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부터 5~49인 사업장 78만곳 ‘주52시간제’ 적용
정부 예산 435억 투입···모든 기업 지원하기엔 턱없이 부족
스타트업 “계도기간·연장근로 절실”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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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염현아 인턴기자]

#. 40인 규모의 IT 스타트업에서 개발자로 근무하던 20대 이아무개씨는 입사 2년 만에 사직서를 냈다. 적성에는 잘 맞았지만 나빠진 건강이 문제였다. 이씨는 프로젝트를 1년에 2개씩 진행했다. 프로젝트 기간엔 하루에 12시간 넘게 일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주말에도 야근은 필수였다. 한 프로젝트 당 4개월이 걸렸으니 꼬박 8개월은 70시간 넘게 일한 셈이다. 이씨는 "다시는 스타트업계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8인 규모의 언어 교육 애플리케이션을 운영하는 장아무개 대표는 한 달 전 새로운 외국어 서비스를 론칭했다. 아직 초기 단계인데다 글로벌 사용자가 많아서 서버에 오류가 잦다. 자리잡을 때까진 관리자 3명이 돌아가며 24시간 대기해야 하는 구조다. 당장 다음달부터 주70시간 근무에서 52시간 이내로 단축해야 하는 상황에 비상이 걸렸다. 3개월은 자율적으로 연장 근로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장씨는 그 이후가 걱정이다.

오는 7월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주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된다. 과도한 야근과 주말 근무가 일상이었던 중소기업 종사자들에게도 '저녁 있는 삶’이 가능해질 거란 기대가 나온다. 반면 코로나19 장기화로 매출 감소 등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은 운영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디지털 홍보 플랫폼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30대 박아무개씨는 "요즘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많아서 회사에서 쪽잠 자기를 밥 먹듯 하며 일하고 있다”며 "주52시간 근무제가 빨리 도입되기만을 바란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내달 1일부터 주52시간제가 새로 적용되는 사업장은 전국에 총 78만곳으로 무려 830만명이 대상이다. 이들은 기존 68시간 근무에서 52시간으로 단축 근무해야 한다. 다만 78만곳 중 95%에 달하는 5~29인 사업장은 내년말까지 최대 60시간 근무가 가능하도록 했다. IT·게임 등 연구개발 기업 근로자도 3개월간 자율적으로 선택근로를 활용할 수 있다.

지난 4월 고용노동부는 중소사업장 10곳 중 8곳이 이미 주52시간제를 지키고 있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급격한 변화일 수 있지만 사업장들은 충분한 준비가 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5~49인 기업 13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0% 이상이 이미 주52시간제를 준수하고 있다고 답했다”며 "주52시간제 정착이 가능하다고 답한 곳도 작년 12월 조사 때보다 3%가량 늘어난 것을 볼 때 그만큼 기업들이 준비가 됐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음료 관련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는 30대 박아무개씨는 "최근 매장을 늘리면서 직원들이 주52시간을 넘도록 일할 수밖에 없었다”며 "7월부터 주52시간제가 시작된다고 해서 직원 3명을 추가 고용했다”고 밝혔다.

◇"스타트업만 계도기간 없는 건 불공평”

경제 단체는 고용노동부와 다른 입장이다. 이들은 고용노동부 조사에서 현재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을 준비 중이거나 준비가 안 됐다고 응답한 18.4% 사업장에 주목했다.

정부는 지난 2018년 7월 300인 이상 사업장에 주52시간 근무제를 처음 도입했을 때 9개월의 계도기간을 뒀다. 작년 1월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했을 땐 1년으로 늘렸다. 사업장 규모에 따라 마지막 순서가 된 중소기업만 이례적으로 계도기간 없이 바로 시행한다. 위반 기업에는 최장 4개월의 시정기간이 주어진다.

양옥석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4월 고용노동부 조사에서 아직 준비가 안 된 기업이 10곳 중 2곳이었다”며 "이 조사는 1300개 기업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아직 준비가 안 된 곳은 훨씬 많다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규모 사업장에는 계도기간을 두면서 시정기간을 준다는 핑계로 가장 영세한 이들에게만 당장 7월부터 주52시간제를 지키라는 건 불공평하다”고 지적했다.

