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자본주의 본고장이라는 미국도 차등의결권으로 오너 경영권 방어수단 인정
국내에선 여전히 선악잣대로 오너경영 판단 전향적 판단 필요한 시점

김범석 쿠팡 대표. / 사진=쿠팡
김범석 쿠팡 대표. / 사진=쿠팡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쿠팡이 한국이 아닌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배경으로 지목된 ‘차등의결권’이 주목받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번 쿠팡 상장을 계기로 수십 년 전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오너경영에 대한 인식 및 평가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차등의결권은 쉽게 말해 창업주의 의결권을 강화시켜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다. 오너 주식에 일반주식의 몇 배에 해당하는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김범석 쿠팡 의장의 경우 이번 상장으로 29배의 차등의결권을 부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싱가포르 등 세계 각국에서 도입해 실시 중인데 한국은 아직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한때 도입이 논의 됐으나 일각에서 해당 제도가 재벌세습을 제도화 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를 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차등의결권 논란을 계기로 우리사회도 오너경영과 경영권 방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순히 ‘좋다’ 혹은 ‘나쁘다’가 아니라 하나의 경영방식으로 이해하고 접근해야한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재벌 및 오너경영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으로만 접근하기 쉽지 않다. 국내 대부분의 재벌들은 태생부터 다른 국가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소수 지분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한국식 재벌 시스템은 70년대 박정희 정권 당시 집중적으로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를 놓고 과거 운동권에선 재벌을 착취하는 주체로 비판하기도 했다.

이후 개발론자 및 보수우파들은 무조건적으로 오너경영을 옹호하고 운동권 등 반대론자들은 재벌을 해체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풍토가 조성됐는데, 약 50년이 흐른 2021년에도 이 같은 정서적 분류법이 어느 정도 적용되고 있다.

허나 이제 오너경영과 관련해 보다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치적, 정서적 판단을 배제하고 장단점을 가진 하나의 경영방식으로 이해하고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차등의결권 논쟁이 하나의 상징적 계기가 되고 있다. 주주자본주의의 본고장처럼 여겨지는 미국에서도 어느 정도 오너의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제도가 있고, 이 때문에 잘 성장한 국내 기업이 투자받기 위해 미국에 상장하는 사례가 형성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한국 재벌들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편법을 저지르고 모범적 모습을 보이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삼성전자의 반도체 대규모 투자, 현대차의 미래차 투자 등은 오너경영의 장점을 살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구글, 페이스북, 스웨덴의 발렌베리 등 세계적 기업들의 성장 배경 중 하나로 차등의결권이 거론되기도 한다.

특히나 카카오, 쿠팡 등 과거와는 태생부터 다른 자수성가 강호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는 만큼 계속해서 과거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로 오너 경영 문제를 접근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을 일궈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과 인정이 있어야 계속해서 기업을 키우려는 풍토가 조성된다는 것이다. 공정경제 3법 도입 등 오너경영 부작용을 막겠다는 법을 도입하려는 노력만큼, 기업을 일군 오너들에 대한 방어권 보장에 대한 고민도 함께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정주 전경련 기업제도혁신팀장은 “전문경영인이 하든 오너경영을 하든 하나의 경영 형태일 뿐”이라며 “내용이 아니라 방식을 선악으로 보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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