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농심 새 시대 개막···LS·대상에서는 ‘돋보이는 승계후보자’ 나타나기도
한국타이어家 표대결선 ‘3%룰’이 변수로···女사외이사·ESG경영 등 시대변화 반영

/사진=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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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정기주주총회 시즌이 마무리됐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버금가는 굵직한 사안은 없었으나 유의미한 안건들이 통과됐다는 게 재계의 안팎의 공통된 시선이다. 후계를 굳건히 하거나 가늠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며, 경영권 분쟁이 있는 기업에서는 주주들의 표심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2일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법인 588곳 중 587곳이 지난달 말까지 정기주총을 마쳤다. 작년 말 상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달에도 주총이 가능해졌지만, 오는 9일 주총을 예고한 미창석유공업을 제외한 모든 상장법인이 2월 말부터 지난달 말까지 주총을 치룬 상태다.

최대 관심사는 승계였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은 이번 주총을 통해 현대모비스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았다. 그룹 내 마지막 공식직함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정의선 현대차 회장의 취임을 앞두고 속속 지위를 내려놓기 시작했다. 작년 3월 현대차 사내이사에서 내려왔으며 21년 만에 회사 이사회 의장직도 장남에 이양하기도 했다.

이번 주총을 통해 현대차그룹의 ‘정의선 체제’가 본격화됐다고 평가된다. 이미 현대차 및 그룹 경영 전반을 담당하고 있던 정 회장이 명실상부 그룹 중추로 거듭났다는 평가다. 내달 1일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현황을 발표할 계획인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차그룹의 동일인을 정 명예회장에서 정 회장으로 교체해 발표할 계획이다.

고(故)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의 장례 중 개최된 농심홀딩스 주주총회에서는 신동원 부회장이 사내이사로 재선임됐다. 신 부회장은 농심홀딩스와 그룹의 중추 사업회사 농심의 대표직을 맡아 경영전반을 주도했다. 농심홀딩스 직함은 ‘회장’이었지만 농심의 직함은 ‘부회장’이었던 그는 이번 주총이후 농심의 회장으로 추대될 예정이다.

구자열 LS 회장의 장남 구동휘 E1 대표는 최근 E1과 LS네트웍스 사내이사에 선임됐다. 중장기적 유력 총수 후보로 거론된다. 임창욱 명예회장의 차녀 임상민 전무가 유력한 후계자로 평가돼 온 대상그룹에서는 장녀 임세령 전무가 주총시즌 중 부회장으로 승진하고 대상홀딩스 등기이사로 선임되면서 장녀 중심의 승계가 본격화될지 이목이 집중된다.

‘형제의 난’이 벌어진 한국앤컴퍼니그룹(한국타이어그룹)과 ‘조카의 난’이 촉발된 금호석유화학의 주총이 주목받았다. 특히 한국타이어그룹의 경우 장남인 조현식 한국앤컴퍼니 부회장과 차남인 조현범 한국앤컴퍼니 사장 모두 이른바 ‘3%’룰이 적용돼 의결권의 최대 3%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높은 지분을 보유한 조 사장에게 다소 불리하게 적용됐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주총에서는 조 사장이 제안한 안건들이 통과되며 압승을 거둔 모습이었으나, 지주사 한국앤컴퍼니 주총에서는 조 부회장계가 추천한 이한상 고려대 교수가 조 사장 측이 추천한 김혜경 전 청와대 여성가족비서관을 누르고 사외이사·감사위원으로 선임됐다.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3%룰 적용으로 양측분쟁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 유력하다.

박철완 금호석유화학 상무의 제안으로 표 대결이 이뤄진 금호석유화학 주총에서는 박찬구 금호석유회장의 압승으로 마무리됐다. 박 상무는 최대주주지만 우호지분 면에서 박 회장에 다소 밀리는 실정이다. 이곳 역시 내년 주총까지 상당한 갈등이 촉발될 것으로 점쳐지는 상황이다. 주총직후 금호석유화학은 박 상무를 ‘회사 충실의무 위반’을 이유로 해임했다.

또한, 주요 기업가에서는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발맞춰 여성 사외이사들을 대거 발탁했다. 내년 8월부터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인 상장법인은 특정 성(性)으로만 이사회를 구성할 수 없다. 화두로 떠오른 ESG경영의 이행을 위한 특화조직 신설 및 탄소중립방안 등이 이번 주총을 통해 논의·공개되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이번 주총시즌을 돌아보며 시대적 요구와 변화가 적극 반영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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