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중대재해법 제정 찬성 71.7%, 반대 18%
‘사업장 전면 적용·원청 공동 책임 등’ 주목
매년 산재 2400명 사망···OECD 사망률 1위

지난 2일 병원에 이송됐던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가 5일 국회 본관 앞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단식농성장에 복귀해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씨,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 씨 등과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2일 병원에 이송됐던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가 5일 국회 본관 앞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단식농성장에 복귀해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씨,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 씨 등과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이준영 기자] 국회가 오는 8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본회의 처리를 시도하기로 한 가운데 관련 법안이 산업재해를 막을 실효성을 갖추느냐가 관건이 됐다.

이날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만나 8일 본회의를 열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을 합의 처리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는 매년 산재로 2400명이 사망해 23년간 2차례를 제외하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산재 사망률 1위다. 2001~2017년 정부 통계로만 154만3797명이 산재 사고를 당했고 이 중 4만217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민 여론은 중대재해처벌기업법 처리에 우호적이다. 최근 KBS가 한국리서치와 실시한 신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산재 사망 사고 등 중대재해 발생 시 처벌을 강화하는 취지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대해 찬성(71.7%)이 반대(18%)보다 월등히 높았다. 응답자들은 법 제정 지연 책임이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에 있다(66.2%)고 답했다. 이 조사는 지난달 27일부터 3일 간 전국의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무작위로 추출해 이뤄졌다.

관건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논의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 법안이 현장의 산업재해를 실효성 있게 막을 수 있는지 여부다. 거대 양당은 이날 국회 법사위 소위를 열고 관련 제정안 합의를 위해 논의중이다.

산재를 막기 위해 시민단체와 유가족, 노동계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사업장 전면 적용과 원청 공동 책임 등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날 산재 피해 당사자들과 유가족들은 국회 정문 단식농성장 앞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여기에는 추락사망 청년건설노동자 고김태규 누나 김도현 씨, CJ 고교현장실습 일터괴롭힘 사망 고김동준 어머니 강석경 씨, 조선우드 파쇄기 끼임사망 고김재순 아버지 김선양 씨, tvN 고이한빛PD 동생 김한솔 씨,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 피해노동자 김영환 씨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기존의 작은 하청업체 처벌에서 원청과 공사기간 단축을 강요하는 발주처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산재사망의 절반이 하청 노동자에게 발생하고 있으며, 건설업 포함 시 중대재해의 80% 이상이 단순 중소업체가 아니라 하청업체 중대재해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시설이나 공정에 대한 권한이 없으면서도 중대재해로 인한 처벌은 작은 하청업체로 전가돼고 있다. 이에 위험의 외주화 금지, 발주처 공기단축 등의 조항을 처벌대상으로 명확히 명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중대재해가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유예 없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전면 적용하되 소규모 기업에는 국가와 지자체의 재정 지원 등을 법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 관계자는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로 수십명이 죽었다. 소규모 기업과 다중이용업소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전면 적용이 필요하다”며 “다만 이러한 소규모 사업장이나 소상공인에게는 정부가 안전 설비와 시스템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다중이용업소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된다고 하여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서 정하고 있는 안전관리의무 이외의 다른 의무가 추가되는 것이 아니다”며 “2012년 부산 서면 노래방 화재사건,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사건, 2018년 국일 고시원 화재 참사사건 등을 고려할 때 다중이용업소에 대해 화재를 예방하고 재난 발생시 피신할 수 있는 시설기준은 반드시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중이용업소에서 소방기준 위반 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하도록 하는 것은 화재 참사에 대한 최소한의 예방조치다”고 했다.

2020년 1월~9월 사업장 규모별 중대재해 및 사고재해 발생현황에 따르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중대재해의 84.9%가 일어났다.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망자수가 79.1%를 차지했다.

산재 당사자와 유가족들은 산재의 책임을 말단 관리자나 노동자가 아닌 경영책임자를 대상으로 삼아야 실효성이 생긴다고도 주장했다. 경영책임자의 범위는 대표이사를 반드시 포함하고, 기업에 실질적 영향력 있는 자에 대한 처벌도 필요하다고 했다. 안전담당 이사가 있는 경우는 매우 적고, 산업재해가 주로 안전을 도외시 하는 생산담당 혹은 대표이사의 기업운영에서 비롯된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공사기간 단축이나 공법 변경으로 인한 중대재해에 대한 의무와 처벌을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공공기관 사고사망자의 85.2%가 발주공사에서 발생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윤보다 사람이 먼저다"며 실효성 있는 법 제정을 요구했다.

반면 경영계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과잉입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날 경총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정부부처 협의안)은 헌법과 형법상의 책임주의 원칙, 과잉금지 원칙 등에 크게 위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경영과 산업현장 관리에 감당하기 어려운 막대한 부담을 가중시키는 법안으로서 보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신중히 검토하여 합리적인 법이 제정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총은 “사업주 처벌수위를 강화한 개정 산안법이 시행된 지 얼마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시 기업처벌을 강화하는 입법추진은 타당하지 않고, 처벌강화보다는 외국보다 상당히 뒤떨어져 있는 산업안전정책을 사전예방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다”고 했다.

경총은 중대산업재해의 정의의 경우 다수의 사망자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재해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영책임자의 범위는 대표이사 또는 이사 중 산업안전업무를 실질적으로 총괄·관리하는 1인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대산업재해의 양벌규정과 관련해 경총은 “벌금 하한선을 삭제하고 상한선을 재검토해야 한다”며 “손해배상 책임은 3배 이내로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영계는 시행시기와 관련해서는 대기업에게도 2년 유예를 요구했다.

이날 중소기업중앙회, 대한전문건설협회,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소상공인연합회 등도 윤호중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중단을 요구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지금이라도 산재를 제대로 예방하기 위한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며 “제정이 불가피하다면 법사위에서 중소기업의 현실을 충분히 고려해 최소한 반복적인 사망사고만을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다루고 기업이 명확하게 규정된 의무를 다한 경우에는 처벌을 면할 수 있게 영국 사례 등을 참고해서 중소기업에게 또 다른 사고를 예방할 기회를 줘야한다”고 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