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조선, 韓 역전허용 후 엔지니어 맥 끊길 위기···“무너지면 돌이키기 힘들어”
장기불황 거치며 조선소 떠난 숙련공···취업인기도 옛말 우수인재 유치도 한계
인구감소 우려하는 ‘조선 메가시티’···울산시-현대重 동반성장 생태계 구축키로

/그래픽=시사저널e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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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올 상반기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의 44.3%를 수주하고, 고부가가치 선종인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발주량의 94%를 쓸어 담으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국내 조선업계가 고민에 휩싸였다. 각 조선소 도크에 수년 치 일감이 쏟아지는 상황이지만 이를 건조할 숙련 노동자 확보가 난항이다.

2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조선업계는 전반적으로 숙련공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위치한 울산과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거제·옥포조선소가 위치한 경남 거제에서도 공통적으로 문제시되는 양상이다. 현장뿐 아니라 최근 수년 새 사무·연구직 등 조선사 ‘화이트칼라’ 유입도 낮아졌다는 반응이다. 10년 넘게 이어져 온 조선업계 장기불황의 여파가 원인으로 꼽힌다.

현대중공업그룹·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3대 조선사 직원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3만2748명이었으나 금년 1분기 말 3만1522명으로 3개월 새 1200명 넘게 감소했다. 한 때 3사 직원 총수는 5만명에 육박했으나 수년 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게 각 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조선사업은 숱한 하청·협력업체와의 협업이 근간이다. 해당 업체들의 인력유출까지 감안하면 감소폭은 수배에 달할 것이란 전언이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중·후반까지 대학생 희망 취업기업 상위권에 조선사들이 이름에 올랐고, 역시 조선사 및 하청·협력사에서 근무하고자 하는 현장직들도 즐비했던 게 사실이다”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도래한 뒤 조선업계 장기불황을 맞게 되자 일감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유능한 인재는 다른 업종을 택하게 됐고, 현장에서는 신규 유입은커녕 기존에 있던 숙련공들까지 울산·거제 등 조선메카를 등지게 됐다”고 소개했다.

문제는 재차 조선 수주가 활발해졌어도 떠나간 발길을 되돌리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사례가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2017년 7월부터 4년째 가동 중단 상태인 군산조선소에서는 500여명의 정규직과 1000명이 넘는 하청직원들이 근무했다. 이들 외에도 조선소 바깥에서 각종 기자재를 제작·납품하는 업체에도 숱한 직원들이 상시 근무했다. 조선소 가동이 중단되자 수천명에 이르는 이들은 군산을 떠났다.

더불어민주당 신영대 의원은 군산지역구에 출마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1번 공약으로 조선소 재가동 카드를 꺼낸 바 있다. 1년 내 재가동에 실패할 경우 의원직을 내놓겠다는 강수를 뒀다. 지난 5월 30일은 제21대 국회가 개원한지 꼭 1년 되는 날이었지만 여전히 군산조선소는 가동되지 않고 있다. 당시 신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재가동 관련 심도 깊은 논의가 이어지고 있으며 조만간 로드맵이 공개될 것이다”고 밝혔으나 변화는 전무하다.

조선소 재가동을 위해선 최소 세 가지가 선제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조언이다. 소유주 현대중공업이 재가동 의지가 필요하며, 선박이 건조될 도크까지 지정하는 선주들이 군산조선소를 택해야 한다. 또한 기자재공급 및 납품·하청 등 인프라 재건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문제는 현대중공업도 미온적 반응을 보이는 실정이며, 또 다시 가동을 멈출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인프라 구축에 나설 사업자들도 극히 제한적일 것으로 점쳐진다. 가동이 불가한 조선소에 일감을 맡길 선주들도 전무하다.

신규 전문이력 유입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숙련인재의 이탈만이 반복적으로 발생할 경우 우리 조선산업의 경쟁력도 후퇴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전철을 밟을까 우려했다. 일본은 194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반세기 남짓 글로벌 조선 최강자로 군림했다. 한국에 추격을 허용한 뒤 역전당하기에 이르자 일본의 조선산업은 급속도로 후퇴했다.

신동원 전 인하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일본 내 조선관련 학과가 1~2개 수준에 그칠 정도로 관련 산업 전반이 위축돼 엔지니어 맥이 끊길 처지다”면서 조선경기와 관계없이 일본이 한국 조선산업을 재차 역전할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업계에서도 같은 이유로 지금과 같은 인력유입에 제동이 지속될 경우 한국을 바짝 뒤쫓고 있는 중국에 역전을 허용할 수 있으며, 고착화 될 경우 일본과 같은 처지로 전락할 것이라 경고했다.

지역사회도 비상이다. 조선소는 막대한 고용효과를 발휘한다. 자연히 조선소가 위치한 지역의 경제에 큰 축을 담당하게 된다. 군산 지역경제가 최근 수년 새 급속도로 피폐해 진 것과 거제지역 소비가 위축된 것 역시 각각 군산조선소 가동중단과 거제지역 조선소의 일감 축소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자동차·석유화학 거점도시인 까닭에 거제 및 인근 지역보다 조선업 의존도가 낮은 울산도 중·장기 대책마련을 위해 최근 현대중공업과 손을 잡았다. 울산시와 울산동구청,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은 조선업 부활과 지역경제 회복을 위해 상생·협력을 바탕으로 한 ‘조선업 동반성장 생태계 구축’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울산시는 기술인력양성과 지원정책 등을 통해 조선업 경쟁력을 육성시켜 지역 경기회복을 견인할 방침이다.

송철호 울산시장은 “현대중공업 노사가 최근 2년 치 임단협을 매듭짓는 등 노사상생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대한 시민 기대가 큰 상황이다”면서 “동반성장 생태계 조성으로 울산 조선업 경쟁력을 한층 강화하고, 이를 인구증가와 지역경제 발전으로 연결해 나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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