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열화 된 노조처우 반발심리 자극 해석도
기아차는 동결···현대제철 교섭, 실체 없다던 양재동 가이드라인 가늠좌 되나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현대제철이 14개월여 만에 파업에 나선다. 작년도 임금·단체협약 협상난항이 표면적 이유로 꼽힌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복잡한 셈법이 숨어 있다는 게 업계 안팎의 공통된 전언이다.

12일 현대제철 노조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부터 확대간부 파업이 개시됐다. 13일 오전 7시부터 48시간 동안에는 전 조합원의 파업이 예고돼있다. 현대제철은 작년도 임단협을 체결하지 못한 현대차그룹 내 유일한 계열사다. 포스코·동국제강 등 주요 철강사들 역시 작년도 임단협을 체결했다. 그룹과 업계 등과 대비되는 행보임에는 분명하다. 동시에 이번 파업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다.

노조의 파업결의는 지난해 11월 이미 가결됐다. 87%의 높은 찬성률을 기록했음에도 노조는 사측과 협상을 이어왔다. 노조는 총파업 지침을 통해 “15차례 교섭이 진행되는 동안 회사가 성의 있는 자세로 교섭에 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사측과의 교섭 과정에서 앙금이 쌓이고 감정의 골이 깊어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각에선 협상이 교착국면에 접어든 원인으로 이른바 ‘양재동 가이드라인’을 지목한다. 일종의 노조서열화를 뜻한다. 현대차그룹에서 현대차를 가장 상위에 올려놓고, 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제철 및 기타 계열사들을 순차적으로 차등 대우하는 풍토를 노조가 명명한 것이다. 현대차 노무담당 윤여철 부회장의 이름을 따 ‘윤여철 가이드라인’이라 불리기도 한다.

현대차그룹에서는 그동안 이 같은 가이드라인의 실체 자체를 부정해왔다. 그럼에도 그룹 안팎에서는 암묵적으로 지켜져 온 일종의 ‘룰(rule)’ 이라 입을 모은다. 지난해 현대차는 2년 연속 무분규 임단협을 체결했다. 작년의 경우 11년 만의 임금동결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시국임이 감안됐다. 이에 그룹 내 비(非)현대차 노조들이 즉각 반발했다.

양재동 가이드라인에 따라 현대차의 동결은 곧 잔여 계열사의 임금 동결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주장했다. 임금동결뿐 아니라, 현대차 노조의 협사결과에 따라 좌지우지 돼 하는 비현대차 노조들은 연대를 구축해 공동으로 대응했다. 기아차 노조는 4주간의 부분파업을 실시해 지난해 11월 22일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성과금 150%, 특별격려금 120만원, 재래시장상품권 150만원 등이 합의안에 포함됐지만 기본급은 동결됐다.

앞서 현대제철 노조가 “성실하지 않다”고 주장한 사측의 자세란, 결국 암묵적 가이드라인 영향으로 이견을 좁히지 못한 데 따른 불만이란 해석이 나온다. 노조는 △기본금 12만304원 △생활안정지원금 300% △노동지원격려금 500만원 등을 요구했다. 이에 사측은 △기본금 동결△경영정상화 격려금 100% △위기극복 특별격려금 100만원 등을 제시했다.

한 그룹사 노조 관계자는 “현대제철 노조 입장에서는 그간 다른 계열사들에 비해 낮은 처우를 받은 것에 대한 불만이 현대차 노조의 임금동결로 고조됐을 수 있다”면서 “현대제철 측도 기본금 동결만큼은 양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격려금·지원금 등이란 명목의 부가수익을 조율하는 선에서 양측의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 내다봤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이번 현대제철 노사의 합의가 주목되는 것은 12만304원의 기본금을 과연 사측이 양보할 수 있는지 여부”라면서 “기아차에 이어 현대제철까지 기본금을 동결한다면 그간 현대차그룹이 실체가 없다고 주장해 온 양재동 가이드라인이 여전히 그룹 계열사 노사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심증을 더욱 짙게 해주기 때문”이라 부연했다.

한편, 현대제철은 이번 기본급 동결의 이유로 경영불확실성을 내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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