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가상화폐 자산으로 인정 못해···투자자 보호 대상 아냐”
투자자들 “투자자 보호 없다면서 세금 걷는 건 모순”

가상화폐 비트코인과 도지코인의 가격이 크게 상승한 가운데 27일 오후 서울 빗썸 강남센터 시세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의 실시간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가상화폐 비트코인과 도지코인의 가격이 크게 상승한 가운데 27일 오후 서울 빗썸 강남센터 시세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의 실시간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김희진 기자]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투자 열풍이 거세지는 가운데 금융당국은 가상화폐를 금융상품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투자자 보호 불가 입장을 공고히 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정작 투자자의 가상화폐 소득에 대해서는 과세를 결정하면서 금융당국의 태도가 모순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 가상화폐 과세 유예 청원 4.8만명 돌파

27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최근 ‘암호화폐 세금의 공제금액을 증액해주시고 과세 적용기간을 더 미뤄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게재됐다. 해당 청원은 이날 오후 4시 기준 약 4만8600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인은 “아직 암호화폐 관련 제도는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시점에서 과세부터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투자자 보호장치부터 마련한 후 세금을 징수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암호화폐 관련 과세에 대해 5000만원 소득 이상부터 과세하고, 주식과 같이 2023년부터 적용되는 것으로 기간을 연장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 1월 1일부터 가상화폐를 통한 연간 250만원 초과 소득에 대해서는 20%의 양도소득세를 부과한다. 이는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 소득세법에 따른 조치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가상자산의 양도·대여로 발생한 소득은 ‘기타소득’으로 분류돼 20%의 세율로 분리과세가 적용된다. 지방세까지 포함하면 실제 세율은 22%다. 가령, 내년에 비트코인으로 1000만원의 차익을 본 투자자의 경우 25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750만원의 20%인 150만원과 함께 지방세 2%(15만원)을 합해 총 165만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가상화폐 소득에 대한 기본 공제액(250만원)은 금융투자소득 공제 금액인 5000만원에 훨씬 못 미친다.

◇ “투자자 보호 없다면서 세금은 왜 걷나”···뿔난 가상화폐 투자자들

이를 두고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가상화폐 투자자 보호 대책이나 관련 제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세부터 적용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금융당국이 가상화폐 투자자는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불만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국민들이 많이 투자한다고 (정부가) 관심을 갖고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정부가 모든 것을 챙겨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상화폐가 인정할 수 있는 화폐가 아니라는 것을 정부가 일관되게 얘기하고 있다”라며 “이 부분(제도권)에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가상화폐 투자자 A씨(31)는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할 수 없다면서 세금은 걷겠다는 건 모순이다”라며 “자산으로 인정할 수 없으니 투자자 보호 등의 관리도 하지 않겠다는 게 정부 입장인데 그럴 거면 세금은 왜 걷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가상화폐 정책과 관련해 투자자 보호보다는 자금세탁, 불법 자금거래 등을 감시·차단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가상화폐와 관련한 유일한 법적 규제인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은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자금세탁방지 및 신고제 도입 등의 규제를 구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상화폐 시장 규모가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는 만큼 규제책뿐만 아니라 투자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암호화폐연구센터장)는 “정부가 세금을 걷을 때는 국민에게 그에 합당한 혜택을 제공할 것을 전제로 한다”며 “세금은 걷으면서 투자자 보호는 뒷전으로 두는 것은 앞뒤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상화폐 소득에 세금을 부과한다면 정부에서 투자자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등 과세에 따른 조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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