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근무시간 줄여 임금 인상 효과 못 느껴"”···업종별 차등 적용 주장 나와
“고용주 고충 근로자 임금 삭감으로 해결은 곤란”···임대료 감면 필요성도 제기

지난 26일 오후 홍대입구역 인근 상가. 북적북적하던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사진=김지원 인턴기자
지난 26일 오후 홍대입구역 인근 상가./ 사진=김지원 인턴기자

[시사저널e=김지원 인턴기자] “장사가 잘 되면 내가 안 나오고 아르바이트생 쓰고 싶지.” 지하철 홍대입구역 일대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예임(74)씨. 이씨는 낮 2시에 퇴근한 사위에 이어 오후 근무를 맡다가 저녁 8시면 아들과 교대한다. 아들은 새벽까지 편의점을 지키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온 가족이 매달려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지만 손님이 오지 않아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 600만원에 달하는 월세를 부담하기도 벅찬 상황에서 아르바이트생 고용은 먼 나라 이야기라고 토로한다.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거리는 한산했다. 노래 소리로 가득해야 할 코인 노래방에는 적막이 흘렀다. 카운터에 앉아 있던 코인 노래방 점주 A씨는 “최저임금이야 어떻게 되든 관계없다”며 “장사가 안 돼 아르바이트생을 쓸 계획도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근처 화장품 매장의 사정도 비슷했다. 이곳에서 8년간 근무했다는 직원 B씨는 “요즘은 손님이 거의 안 온다. 저녁 시간대에도 마찬가지”라며 “급여를 받아 가기 미안할 정도”라고 말했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 폭을 결정하기 위한 노동계와 경영계의 줄다리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경영계는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이 여전한 상황이라 인상 폭을 최소한도로 가져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노동계는 지난해와 올해 역대 최저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으로 양극화가 심화됐다며 내년도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날 기자가 만난 근로자들은 최저임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내놓았다. 임금 상승을 바라지만 단순 최저임금 인상 수치뿐 아니라 최저임금 제도의 맹점을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코인 노래방 외관. 대부분의 방이 비어있었다./ 사진=김지원 인턴기자
홍대입구역 인근에 위치한 한 노래방 외관. 창문을 통해 빈방이 보인다./ 사진=김지원 인턴기자

인천 중구 소재 음식점에서 근무하는 조은정(24)씨는 “최저임금이 그대로 유지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을 바랄 것이라는 다수의 생각과는 다소 다른 목소리다. 그는 “몇 년 전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오른 것을 기점으로 무인점포가 많이 생겼다. 업주 입장에서는 인건비가 부담스럽기 때문일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아르바이트생들의 자리가 줄었다”고 설명했다. 임금이 올랐지만 그만큼 근로자를 구하는 곳이 줄거나 근무 시간이 주는 등 고용시장 상황이 악화됐다는 것이다.

서울 강서구의 한 카페 직원 C씨도 “현재 최저임금이 적정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며 “최저임금 기준은 모든 업종에 공통으로 두고 업무 강도가 높은 곳에 추가적으로 임금을 주는 식으로 차등 적용을 하는 방향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연합회(소공연)는 업종·규모별로 다르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자는 취지의 주장을 해왔다. 업종과 규모에 따라 최저임금 미만율이 다르다는 것이 이유다. 지난 3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2020년 최저임금 미만율 분석결과 및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5인 미만 사업장의 소규모 사업장 근로자의 36.3%가 최저임금 미만의 급여를 받았다. 농림어업과 숙박음식업의 미만율은 각각 51.3%, 42.6%로 나타났다.

소공연 관계자는 “코로나 상황으로 폐업률이 증가하는 등 소상공인이 어려운 상황이다. 최저임금이 이들에게 부담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꾸준히 주장한 최저임금 차등화가 이번에 실현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현재 최저임금액에 아쉬움을 드러내는 근로자도 있었다. 서울 양천구 프랜차이즈 샌드위치점에서 근무하는 한아무개씨는 이곳 말고도 두 곳에서 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한씨는 “시급을 받고 일하는 입장으로서 솔직히 최저임금이 올랐으면 좋겠다. 지금은 한 시간 일해야 샌드위치 하나 겨우 사먹는 정도”라고 말했다.

한씨는 다만 “고용불안이 뒤따르는 인상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 편의점에서 일했다”며 “점장님이 장사가 안 된다며 아르바이트생을 안 쓰고 본인이 근무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셔서 그만두게 됐다”고 털어놨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관계자는 임금 상승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최저임금으로 노동자와 그 가족이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초기에 최저임금이 오르긴 했지만 동시에 산입범위를 확대해 큰 상승효과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6월 민주노총은 가계동향자료 등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산출한 금액인 1만770원을 최초 인상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정부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계산했을 때, 1인 가구 기준으로 그 정도 금액이 있어야 실질적 생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코로나로 인해 자영업자들이 현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잘안다. 노동자 임금을 줄일 게 아니라 임대차 보호법 등 관련 제도를 개선해 고용주들의 어려움을 줄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규모·업종·지역·연령에 따른 차등 적용이 필요하다”며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마련하는 은퇴한 노장년층의 생계유지를 보장하기 위해 노동시장에서 이들의 경쟁력을 높일 방안이 필요하다. 차등 적용이 그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준현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몇 년, 특히 2018~2019년의 급격한 최저 임금 상승으로 발생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최저임금은 산업별 지역별로 다른 경제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에서도 주에 따라 다른 시급을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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