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5단지 심의 보류···집값 불안에 ‘속도 조절’ 해석도
노형욱 국토부 장관 후보자 “정밀안전진단 완화 반대”
더딘 속도에 현장 혼선 “집값 잡힐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오세훈 서울시장이 29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부동산 시장 안정화 관련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의 재건축 활성화 계획이 안갯속에 빠진 모양새다. 규제 완화 기대감에 주요 재건축 단지 집값이 폭등하는 등 불안한 조짐이 나타나자 서울시가 신중 모드로 돌아선 까닭이다. 선거 유세 당시 호언장담했던 재건축 정밀안전진단 완화는 노형욱 국토교통부 후보자가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잠실5단지, ‘오세훈 효과’ 기대했지만 재건축 심의 보류···‘속도 조절’에 무게 

4일 서울시와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정비계획안 심의가 보류됐다. 앞서 송파구는 지난달 19일 서울시에 정비계획안을 도시계획위원회 수권소위원회에 상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수권소위원회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권한을 위임받아 상정된 정비계획안을 검토하고 결정하는 기구다. 이곳에서 용적률이나 세대 수가 정해진다. 하지만 서울시는 조합 측에 주민의견을 보강하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잠실주공5단지의 정비계획안이 보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78년 준공된 이 단지는 2017년 단지 내 일반주거지역을 준주거지역으로 용도 상향하는 심의를 통과해 최고 50층·6402가구로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서울시에 정비계획안의 수권소위 상정을 수차례 요청했으나 서울시는 부동산 시장 안정화, 교통·교육환경 영향평가, 주민의견 수렴 등을 이유로 상정을 보류해왔다. 정비사업 활성화를 강조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하면서 ‘오세훈표 재건축 1호’가 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또다시 고배를 마셨다. 

시장에선 최근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집값이 급등하면서 부담을 느낀 오 시장이 속도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오 시장은 서울시장 선거운동 기간 중 “일주일 안에 재건축 규제를 풀겠다”고 말할 정도로 재건축에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오 시장 취임 이후 압구정·여의도·목동·노원 등 재건축 기대감이 큰 단지를 중심으로 신고가가 갱신되고, 호가도 수억원씩 뛰고 있는 실정이다. 급기야 오 시장은 지난달 29일 재건축 활성화보다 집값 안정이 우선이라며 사실상 ‘재건축 속도 조절’을 시사했다. 

◇노형욱 국토부 장관 후보자 “정밀안전진단, 시장 불안한 만큼 신중해야”

재건축의 기초 단계인 정밀안전진단의 규제 완화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이 안전진단 규제 완화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면서다. 노 후보자는 오늘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동만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시에서 건의한 안전진단 기준 완화에 대한 입장을 묻자 “최근 안전진단 기준 완화 기대감으로 안전진단 전 재건축 단지가 다수 소재한 자치구를 중심으로 시장 불안이 발생하고 있는 만큼 제도의 본래 취지와 달리 사업 활성화 차원에서 기준을 완화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밀안전진단은 재건축 사업의 첫 관문이다. 재건축 필요성을 객관적으로 증명하고 재건축 정비기본계획 수립의 전제 조건으로 재건축 가능 여부를 살펴보는 단계다.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한 이후에는 정비구역지정, 조합설립, 시공사 선정 등의 절차를 밟게 된다. 정밀안전진단은 3단계를 모두 통과해야 하는데 결정권이 사실상 국토부에 있다. 오 시장이 다른 규제를 완화해도 재건축의 첫 단추인 안전진단이 깐깐하게 이뤄지면 속도를 내기 어렵다.

서울시의 재건축 활성화 계획이 차질을 빚으면서 현장엔 혼란이 가중되는 모습이다. 목동의 한 재건축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오 시장이 선거 유세 당시 목동에 방문해서 당선되면 곧바로 안전진단에 착수하겠다고 호언장담 했는데, 아직 아무 소식이 없다”며 “재건축 활성화 공약으로 표는 다 받아놓고, 최근 신중론으로 돌아섰다고 하니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집값이 잡힐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주민들만 혼란스러운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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