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노동자·건정심 가입 단체 “건보 목적 위반·국민 부담···전액 국고로 지원해야”
절차 문제도 지적 “건정심 의결 없이 사회적 합의 건너 뛰어”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3월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백신·치료제 상황점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3월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백신·치료제 상황점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이준영 기자] 정부가 코로나19 의료인력 지원 비용을 건강보험 재원으로 사용한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의료기관 노동자들과 환자 단체 등은 건강보험 재정의 고유 사용 목적에 맞지 않고 국민들의 건보료 부담이 커진다는 입장이다. 의료인력 지원비는 전액 국고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26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보건복지부는 코로나19 대응 의료인력 지원을 위한 한시적 건강보험 수가지원을 보고했다. 이는 전날 국회 추경안 결정에 따른 것으로 코로나19 대응 의료 인력을 위한 전체 지원금 중 50%인 480억원을 건강보험 재정에서 사용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의료기관 노동조합 및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 건정심 가입자 단체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2일 나순자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정부와 국회가 의료 인력 지원비의 절반을 건강보험 재정에서 사용하기로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특히 기재부가 이러한 결정에 영향을 줬다. 이는 국민의 질병이나 부상에 대한 예방, 진단, 치료, 재활과 출산·사망 및 건강증진을 위한 건강보험기금 목적에 위반한다”며 “코로나 상황에서 고생하는 보건의료 인력 지원은 전액 국고로 해야 한다. 특수 목적이 있는 기금을 사용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건정심 가입자 단체들도 “의료인력 지원은 건강보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백신 접종에 이어 의료인력 지원까지 건강보험에서 지출하게 되면 결국 국민의 건보료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러한 입장을 밝힌 건정심 가입자 단체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한국YWCA연합회, 한국외식업중앙회 등이다.

전진한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보장성 강화에 사용해야 할 건보재정의 부당 사용은 위법이고 사회보험 원칙을 훼손한다”며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보건의료 인력에 추가적인 보상을 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나 이는 국가나 병원 경영자들이 부담할 몫이다. 건강보험 재정으로 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전 국장은 “기재부가 코로나 재난 상황에서도 의료와 복지에 사용하는 비용을 아끼려고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했다.

또 “현재 건강보험은 문재인 케어 목표 보장성 70%에도 턱없이 못 미치고 있다”며 “국가 정책 상 보건의료인력 지원과 무상 백신사업 등은 일반회계재원으로 해야 한다. 보험료는 정률부과이기에 세금에 비해 역진적이고 서민의 기여분이 크다. 건강보험료가 낭비되면 부담은 노동자·서민의 부담으로 전가된다”고 언급했다.

이들은 정부의 결정 과정에서 절차상 문제도 지적했다.

건정심 가입자 단체는 “건강보험에 관한 법정 최고결정기구인 건정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국회가 일방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그 자체도 절차상 중대한 하자다”고 했다. 이들은 정부와 국회가 건강보험 재정지출을 사회적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데 대해 재발방지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건강보험료를 사용한 보험수가 인상 방식이 보건의료인력 지원비에 재대로 사용될지 불투명하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전 국장은 “이번 인력지원 수당 중 절반인 480억원을 보험료를 사용해 보험수가 인상 방식으로 처리한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보험수가를 인상하는 방식은 병원 경영진에 지원하는 것이지 노동자 직접지원이 아니다”며 “실제 노동자들의 임금에 100%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방식이다. 정부가 노동자들의 임금에 직접 반영될 국고를 통해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조만간 건정심을 열어 의료인력 지원을 위한 건강보험 수가 사용 방식을 결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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