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단협 결렬’ 현대重노조 내달 6~9일 전면파업···사측 “당장의 교섭재개 불가”
거제 및 인접지역 연대한 ‘매각철회’ 요구 나서···주민 움직임에 정치권도 반응

/그래픽=시사저널e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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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성사된다 하더라도 상당기간 갈등이 지속될 전망이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합병을 반대하며 2년 넘게 임단협 협상이 불발되는 가운데, 대우조선해양이 위치한 경남 거제에서도 노동자들과 지역사회가 연대해 합병반대 운동을 펼치는 상황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노조는 22일 오후 제94차 중앙쟁의대책위원회를 열고 내달 6~9일 나흘 간 매일 8시간씩 전면 파업하기로 결정했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총파업은 현 집행부 출범 후 처음이다. 노조는 2019년과 지난해 임단협 잠정 합의안이 부결됐음에도 사측이 교섭을 재개하지 않음을 파업 이유로 설명했다. 이번 파업과 관련해 현대중공업그룹 측은 당장 교섭을 재개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앞선 부결은 노조 집행부가 2년 치 통합교섭 잠정합의안이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된 것이었다. 양측의 반목은 2019년 5월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기존 현대중공업 법인을 한국조선해양(존속법인)과 현대중공업(신설법인)으로 인적분할하는 과정에서 촉발됐다. 인수를 반대한 노조는 임시주총장을 점거하며 분할을 반대했으나, 사측이 임시주총 장소를 변경하면서까지 분할 안건을 통과시키면서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둘러싼 잡음은 울산(현대중공업 소재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거제 지역을 중심으로 합병을 반대하는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22일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청와대(서울)·경남도청(경남 창원)·거제시청 등에서 동시 다발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사업 호황기 진입을 앞두고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하는 것은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항변하며 이번 매각을 원점에서 재검토 해 줄 것을 요구했다.

거제지역의 민심도 노조에 동참하고 있다. 경남시장군수협의회는 지난 21일 ‘대우조선 매각철회 및 원점재검토’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결합심사를 맡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했다. 거제시·거제시의회·노조 등은 ‘대우조선해양 매각 반대 서명운동’을 벌여 11만명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서명명부는 공정위와 더민주·국민의힘 중앙당사 및 경남도청 등에 전달됐다.

지난달 기준 거제 인구는 24만3484명이다. 서명에 동참한 인원만 45.2%다. 거제는 울산과 더불어 조선업을 대표하는 도시다. 울산의 경우 조선업뿐 아니라 자동차·석유화학 등의 공업도시 색채가 짙지만, 거제는 오롯이 조선업 중심이다. 대우조선해양의 옥포조선소와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모두 거제시 옥포동과 고현동에 위치했다.

주민들도 조선소 관련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에 재직하거나, 재직자가 가족인 경우가 많다. 두 조선소 인근에 상업지구가 형성된 만큼 조선사가 지역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지역사회는 합병 시 대우조선해양뿐 아니라 각종 기자재·하청업체 및 지역경기 등 전후방산업 전반에 악영향이 될 것이라 우려한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조선소 인근에 각각의 기자재·하청협력 업체들과 거래하고 있다. 거제에서는 이번 합병이 성사되면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가 현대중공업의 생산기지로 전락하고 기존 거래처들의 입지 역시 좁아질 것이라 예견한다. 자연스레 거제지역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고 지역경기 침체가 불가피할 것이란 설명이다. 10년 넘게 이어진 조선업 장기불황을 체감한 거제지역민들은 이번 합병을 결사적으로 막을 계획이다.

주민들의 움직임에 정치권도 반응하고 있다. 24일 변광용 거제시장은 옥포조선소 정문 앞에서 매각철회와 원점재검토를 요구하는 입장을 밝힐 계획이다. 이번 변 시장의 입장발표에는 허성무 창원시장, 강석주 통영시장도 참석할 예정이며, 허성곤 김해시장과 김일권 양산시장도 함께 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창원·통영·김해·양산 등은 거제와 이웃한 지역들로 조선 기자재업체들이 밀집한 곳이다.

합병이 성사되더라도 울산·거제의 노동자들과 거제 및 인근지역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는 까닭이다. 이들의 반대운동과 관계없이 합병은 기업결합심사를 맡은 6개 공정당국의 판단에 맡겨진다. 앞서 카자흐스탄·싱가포르·중국 등이 ‘무조건 승인’ 결정을 내렸으며 공정위와 유럽연합·일본 등의 심사가 하반기 중으로 판가름 날 전망이다. 합병은 심사국 모두가 허가해야 이뤄진다. EU는 액화천연가스(LNG)선의 과독점을 우려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한국조선해양 설립을 위한 임시주총 당시 현대중공업노조뿐 아니라 대우조선해양노조도 주총장 점거에 힘을 보탠 바 있다”면서 “합병이 최종 결정될 경우 이들 노조가 속한 금속노조 차원의 반기도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합병은 적법한 절차에 맞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현대중공업 측에서도 여론에 대응하기보다 잔여 심사에 초점을 맞춘 행보를 보이는 듯 하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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