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미만 제외
50인 미만 3년 유예···작년 50인 미만 사망자 1245명
경영책임자 및 원청 책임·처벌 수위 의원·정부안보다 완화

[시사저널e=이준영 기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거대 양당이 합작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산업재해 방지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양당은 5인 미만 사업장을 법 적용에서 제외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지난해 5인 미만 산재 사망자는 494명, 50인 미만은 1245명이었다. 경영책임자 및 원청의 산재 책임은 의원안·정부안보다 완화됐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1소위를 통과했다. 소위 구성은 민주당과 국민의힘 의원들로만 이뤄져있다.

거대 양당이 합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내용은 기존 의원안(민주당·국민의힘·정의당안)과 정부안보다 완화됐다.

양당은 5인 미만의 사업장은 법 적용에서 제외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3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그러나 지난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494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최근 3년(2017~2019년) 전체 재해자 30여만명 중 5인 미만 사업장 재해 비중은 32.1%, 전체 사망자 30여만명 중 5인 미만 사업장 사망자 비중은 22.7%를 차지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상당 부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사각지대로 남게 됐다.

자료=정의당

3년간 법 적용이 유예된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작년 산재 사망자는 1245명으로 전체 기업의 61.6%를 차지했다. 산업재해자 수로 보면 76.6%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 관계자는 “5인 미만 사업자의 작년 사망자 494명은 계속 발생할 수 있게 됐다. 50인 미만 사망자 1245명도 유예 기간 동안 되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양당은 경영책임자 및 원청 책임을 의원안보다 완화했다. 양당은 경영책임자의 정의를 ‘대표이사 또는 안전보건 담당 이사’로 결정했다. 대표이사와 안전담당 이사 중 한명만 책임을 지도록 해 대표이사가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게 됐다. 박주민 의원안에는 경영책임자를 ‘대표이사 및 이사’로 해 둘 다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양당은 원청 공동책임 범위의 경우 도급, 용역, 위탁으로 정리했다. 그러나 안전 및 보건 조치 의무를 부여하는 범위에서 '발주'는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경영책임자 책임의무에 발주처의 공기단축 요구금지 및 일터괴롭힘 예방에 대한 규정도 빠졌다.

이에 발주처의 공기 단축 요구 등으로 산재가 발생해도 발주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또한 양당은 경영책임자의 미흡한 조치로 산재 사망이 발생했을 경우 처벌 수위를 기존 의원안보다 낮췄다. 소위 의결안에 따르면 내년부터 노동자가 사망하는 산업재해가 일어나면 안전조치가 미흡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 또는 안전담당 이사에게 1년 이상 징역,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법인이나 기관은 5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이는 기존 의원 발의안이나 정부안보다 후퇴한 것이다. 하한형을 대부분 없애고 상한형도 낮췄다.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 안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안전 및 보건 의무를 위반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때 5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법인에는 10억원 이상 3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 안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억원 이상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강은미 의원 안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000만원 이상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의원안보다 후퇴했다는 지적을 받은 정부안의 2년 이상 징역, 5000만원 이상 10억원 이하 벌금 보다도 소위 의결안은 더 완화됐다.

이 외에 양당은 5년간 안전 의무 등을 3회 이상 위반할 경우 중대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는 인과관계 추정 조항을 삭제했다. 공무원 처벌 조항도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삭제했다.

제정안은 중대재해를 일으킨 사업주나 법인이 최대 5배 이내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했다. 이는 박주민 의원안의 손해액 5배 이상보다 완화됐다.

중대시민재해의 경우 처벌 대상은 상시근로자 10인 미만의 소상공인, 바닥 면적이 1000㎡ 미만인 다중이용업소 등은 제외됐다. 학교시설과 시내버스, 마을버스 등도 적용 대상이 아니다.

단식 28일 차인 산재 사망자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씨는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다.국민들 수천 명이 죽고 수만 명이 다치는데도 국회와 기업, 공무원들은 절대 이해하지 않는다”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엉망으로 죽었기에 사무치는 한이 폭발할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살리고자 저희가 나섰다. 이 법을 막고 있는 자들을 똑똑히 기억해서 다음 선거 때 심판하겠다”고 말했다.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씨는 “5인 미만 사업장은 왜 제외시켰는지, 집단 괴롭힘은 왜 제외했는지 백혜련 법안심사소위원장을 만나 죽음에도 차별이 있는지 묻고 싶다. 왜 죽음에 차별이 있느냐”고 했다.

반면 경영계는 법안 처리에 반발했다.

경총은 “관련 법안은 법인에 대한 벌칙 수준이 과도하며 선량한 관리자로 의무를 다한 경우에도 면책하지 않는다”며 “경영책임자와 원청에 현실적으로 지킬 수 없는 의무를 부과한 후 사고 발생 시 중한 형벌을 부여해 기업들을 공포감에 떨게 한다”고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강력한 기업 처벌로 국내 기업은 더는 국내 투자를 늘리기 어렵고, 외국기업들도 한국에 대한 투자를 주저할 것”이라며 “경제와 기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명확성과 책임주의 원칙에도 위배할 소지가 있는데 법안은 성급히 처리됐다. 국회와 정부는 경제계 등이 지속해서 제기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후속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매년 산재로 2400명이 사망해 23년간 2차례를 제외하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산재 사망률 1위다. 2001~2017년 정부 통계로만 154만3797명이 산재 사고를 당했고 이 중 4만217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민 여론은 중대재해처벌기업법 처리에 우호적이다. 최근 KBS가 한국리서치와 실시한 신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산재 사망 사고 등 중대재해 발생 시 처벌을 강화하는 취지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대해 찬성(71.7%)이 반대(18%)보다 월등히 높았다. 응답자들은 법 제정 지연 책임이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에 있다(66.2%)고 답했다. 이 조사는 지난달 27일부터 3일 간 전국의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무작위로 추출해 이뤄졌다.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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