이어질만한 성과가 창출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가석방의 경우 이 부회장 개인에 자유를 부여하지만 삼성 및 국가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효과가 제한적인 만큼 특혜시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사면형태가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법무부는 이 부회장을 가석방 예비심사 대상자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선 언급을 삼가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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