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재정건전성 지키고 국민 부채는 급증
중대재해법·공정경제3법 실효성 후퇴
민심 반영되는 선거제·정치 개혁 필요

[시사저널e=이준영 기자] 어느 때보다 삶이 어려운 시기다. 국민들은 코로나19로 상상조차 못했던 어려움을 겪었고 이 고통은 취약계층이 더 컸다.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에 더해 방역을 위한 영업제한 조치로 매출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들은 정부의 방역 조치를 따랐지만 정부여당의 지원은 실효성이 없었다. 한달 월세도 안되는 일회성 지원금으로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실업급여 등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특고와 프리랜서들은 코로나로 일거리가 뚝 끊겼다. 코로나 감염을 우려한 대면 서비스 위축으로 대리운전기사, 학습지 교사, 아이 돌보미, 산후 돌보미, 학원 강사, 방과 후 강사, 간병인 등 특고와 프리랜서들의 일거리도 줄었다.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9월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8개월 본인의 의지가 무관하게 실직을 경험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15.1%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실직 경험은 비정규직(31.3%)이 정규직(4.3%)보다 7.3배 높았다.

최근 민주노총이 26개 직종의 특고 노동자 2461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확산 이후 특고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변화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이 없어 소득이 줄었다’는 응답이 57.5%로 가장 많았다. ‘실직했다고 볼 만큼 오래 쉬었다가 15.4%였다.

코로나19로 소득이 감소한 특고 노동자들은 대출 등 개인적으로 버텼다. 응답자의 55.7%가 ‘대출 등 개인적으로 해결했다’고 답했다. 실업급여를 받았다는 응답은 1.8%에 그쳤다.

이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했다. 정부는 영업이 금지되거나 매출이 감소한 자영업자에게 일회성으로 최대 300만원을 지원하지만 이는 매달 나가는 임대료 한달 치에도 미치지 못한다. 특고와 프리랜서에는 일회성으로 최대 150만원을 지급했으나 생계를 꾸리기에는 부족했다.

정부 지원 실효성이 낮지만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강조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재정준칙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정부의 재정건전을 위한 노력으로 한국은 지난해 재정적자가 선진국 중 최소 수준이었다. 이는 그만큼 어려운 국민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부족했다는 의미다. 주요국들은 코로나19 대응 재정을 쏟아 붓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상대적으로 돈을 아꼈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세계 재정상황 관찰 보고서에서 작년 코로나19에 대응한 선진국의 재정부양책 규모를 GDP의 9.3%로 추정했다. 이에 선진국의 재정수지 적자는 재작년 GDP의 3.3%에서 작년 14.4%로 오르고, 정부부채는 재작년 GDP의 105.3%에서 작년 125.5%로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반면 한국의 작년 코로나19 대응 재정부양책 규모는 GDP의 3.5%로 20개 선진국 중 3번째로 작았다. OECD가 추산한 작년 한국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3.9%로 32개 선진국 중 8번째로 작다.

반면 국민들의 부채와 파산은 늘었다. 지난해 3분기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 대비 100.6%로 처음 100%를 넘었다. 같은 기간 선진국 평균은 78%, 50여개국 평균은 65.3%였다.

지난해 11월까지 접수된 개인파산은 4만5631건으로 전년 동기보다 3914건 늘었다. 같은 기간 법인 파산 접수 건은 984건으로 전년 848건보다 100건 넘게 증가했다.

정부여당이 내세운 개혁 법안들도 결국 후퇴했다. 일터에서 노동자의 사망 사고 등 재해를 막자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민주당이 외면했지만 산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과 정의당 강은미 의원의 단식 농성으로 최근 임시국회에서 통과됐다.

그러나 실효성이 매우 떨어진 형태였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거대 양당이 합작한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존 의원안(민주당·국민의힘·정의당안)과 정부안보다 완화됐다.

거대양당은 5인 미만의 사업장은 법 적용에서 제외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3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그러나 2019년 한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494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최근 3년(2017~2019년) 전체 재해자 30여만명 중 5인 미만 사업장 재해 비중은 32.1%, 전체 사망자 30여만명 중 5인 미만 사업장 사망자 비중은 22.7%를 차지했다. 약 500명에 달하는 노동자의 사망은 이 법의 사각지대가 됐다.

3년간 법 적용이 유예된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2019년 산재 사망자는 1245명으로 전체 기업의 61.6%를 차지했다. 산업재해자 수로 보면 76.6%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또한 거대양당은 원청 공동책임 범위의 경우 안전 및 보건 조치 의무를 부여하는 범위에서 ‘발주’는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경영책임자 책임의무에 발주처의 공기단축 요구금지 및 일터괴롭힘 예방에 대한 규정도 뺐다.

한달 가까이 국회에서 단식 농성 한 산재 사망자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씨는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다. 국민들 수천 명이 죽고 수만 명이 다치는데도 국회와 기업, 공무원들은 절대 이해하지 않는다”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엉망으로 죽었기에 사무치는 한이 폭발할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살리고자 저희가 나섰다. 이 법을 막고 있는 자들을 똑똑히 기억해서 다음 선거 때 심판하겠다”고 말했다.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씨는 “5인 미만 사업장은 왜 제외시켰는지, 집단 괴롭힘은 왜 제외했는지 백혜련 법안심사소위원장을 만나 죽음에도 차별이 있는지 묻고 싶다. 왜 죽음에 차별이 있느냐”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공정한 경쟁 기반 및 소수주주 보호와 총수일가 독단 경영 방지를 목적으로 한 공정경제 3법도 174석을 차지한 민주당에 의해 정부의 원안이 수정 처리되면서 실효성이 퇴색됐다.

민주당은 감사 선임 시 최대주주 의결권 제한 3% 조항을 최대주주 합산이 아닌 개별 방식으로 수정했고,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이 폐지에서 유지로 수정됐다. 다중대표소송 요건에서 상장사 지분 보유는 0.5%로 50배 강화했다.

반면 국회는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의 이해충돌을 막는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은 처리하지 않았다. 처리하겠다는 여러 번의 약속과 달랐다. 국회의원들은 ‘국민 소환제’마저 거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선출된 권력 가운데 오직 국회의원에 대해서만 소환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

2016년말 촛불혁명의 수혜로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고 21대 거대 여당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촛불시민이 외친 불공정과 불평등, 사회적 차별 해결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여당과 정부의 시선이 국민에게 있지 않고 기득권층에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결국 정치가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민심이 반영되는 선거제와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 지난해 제대로 이루지 못했던 ‘국민들의 투표가 제대로 의석수로 반영되는 비례성’을 갖춘 선거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민심이 국회 의석 수에 제대로 비례적으로 반영되고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통로가 넓어지는 것이 국회와 정부가 국민을 위해 일하게 하는 방법이다. 정부와 국회는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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