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수 위원장 “가상화폐 자금세탁 방지, 은행이 1차 책임”
가상화폐 거래소 감독, 주무부처인 금융위 책임은 어디에

[시사저널e=김희진 기자] “일단 자금세탁이나 이런 부분의 1차 책임은 은행에 있다”. “은행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받아주는 것이고, 아니면 못하는 것”, “그 정도도 할 수 없으면 은행 업무를 안 해야 한다”

지난 1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은행이 가상화폐 거래소에 실명확인 계좌를 발급해주는 대가로 자금세탁 방지에 대한 책임을 부여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내놓은 답변이다. 가상화폐거래소에 자금세탁 문제가 일어날 경우 그 책임소재가 은행에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앞서 은행권은 은행연합회를 통해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자금세탁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은행에 고의 또는 중과실이 없을 경우 은행에는 책임을 묻지 말아 달라는 내용의 ‘면책조항’ 의견을 금융당국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 위원장은 이에 대해서도 “(은행의 면책 요구는) 자금세탁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생각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단호한 입장을 고수했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면책 요구에 대해 명확히 선을 그으면서 업계에서는 사실상 은행이 가상화폐 거래소의 감독기관이 됐다는 말도 나온다. 정작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감독 권한은 금융위원회에 있음에도 감독 책임은 은행권에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월 정부는 ‘가상자산 거래관리 방안’을 발표하면서 가상화폐 관리를 맡는 주무부처로 금융위원회를 지정했다.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가장자산 사업자 관리·감독 및 제도 개선은 금융위원회가 주관하기로 한 것이다. 주무부처임에도 불구하고 자금세탁 방지에 대한 1차 책임은 은행에 있다고 말하는 금융위원회의 행보를 보면 관리·감독 주체가 금융위원회가 맞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가상화폐 거래소 실명계좌 발급 제휴에 부담이 커지자 은행들은 몸 사리기에 나섰다. 주요 은행들은 가상화폐 거래소와 실명계좌 발급 제휴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밝히면서 4대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를 제외한 나머지 거래소들은 무더기 폐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4대 거래소와 실명계좌 계약을 이미 맺은 은행들도 추후 계약 여부를 고심 중이긴 마찬가지다.

금융당국이 은행에 책임을 떠넘기면서 곤란해진 건 은행과 가상화폐 거래소뿐만이 아니다. 가상화폐 거래소의 줄폐업이 현실화되면 결국 투자자들의 피해가 이어질 것은 자명하다. 투자의 책임은 개인에게 있지만 건전한 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건 금융당국의 몫이다. 정부가 가상화폐의 주무부처를 지정한 이유는 거래의 투명성과 함께 투자자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였다. 지금과 같은 책임 회피로는 금융위가 외려 투자자들의 혼란만 가중시키는 게 아닐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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