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매립지 인근 지역 환경개선 위해 7년간 6000억 조성
체육관·철도연장에 800억 넘게 사용
자체 매립지 부지 매입에도 620억···"기금 취지에 어긋나”

지난 24일 인천 수도권매립지에서 폐기물 처리 작업이 한창이다. / 사진=염현아 인턴기자
지난 24일 인천 수도권매립지와 인근 민간 처리업체에서 폐기물 처리 작업이 한창이다./사진=염현아 인턴기자

[시사저널e=염현아 인턴기자] "수도권매립지 사용 연장하는 대신 인근 주민들 피해 보상금으로 받는 셈인데, 이 돈으로 엉뚱한 곳에 도서관이나 체육관 짓는 게 말이 됩니까? 그냥 시 예산처럼 쓴 거나 다름없죠.”

인천시와 수도권매립지 인근 주민들이 수천억 기금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주민들은 수도권매립지 인근 지역 주민들을 위해 조성된 특별회계기금이 본래 취지와 다르게 쓰이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여기에 인천시가 올해 특별회계기금의 30%를 인천시 자체 부지 매입에 사용하면서 주민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4일 폐기물을 실은 덤프트럭들이 오가는 인천 수도권매립지 길목에는 인천시의 기금 전용을 규탄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지난 24일 인천 수도권매립지로 향하는 길가에 인천시의 기금 전용을 규탄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사진=염현아 인턴기자
지난 24일 인천 수도권매립지로 향하는 길가에 인천시의 기금 전용을 규탄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사진=염현아 인턴기자

인근 골프장을 찾은 왕길동 주민 김아무개씨는 "기금이 매년 수천억씩이나 됐는데, 인구 많은 지역에 편의시설만 지어줬지, 매립지와 맞닿아 있는 왕길동이나 검암동엔 해준 게 없다”고 토로했다.

지난 2015년 인천시는 환경부·서울시·경기도와의 4자 협의에서 수도권매립지로 들어오는 폐기물 반입 수수료의 50%를 인근 지역을 위한 특별회계기금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2016년 말 종료 예정이었던 수도권매립지를 2025년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하면서다. 이후 인천시는 7년간 환경개선 및 주민편익 사업 330건에 총 6114억원의 기금을 운용했다고 밝혔다.

인천시 특별회계기금 지역별 운용 현황(2015년~2021년)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인천시 특별회계기금 지역별 운용 현황(2015년~2021년)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그러나 정작 주민들은 체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검암동 주민 유아무개씨는 "7년 동안 매년 수백억씩 기금을 받았다는데, 최근에야 알았다”며 "그만큼 우리 주민들은 전혀 체감을 못하는 사업”이라고 밝혔다.

인천시 수도권매립지매립종료추진단 관계자는 "특별회계가 집행된 지역 분포를 보면 매립지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인천시 서구에 80% 이상이 몰려 있다"면서 "주민들이 체감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선 안타깝다”고 밝혔다.

◇"위치도 목적도 부적절한 전용” vs "조례대로 한 것”

주민들은 수천억 기금이 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할 인근 지역보다 먼 곳에 쓰인 것을 문제삼고 있다. 기금의 본 취지대로라면 주변영향지역으로 분류되는 서구 오류·왕길동, 검암·경서동 환경개선 사업에 우선적으로 쓰여야 하지만, 10~13km 떨어진 지역에 편익시설 건립 비용으로 전용했다는 주장이다.

실제 인천시의 집행 내역에 따르면 2018년 청라복합문화센터 건립에 75억, 2019년 청라3동 행정복지센터 70억, 원당·가좌·불로동 체육관 건립에 455억이 쓰였다. 인천도시철도1호선 검단연장 건설사업에 4년간 208억이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지역은 모두 수도권매립지에서 8km 이상 떨어져 있다. 반면 오류·왕길동 지역에는 보안 등 정비공사와 전기시설물 교체가 전부였다. 집행 규모도 5억에 불과했다.

인천시 특별회계기금 집행 내역(2015년~2021년)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오류동 주민 이아무개씨는 “인천시에 오류동에는 뭘 했냐고 항의 전화를 했더니 김포 양촌 유수지에서 오류동까지 도로 잇는 사업에 63억을 썼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일반예산으로 처리돼야 할 사업들에 특별회계기금이 쓰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인천시청 관계자는 “기금 운용은 인천시 조례에 따른 것이고, 환경개선과 주민편익 사업에 적법하게 운용된 것으로 안다”고 못박았다.

인천시 조례에는 특별회계기금을 '매립지 주변지역’에 지원할 수 있도록 명시돼 있다. 인천광역시 서구, 계양구, 김포시 양촌읍이 '주변지역’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헌 법률(폐촉법)에서는 '주변영향지역’을 지원하도록 돼있는데, 이는 수도권매립지로부터 반경 2km 이내에 포함되는 지역으로 본다. 인천 서구 오류·왕길동, 검암·경서동과 김포 양촌읍이 대상이다. 주민들은 이를 근거로 수도권매립지로부터 2km 거리에 위치한 오류·왕길동에 우선 지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인천 수도권매립지 특별회계기금 지원 대상 지역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인천 수도권매립지 특별회계기금 지원 대상 지역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수도권매립지와 가장 가까운 사월마을엔 공기청정기도 지원 안 돼”

특히 환경 단체는 수도권매립지와 가장 인접해 있는 왕길동 사월마을에 지원이 열악한 것을 지적한다. 총 122명이 거주하고 있는 사월마을에는 현재 폐기물 처리업체 등 150개 이상의 공장이 운영되고 있다.

환경부는 2019년 11월 사월마을이 주거지로 적합하지 않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초미세먼지 일평균 대기환경 기준치(35㎍/㎥)보다 크게 높은 55㎍/㎥로 측정됐다.

김선홍 글로벌에코넷 상임회장은 "사월마을 미세먼지로 주민들 고통이 너무 심해 52가구에 공기청정기를 지원해달라고 인천시에 여러 번 요청했지만, 시는 예산이 부족하다며 이를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주민편익 사업 자체에 반대하는 건 아니”라며 "기금의 본래 취지에 맞게 인근 지역에 우선적으로 지원하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체 매립지 부지 매입에도 620억 기금 사용···"결국 인근 주민들 위한 것”

인천시와 주민 간의 최대 쟁점은 인천시가 올해 기금 2087억 중 620억을 새 매립지 부지 매입에 사용한 것이다.

지난 2015년 인천시는 오랜 숙원사업인 '매립지 독립'을 위해 2025년 수도권매립지 종료를 선언했다. 인천 중구 옹진군 영흥면에 대체 매립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인천시는 수도권매립지 사용이 종료되면 결국 인근 주민들의 피해도 함께 종료될 테니 기금 사용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인천시가 추진하는 사업에 주민 기금 운용이 과연 적절한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박옥희 인천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주민들을 위해 쓰여야 하는 특별회계기금을 부지 매입에 쓰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행정"이라며 "동의를 구하고 설득하는 과정 없이 주민들의 무조건적인 이해를 바라는 것은 인천시의 이기주의”라고 비판했다.

인천시청 관계자는 "앞으로 기금 사용 계획을 세울 때 주민 대표들과 필히 사전 논의를 하고, 시의회 심의를 거쳐 기관에 통보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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