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 “의장이 의원 전수 직권조사 해야”
국회의원 25% 농지 소유·與 의원들 투기 의혹 보도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당대표 직무대행(왼쪽)이 지난 11일 오후 국회 의장실을 찾아 박병석 의장에게 '21대 국회의원 부동산 전수조사 건의서'를 전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당대표 직무대행(왼쪽)이 지난 11일 오후 국회 의장실을 찾아 박병석 의장에게 '21대 국회의원 부동산 전수조사 건의서'를 전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이준영 기자] 국회의원 대상 부동산 투기 전수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제안에 국민의힘이 거부하고 있으며 전수조사 주도 건의를 받은 국회의장도 이를 방관하고 있다. 시민사회는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기 위해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가 가장 먼저 조사 대상이 돼야한다고 제기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사전 투기 의혹이 발생한 후 국회의원들에 대한 부동산 투기 조사 여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여당은 지난 11일부터 국회의원 부동산 거래 및 소유 현황에 대한 국회의원 전수조사를 제안했다. 국민의힘은 거부하고 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은 15일 국회에서 열린 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국민의힘에 모든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부동산 전수조사를 제안한다. 국회의원 300인에 대한 전수조사는 절대다수 국민이 찬성하고 있다”며 “지난주 국회의원 300인 전수조사 제안했더니 국민의힘 김종인 위원장이 다 하자고 말씀해서 합의하고 할 수 있을 거로 판단했는데 국민의힘에서 이러저런 조건 갖다 붙이면서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국회의원 뿐 아니라 자치단체장, 광역시도의원, 기초의원까지 모두 조사하자”며 모든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부동산 전수조사를 제안했다.

그러나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거부했다. 이날 주 원내대표는 “우리 당까지 끌고 들어가려 하는 것에 나쁜 의도가 있다고 보여 전수조사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민주당은 자당 소속 의원에 대한 전수조사를 엄격하게 하면 된다. 우리 당 의원들도 거의 전원이 스스로 전수조사하자는 요청을 해 전수조사할 것”이라고 했다. 공동 전수조사를 거부한 것이다.

거대 양당 간 국회의원 전수조사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 11일 김 직무대행으로부터 “국회의장 주도 하에 전수조사가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건의를 받은 박병석 국회의장도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당시 김 직무대행은 취지에 공감한다고만 밝혔다.

이에 국회의장이 의원 전수조사를 주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변호사)는 “국회 전체의 사무 감독 권한을 가진 국회의장이 전체 의원들의 불법적 투기 여부에 대해 외부 전문가를 구성해 조사를 해야한다”며 “이는 여야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 아니고 교섭 단체의 권한도 아니다. 국회 내부 구성원의 법·윤리 위반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는 감사원 등 외부 감찰 대상에서 제외돼있기에 국회의장 주도의 내부 감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어 “미래의 투기를 막기 위한 여러 법안들이 발의됐지만 이미 발생한 투기에 대해 처벌하지 않으면 진정성이 없다.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부터 투기 행위 여부를 조사해서 부당 이익을 환수해야한다”며 “절대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국회의장을 설득하면 된다. 지금이 대한민국에 만연한 부동산 투기를 근절할 수 있는 마지막 계기다”고 했다.

이에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국회의원 전수조사에 대해 여야 간 협의가 이뤄지는지 지켜보고 있다”고 답했다.

현재 여러 국회의원들이 농지 소유와 땅 투기 의혹을 받고 있다. 최근 민주당의 김경만·김주영·서영석·양이원영·양향자 의원 등은 본인이나 가족의 투기 의혹이 언론에 제기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국회의원 25%, 고위공직자 40%가 농지를 소유하고 있다. 지난달 1일 경실련이 21대 국회의원 300명 본인과 배우자의 농지(전답·과수원) 소유 실태를 조사한 결과 국회의원 300명 중 25.3%인 76명이 농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들이 가진 농지는 1인당 평균 약 1592평(0.52㏊)로 1억7500만원 규모였다. 1㏊ 이상의 농지를 소유한 국회의원은 8명이었다.

경실련은 “우리나라 농가의 48%에 해당하는 48만7118호가 경지가 없거나 0.5㏊ 이하를 갖고 있다. 의원들의 소유 규모는 작지 않은 수준이다”고 했다.

경실련은 이들이 상속받았음에도 농업경영을 하지 않았다면 농지법 위반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농지법은 상속으로 농지를 취득한 경우 농업경영을 하지 않으면 1ha까지만 소유할 수 있도록 했다. 경실련은 농지 소유 및 이용 관련 정책 결정과 입법을 담당하는 국회의원의 농지 소유는 이해충돌 여지가 있으며 투기나 직불금 부당수령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했다.

또한 문재인 정부 고위공직자 1862명 중 38.6%인 719명이 농지를 가지고 있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국 국장은 “국회의원들이 가지고 있는 농지에 대해 취득 경위와 현재 경작 상황, 개발정책과의 연관성 등을 조사해봐야 한다”며 공동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 대표는 “국회의원 전수조사 시 본인과 배우자 직계비속에 대해 공개된 재산에 대해서는 시기를 가리지 않고 조사해 문제가 있다면 징계절차나 사법절차를 이행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강은미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의힘은 민주당 먼저 조사하라며 전수조사를 회피하고 있고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응해야만 전수조사가 된다며 사실상 조사를 미루고 있다”며 “이는 국회의원 먼저 투명함을 보여달라는 국민의 요구를 우롱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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