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주민들은 택배노조 응원하기도
공원형 아파트 같은 문제 반복 가능성 커

21일 서울 강동구 고덕동 상일동역 5호선 1번 출구 앞에서 전국택배노동조합이 농성을 벌이고 있다. / 사진=변소인 기자
21일 서울 강동구 고덕동 상일동역 5호선 1번 출구 앞에서 전국택배노동조합이 농성을 벌이고 있다. / 사진=변소인 기자

[시사저널e=변소인 기자] 서울 강동구 고덕동 상일동역 5호선 1번 출구를 나서자마자 택배 배송 중단 사태가 빚어졌던 대단지 아파트와 전국택배노동조합의 천막이 함께 시야에 들어왔다. 조촐한 천막 아래서 택배노조 조합원 4명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21일 오전 찾은 농성 현장의 시위 분위기는 험악하지 않았다. ‘택배노동자의 건강도 소중합니다’라는 문구가 붙은 택배 차량과 ‘죽을 것 같이 힘들다! 도보배달.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저탑차량’이라는 현수막이 갈등 내용을 알렸다. 천막 주변에는 택배 노동자의 사진전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택배노조는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피로회복제도 주고 가시더라고요.”

한 택배노조원은 피로회복제 1박스가 들어있는 봉지를 가리키며 응원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입주민들과의 불쾌한 갈등이 이어질 줄 알았던 농성 현장에는 일부 입주민들이 방문해 응원의 목소리도 전한다고 했다.

21일 택배노조 농성 현장에 고덕동의 한 아파트 거주자가 피로회복제를 전달했다. / 사진=변소인 기자
21일 택배노조 농성 현장에 고덕동의 한 아파트 거주자가 피로회복제를 전했다. / 사진=변소인 기자

아파트 주민들의 의견이 갈리면서 차라리 서명운동을 받으라는 거주자들의 조언도 이어졌다. 농성 초반 입주민들과의 갈등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고생한다며 응원하는 이들이 생겼다는 것이 조합원의 전언이다.

택배노조 측은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요구하고 있다. 시속 10km의 저속 주행을 약속하면서 안전요원까지 배치하고 후면 카메라 의무 설치 조건으로 지상 택배 배송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아파트 측에서는 안전, 보도블럭 깨짐 등을 이유로 택배차량의 지상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데 택배를 배송하려면 몇 미터 못 가 다시 정차하기 때문에 과속으로 달릴 이유도 없다”며 “아파트 입주자대표자 등과 만나서 타협을 하고 싶은데 만나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리를 옮겨 해당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자 ‘오토바이 진입금지’ 문구가 눈에 띄었다. 해당 아파트는 공원형 아파트로, 차량 등이 없어 한적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런 가운데 한 택배 차량이 지상에서 배송을 하고 있었다.

해당 아파트는 안전 및 시설물 훼손을 이유로 지난 1일부터 택배 차량의 지상도로 통행을 막고 있다. 다음 날 택배노조는 택배 문 앞 배송을 거부하며 단지 정문 앞에 택배 물건을 쌓아놨다. 하지만 문 앞 배송을 원하는 입주민들의 항의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이어지자 지난 16일 다시 문 앞 배송을 재개했다.

배송은 재개됐지만 갈등은 갈무리되지 못했다. 여전히 농성은 농성대로 이어지고 합의는 부재한 상황이다. 이런 갈등에 부담을 느낀 입주민들은 택배 거래량을 줄이는 등의 모습도 보이고 있었다.

해당 아파트에 거주하는 A씨는 최근 온라인 구매보다 오프라인 구매를 선보하고 있다고 전했다. A씨는 “우리 아파트의 택배 배송 갈등에 대한 문제를 후문에 쌓인 택배 물량을 보고서야 알게 됐다”며 “택배차량의 지상 출입 금지 관련 논의에 참여한 바가 없고 이런 갈등이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도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중소 택배회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 온가족이 이런 이슈가 마무리되기 전까지 웬만하면 택배를 시키지 않기로 했다”며 “택배 뉴스를 접한 지방에 있는 사촌들까지 연락을 와서 창피하다”고 전했다.

그는 “택배차량 시간을 정해서 단지 내 진입하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면 될 것 같은데 아파트 측에서 이렇게까지 지상출입 금지 조치를 취하는 것은 선을 넘는 행동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지상에 차가 다니지 않는 공원형 아파트의 경우 비슷한 문제를 겪는 곳이 많은데 원만히 합의돼 배송이 진행되는 경우도 많다. 택배노조에 따르면 전국 지상출입금지 아파트는 179곳에 달한다.

택배 배송 중단 사태가 빚어졌던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에서 21일 택배 배송이 이뤄지고 있다. / 사진=변소인 기자
택배 배송 중단 사태가 빚어졌던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에서 21일 택배 배송이 이뤄지고 있다. / 사진=변소인 기자

지난 2018년에도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신도시 아파트에서 비슷한 갈등이 일어났다. 아파트 측은 단지 내 안전과 소음을 이유로 택배차량의 지상출입을 금지시켰다.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는 2019년 1월부터 지상공원형 아파트에 대해 지하주차장 높이를 2.3m에서 2.7m 이상으로 높이도록 하는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법 개정 이전 승인받은 아파트의 경우 지하주차장 높이가 낮아 택배차량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갈등이 또 발생할 수 있다. 같은 문제가 되풀이 되면서 임시방편이 아닌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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