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승소 시, ’공유지 비극‘ 우려
판결, ISP-CP 간 망 사용료 협상 기준될 전망

사진 = 셔터스톡
사진 = 셔터스톡

[시사저널e=김용수 기자]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 ’망 사용료‘ 소송 1심 선고공판이 오는 25일 열린다. 재판 결과가 콘텐츠사업자(CP)와 통신사 간 망 사용료 협상의 기준점이 될 수 있어 국내외 IT업계가 판결을 주목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승소할 경우, 국내 CP사 역차별 문제, 글로벌 CP 망 무임승차 등으로 '공유지의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21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20부(부장판사 김형석)는 오는 25일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를 낼 의무가 없다는 취지로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 확인의 소’ 민사소송 1심 선고를 내린다.

앞서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와 망 사용료 협상이 결렬된 뒤 2019년 11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협상 중재 재정신청을 냈다. 이어 넷플릭스는 돌연 방통위 중재를 거부하고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법원에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넷플릭스는 법률대리인으로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SK브로드밴드는 법무법인 세종을 선임해 1년 2개월간 법적 공방을 이어왔다.

◇ 대규모 트래픽 감당할 네트워크 투자비 누가 내야 하나

재판 쟁점은 넷플릭스와 같은 CP가 발생시키는 대규모 트래픽을 감당하기 위한 네트워크 투자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다.

넷플릭스는 앞선 3차례 변론에서 본인들과 같은 CP 의무는 이용자가 콘텐츠에 ‘접속’할 수 있게 하는 데까지 있기 때문에 콘텐츠 ‘전송’의 대가를 SK브도르밴드와 같은 인터넷제공사업자(ISP)에게 낼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즉 본인들의 역할은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의 일종인 오픈커넥트(OCA)를 한국 이용자와 가까운 홍콩과 일본에 구축해두고 콘텐츠를 미리 저장해두는 데 그치며, 콘텐츠 전송은 이용자 요청에 따라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접속료가 아닌 전송료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ISP가 네트워크 품질을 유지할 책임이 있음에도 이용자를 볼모로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SK브로드밴드는 ‘접속’과 ‘전송’은 현행법상 분리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넷플릭스 국내 데이터 트래픽이 서비스 개시 후 약 3년 만에 30배가 증가한 상황에서 인터넷을 무료로 이용하겠다는 생각 자체는 시장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 자료 = 법무법인 세종
접속과 전송에 대한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개념 설명 자료 / 자료 = 법무법인 세종

SK브로드밴드 측은 “택배 발송 시에도 작고 가벼운 물건을 보낼 때와 크고 무거운 물건을 보낼 때 요금은 다르다. 넷플릭스는 택배를 발송할 물건을 제작할 때 이미 돈을 냈으니 그 물건을 전달하는 건 전적으로 택배사의 몫이라며 그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게다가 그 택배 물건들은 점점 크기가 커지고 무거워지고 있으며 개수 또한 빠르게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이미 미국 컴캐스트, AT&T, 버라이즌, 프랑스 오렌지 등 다수의 ISP에 망 사용료를 내고 있단 점도 지적했다. 아울러 시장논리로 보면 회사는 최종 이용자에게 서비스가 전달된 이후까지도 품질을 보장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네이버, 카카오, 왓챠 같은 국내 CP들이 경영에 무지해서 ISP가 제공하는 전용회선, CDN과 같은 기업상품에 수백억원에 달하는 망 사용료를 내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 넷플릭스 승소하면 국내 CP 역차별 논란일 듯

관련 업계는 이번 소송 결과가 국내 ISP와 해외 CP간 망 사용료 협상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하반기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국내 시장 진입이 예고된 가운데 이번 판결이 망 사용료 협상 과정의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IT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소송에서 넷플릭스가 승소할 경우 국내 CP사들의 역차별 논란과 향후 국내 시장에 진입할 글로벌 CP사들의 ‘망 무임승차’가 당연시될 가능성이 높다.

우선 넷플릭스 승소 시 네이버, 카카오, 왓챠 등 국내 CP들도 본인들이 내고 있는 망 사용료를 더 이상 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국내 CP들은 해외 CP들과 달리 망 이용대가로 매년 수십 또는 수백억원을 ISP에 지불하고 있어 역차별 논란이 있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지난달 인사청문회에서 “망 이용대가는 사업자간 자율적인 협의사항이지만 이용료를 전혀 내지 않는다면 기울어진 것으로 문제가 있다”며 국내외 CP간 형평성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 등 글로벌 OTT가 국내 진출 기회를 엿보는 가운데, 넷플릭스에게 망 사용료 면제권이 주어지면 향후 글로벌 사업자들의 망 무임승차가 당연시될 가능성도 있다.

아울러 넷플릭스가 승소하면 앞으로 어떤 ISP도 네트워크에 투자하지 않는 ‘공유지의 비극’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인터넷은 네트워크 플랫폼을 통해 CP와 최종 이용자를 매개하고 이 모두를 고객으로 하는 양면시장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며 “망 사용료를 받지 못하게 된다면 결국은 네트워크 관리 및 유지비용이 다른 한 쪽인 최종 이용자에게 전가되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최악의 경우 해외는 물론 국내 CP들 사이에서 ‘인터넷은 무료’란 개념이 등장해 어떤 ISP도 더 이상 네트워크를 관리하지 않고 투자하지 않는 공유지의 비극이 발생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반면 법원이 SK브로드밴드의 손을 들어주면 해외 CP사들의 무임승차가 원천적으로 차단될 뿐만 아니라 이미 ISP에게 망 사용료를 내고 있는 국내 CP들의 역차별 논란도 해소될 전망이다.

다만 SK브로드밴드가 승소하더라도 구체적인 망 사용료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은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에 망 사용료를 내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이번 재판은 망 사용료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에 망 사용료를 낼 의무가 있는지를 따지는 재판”이라며 “ISP와 CP 간 트래픽 발생량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도 같이 고려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쉬운 과정은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