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임단협 사측 제시안 거부···“직장폐쇄, 쟁의 행위 무력화 수단”
사측, 근로희망서 작성 근로자로 부분 가동···“고용·안전 위협상황 방치 못해”
XM3 물량 다른 공장 배정·부산공장 철수 가능성···부산 지역경제 타격 불가피

르노삼성 부산공장. /사진=연합뉴스
르노삼성 부산공장.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이창원 기자] 르노삼성자동차의 노사갈등이 벼랑 끝으로 몰리는 분위기다. 2020년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에 노사가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와 사측이 각각 전면파업과 직장폐쇄를 밀어붙이며 ‘강대강’으로 대치하면서다.

노사갈등이 더욱 확대될 경우 르노그룹이 XM3(유럽수출명 ‘아르카나’)를 생산하고 있는 부산공장을 철수하거나 생산 물량을 다른 공장으로 넘길 가능성도 점쳐지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4일 르노삼성 노조는 8시간 전면파업을 벌였다. 이번 파업은 지난달 30일에 이은 두 번째 전면파업이고, 노조는 지난달 16일·19일·23일과 지난 3일에는 부분파업을 벌인 바 있다.

노조의 파업을 단행한 이유는 지난달 29일 진행된 임단협 9차 본교섭에서 사측과의 협상이 결렬되면서다.

당초 노조는 기본급 7만1687원 인상과 격려금 700만원 지급을 요구해왔지만, 사측은 기본급 동결과 격려금 500만원 지급을 제시했다. 또 사측은 순환 휴직자(약 290명) 복직·2교대 전환(6월) 등도 함께 제시했지만, 노조가 요구하는 AS직영 사무소(인천·창원 2곳)의 운영 중단 철회는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8년 이후 4년 연속 기본급을 동결하겠다는 사측의 제시안은 받아들일 수 없고, 휴직 중인 조합원들에 대한 조기 복귀 명령은 노조 쟁의를 무력화하기 위한 행위라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이와 같은 노조의 반발에 사측은 직장폐쇄라는 강수를 뒀다. 르노삼성의 직장폐쇄는 1년 4개월 만이다.

다만, 사측은 이번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근로자들은 근로희망서를 작성한 후 근무를 할 수 있도록 했고, 이에 현재 공장 생산 라인은 부분적으로 가동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측은 ▲정상적 근로 임직원 업무·안정 위협 ▲노조의 불법적인 업무방해 행위 ▲노조 쟁의에 따른 매출 손실·경영상황 악화 ▲XM3 물량 선적 차질 등을 직장폐쇄 이유로 들었다.

그러면서 “회사는 직원들의 고용과 안전까지 위협하는 현재 상황을 방치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판단했다”며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어 부득이 부분 직장폐쇄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파업 참여율이 30%정도 수준으로 파악되고, 일부 소수노조들이 노조의 전면파업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근로 의사가 있는 임직원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방침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또 지난 2018·2019년 임단협 협상과정에서의 파업 영향으로 6000억원 규모의 매출 손실이 발생했고, 고객 신뢰도도 급락했던 만큼 이를 재차 반복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사측의 입장에 노조는 “회사의 기물을 파손하는 등의 행위를 절대 한 적이 없고 부산공장의 파업 시간은 38시간에 불과하다”며 “사측의 직장폐쇄는 노조의 쟁의 행위를 무력화하기 위한 수단일 뿐 어떤 정당성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이 노사갈등이 심화되며 검토됐던 6·7일 본교섭 재개 가능성도 한층 낮아진 상태다.

상황이 이러하자 부산공장 존속 여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유럽 시장 소비자들의 호평 속에 르노삼성의 실적을 견인하고 있는 XM3의 부산공장 생산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르노그룹이 다른 공장으로 물량을 돌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XM3의 지난달 해외판매 대수는 2961대로 해외판매(3878대) 실적의 76.4%를 차지했다. 특히 전년 동기 대비 절반 이상 급감한 내수판매 실적을 회복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고, 닛산 로그 위탁 생산 중단으로 대규모 적자의 늪에 빠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일감이다.

아울러 최악의 경우 ‘부산공장 철수’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만은 없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호세 비센트 드 로스 모조스 르노그룹 부회장을 비롯한 임원진은 부산공장의 경쟁력을 지적하면서, 르노삼성의 ‘약속 불이행’을 에둘러 지적해왔다.

이 과정에서 부산공장의 약속 불이행 상황이 지속될 경우 ‘새로운 방법’을 찾겠다고 경고했고, 무엇보다 노조의 잦은 파업에 따라 XM3 유럽 물량 공급에 차질을 빚을 경우 부산공장이 물량 배정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직접적으로 밝힌 바도 있다.

만약 르노그룹이 해당 판단을 내리게 되면 당장 부산공장 임직원들의 생계도 문제지만, 부산 지역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이미 몇 년 동안 부분파업이 계속됐고, 닛산 로그 위탁 생산 물량도 다 놓쳤었다. 전세계 르노공장 15개 중 부산공장은 3~4위권이었는데 현재 13위로 떨어질 정도로 엉망이 된 상태”라며 “노사 합의를 이루고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상황인데 걱정이 크다. 현재의 회사 상황에서 노조의 요구조건 자체가 너무 커 별로 좋은 그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해외에서 국내 자동차 산업의 강성노조는 소문이 났을 정도이고, 사업하기 힘들다는 이미지가 많다”며 “1950년대 도요타는 노사갈등으로 회사가 망하기 직전까지 갔었고, 이후 60~70년 동안 노사분규가 한 번도 없었다. 회사가 없으면 노조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산공장 철수 여부와 관련해서는 “르노그룹은 부산공장에서 노조의 쟁의가 지속되며 경쟁력이 확보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할 경우 언제든 철수할 수 있을 것”이라며 “르노그룹 입장에서는 졸(卒) 죽이는 수준에 불과하고, ‘노조 프랜들리’한 정부도 잘못된 시그널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부산에서 르노삼성 공장은 고용부터 시작해 큰 역할을 하고 있어 부산공장이 철수할 경우 지역경제가 전멸할 수 있다”며 “한국GM(제너럴모터스) 군산공장 철수 당시에도 지역경제가 풍지박산났고, 지금까지도 회생이 안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르노삼성 부산공장. /사진=연합뉴스
르노삼성 부산공장.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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