올해 창업 3년차를 맞은 디지털 교육 플랫폼 스타트업 장아무개 대표는 주52시간제에는 찬성하지만 사업장 특성에 따라 계도기간이나 선택근로 허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장 대표는 "최근 비대면 사회에 접어들면서 디지털/IT 스타트업이 많이 생겨서 우리 기업처럼 현재 프로젝트 진행 중이거나 새로운 서비스 안정화에 한창인 기업들이 많다”며 “담당자들이 서버 점검을 위해 상시 대기해야 하는 구조인데, 아직 매출 발생 전이라 신규 채용 여력도 안 되는 곳들이 태반”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물론 모든 기업이 주52시간제를 도입해 직원들의 건강과 일상을 지켜줘야 한다”면서도 “저마다 다른 기업 상황을 고려해 차등 적용하거나 계도기간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435억 규모 인건비 지원책···영세 스타트업 '그림의 떡’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거세지자 고용노동부가 주52시간 근로제를 시행한 기업들에 지원 방안을 내놓으며 설득에 나섰다.

지난 16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주52시간제 현장지원 방안에는 크게 인건비 등 재정 지원, 정책금융 우대, 기업 컨설팅 등이 포함됐다. 이 중 영세 스타트업에게 가장 현실적인 도움이 되는 사업은 인건비 지원이다.

주52시간 근로제 안착을 위한 정부 재정 지원 정책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주52시간 근로제 안착을 위한 정부 재정 지원 정책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노동시간 단축 정착지원금’은 5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까지 대상으로 한다. 기존 노동시간이 주52시간을 넘는 기업 중 지난달까지 주52시간 이내로 단축한 곳에 근로자 1인당 최대 120만원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고용노동부 조사대로라면 5~49인 사업장만 해도 대상 기업은 무려 8만7690곳이다. 종사자 수는 9만명이 훌쩍 넘는다. 그러나 편성된 예산은 46억으로 고작 3863명을 지원하는 규모다. 여기에 50~299인 사업장까지 합하면 단순 계산해봐도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조건도 까다로워 50인 미만 영세 스타트업은 지원 자체가 힘든 구조다.

고용노동부 임금근로시간과 관계자는 “5월 1일 이후로 주52시간 초과 근무자가 단 한 명도 나올 경우 제외되는 등 요건이 까다로워서 결과적으로 지급 대상 기업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며 “예산이 한정돼 있다 보니 요건을 충족한다고 해도 심사를 통해 가장 모범이 되는 기업을 선별해 지원금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2018년 주52시간제 도입으로 시행된 ‘일자리 함께하기’ 사업도 올해 계속된다. 올해는 5~299인 사업장이 대상이다. 52시간제를 준수하는 것은 물론 신규 채용을 한 기업이어야 한다. 신규 채용자 1인당 월 최대 80만원을 지원하는데, 제조업은 2년, 비제조업은 1년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신규 채용으로 근로자 수가 이전보다 늘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기존 인력의 인건비를 감당하는 것도 벅찬 영세 스타트업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이다.

정부가 여러 지원 방안을 내놓았지만, 두 사업 모두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좌절하는 분위기다.

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온라인 플랫폼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30대 최아무개 대표는 "온라인 서비스는 계속 진행 중이라 야근은 필수인데, 코로나19로 직원 6명의 임금을 감당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 지원을 받아보려 해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막막하다”고 밝혔다. 최씨는 "대체 누구를 위한 지원책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中企 "계도기간 어렵다면 연장근로 확대하라”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현재 389억 예산으로 '노동시간 단축 정착지원금’보다 충분한 규모”라면서도 심사가 엄격하게 이뤄진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한정된 예산으로 모든 기업을 지원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양 인력정책실장은 "선택근로 3개월이 허용되는 R&D 기업 말고도 집중 근로하는 곳이 많다”며 "계도기간 1년은 절대 안 된다고 하니 노사협의를 통해 연장근로할 수 있는 길이라도 어느 정도 터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용노동부 임금근로시간과 관계자는 "아직 정책이 시작되지 않은 시점에서 선택근로 허용 기간을 늘릴 수는 없다”며 "향후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못박았다.

한편 오는 7월 1일부터 주52시간 근로제를 위반한 사업주는 일단 4개월의 시정기간이 주어진다. 이후에도 시정이 안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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