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CPTPP 가입 논의 박차···비공식 협의, 제도 검토 착수
미국 가입여부 미지수···"리스크 관리, FTA 환경 변화 적응 차원에서 유익"

동맹 강화와 다자주의를 내세운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사진=연합뉴스
동맹 강화와 다자주의를 내세운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미국 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동맹 강화와 다자주의를 내세운 바이든 행정부가 CPTPP에 다시 들어갈 가능성이 나오면서 우리 정부도 가입을 적극 검토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재가입 여부에 관계없이 우리는 CPTPP에 가입하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재 CPTPP에는 호주와 뉴질랜드, 캐나다, 일본, 싱가포르, 브루나이, 칠레, 말레이시아, 멕시코, 페루, 베트남 등 11개국이 가입해 있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 미국은 CPTPP 전신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주도적으로 만들었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탈퇴했다. 이후 일본과 호주 등이 TPP를 수정해 CPTPP를 만들었다.   

CPTPP는 그동안 핵심 국가인 미국이 빠지면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다자간 협력과 국제 규범을 준수한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CPTPP의 역할이 강화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이에 그간 CPTPP 가입에 원론적 입장을 보이던 우리 정부도 가입을 적극 검토하기 시작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CPTPP 가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실무부처에서도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산업통상자원부 자유무역협정정책기획과 관계자는 “지난달 가입을 적극 검토하면서 준비해 나가겠다고 밝힌 뒤 이와 관련한 비공식 협의와 국내 제도 등을 살피며 가입을 검토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미국 가입에 앞서 우리가 선제적으로 먼저 가입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선제 가입을 포함한) 모든 상황을 고려해 가면서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결정할 예정”이라며 “준비 단계이기 때문에 확정된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아직 바이든 대통령은 CPTPP 참여 여부에 대해 구체적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바이든 정부의 성향을 근거로 미국의 CPTPP 재가입을 예상하지만 미국이 다른 선택지를 내놓을 것이란 반론도 있어 섣부른 판단은 이르다는 지적이다.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미국이 CPTPP에 가입하기 보다는 새로운 협의체를 하나 만들 가능성이 더 높다”며 “CPTPP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탈퇴하고 나서 격하된 것이기 때문에 안 들어 갈 것이다. 지금 올해 당장 새로운 협의체 설립에 착수할 것 같지는 않지만 큰 방향은 그렇다”고 말했다.  

미국의 가입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전문가들은 미국의 행보와 별개로 CPTPP 가입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은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은 최근 연구보고서에서 “동아시아 글로벌 가치 사슬 변화에 주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CPTPP 가입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CPTPP를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심상렬 광운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CPTPP에 가입하면 가입 국가간 상호 호혜적인 세금, 무역 혜택을 누리게 된다. 우리가 가입하지 않는다면 그 블록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라며 “산업별, 지역별 득실을 따지기 이전에 큰 틀에서 우리가 기회를 잃거나 다른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구체적인 유불리를 따지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리스크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중국이 중심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참여하는 상황에서 CPTPP에 들어가지 않는 다면 제3국 입장에서 봤을 때 ‘한국은 중국 편에 들어가는 것 아닌가’라는 시각으로 볼 수도 있다. 미중갈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제 사회에서는 TPP, 미국-캐나다-멕시코 무역 협정(USMCA) 등 발전된 형태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나왔다. 반면 우리는 2012년 한미FTA 이후 발전된 형태의 FTA를 논의하지 않으면서 점점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동과 디지털 통상 분야가 대표적이다. 한미FTA에는 없었던 강제 노동 금지, 노동자에 대한 폭력 금지, 이민 노동자, 직장에서의 성차별과 관련한 규범이 TPP나 USMCA에는 담겨 있다. 

USMCA나 미일디지털무역협정에 있는 컴퓨팅 설비, 소스코드, 공공데이터, 인터렉티브 컴퓨터 서비스 등에 대한 조항은 한미FTA에는 찾아볼 수 없다. CPTPP를 반전의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는 조언이다. 

김 원장은 “미국이 새롭게 협의체를 착수하면 USMCA를 모범사례로 삼을 것이다. USMCA가 가장 미국의 이해를 많이 반영했고 무역 규범을 세밀하게 정해놨다. TPP는 이보다 느슨하고 한미FTA는 더 허술하다”며 “CPTPP라도 들어가서 협상하고 있는 것이 바이든 정부가 뭔가 새로운 협의체를 착수했을 때 대비하기 좋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CPTPP에 가입하지 않고 신통상 협의체를 만든다 하더라도 우리가 미리 중간 단계인 CPTPP에 들어가 만반의 대비를 하는 게 향후 노동 규범이나 디지털 통상 등의 변화가 더 크게 반영된 협의체를 대비하기 수월하다는 의미다. 

우리가 실제 CPTPP 가입을 신청한다고 해도 절차가 순조롭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심 교수는 “CPTPP에서 일본의 입김이 크다. 우리가 CPTPP에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기득권자인 일본이 불편한 한일관계속에서 우리에게 기회를 줄지는 의문이다”며 “우리가 가입한다고 했을 때 일본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다. 또 다른 요구조건을 통해 방해할 수도 있어 가입이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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