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인 미만 사업장서 중대재해 85% 발생
경영책임자 범위 ‘대표·영향력 행사자 포함’ 필요성 제기
여야 법 적용 기준 ‘사망자 1명 이상’ 적용 합의

백혜련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 위원장(오른쪽)이 3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 참석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고 이한빛PD 아버지 이용관씨(왼쪽부터),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백혜련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 위원장(오른쪽)이 3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 참석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고 이한빛PD 아버지 이용관씨(왼쪽부터),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이준영 기자] 여야 대표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와 관련해 정부안을 토대로 논의하자는 의견을 나눴다. 현장 노동자들과 시민사회는 정부안의 실효성이 낮아 산업재해 사망 사고를 막지 못한다고 반발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30일 만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 처리와 관련해 의견을 나눴다. 이 대표는 “김 위원장은 법 성격상 의원입법보다는 정부입법이 낫고, 정부안을 토대로 의원안을 절충해 가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정부안을 토대로 의원안을 절충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정부안과 민주당 및 국민의힘 입법안에 대해 현장의 노동자들과 시민 사회에서는 산재를 막는 데 실효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우선 기업규모에 따른 법 적용 시기 차등 적용에 따른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안은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법 적용을 4년간, 5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에 법 적용을 2년간 유예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발전소 노동자인 이태성 발전 비정규연대회의 간사는 “대부분의 산재와 사망 사고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특히 건설업의 경우가 그렇다”며 “이에 대해 2년, 4년씩 법 적용을 유예하면 산재 예방의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다.

2020년 1월~9월 사업장 규모별 중대재해 및 사고재해 발생현황에 따르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중대재해의 84.9%가 일어났다.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망자수가 79.1%를 차지했다.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2020년 7~11월 실시한 재해조사 의견서에도 273개 재해조사 중 건설업이 51.6%인 141개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업의 경우 ‘50인 미만 사업장’의 재해가 121건으로 85.8%였고 ‘50인 이상 사업장’은 20개(14.2%)였다.

반면 경영계는 중소기업의 경우 열악한 자금 및 인력 사정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이에 대해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을 유예하면 그 기간 동안 산재 사망자가 발생하게 된다. 다만 영세한 사업장에는 정부가 영세 사업주가 안전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시설과 인력, 시스템 등을 지원해야 한다”며 “노동 현장에서 사람을 살리는 데 국가와 기업, 사회의 합의가 이뤄져야한다”고 말했다.

중대재해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경영책임자 범위에 관해서도 정부안은 협소하다는 지적이다. 정부안은 경영책임자를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이사에 한한다고 했다.

권영국 정의당 노동본부장·변호사는 “이사 중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이사’로 한정할 경우 생산을 우선하는 생산이사나 관리이사 등이 안전보건에 부정적으로 관여하거나 부정적인 의사결정을 주도한 경우에도 안전 우선을 주장한 안전이사가 책임지는 대신 안전 무시를 종용한 생산이사나 관리이사는 도리어 책임에서 배제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영책임자 범위는 법인의 대표이사, 안전보건에 관여하거나 의사결정에 참여한 이사, 법인의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로 구체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인의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는 상법 제340조의2 제2항제2호에서 사용하는 법률용어다.

또한 정부안은 임대·용역 사업의 경우 원청 사업주·법인·기관 등에 안전보건 책임을 묻는 조항도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이에 이 간사는 “산재의 경우 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대부분 하청 노동자에게서 일어난다. 원청에서 비용을 아끼려고 공사기간을 단축시키는 등의 지시로 산재가 하청노동자에게 발생한다”며 “원청 책임자가 하청 노동자의 산재에 함께 책임져야 실효성이 있다”고 말했다.

산재 사망과 사고는 하청 노동자들에게 집중됐다. 발전소에서 일어난 산재 사망사고 10건 중 9건이 하청 노동자에게 일어났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9년간 발전노동자 40명이 산재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 가운데 92%인 37명이 하청 노동자였다.

다만 이날 여야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 기준을 정부안과 달리 ‘사망자 1명 이상’인 경우에 적용하기로 합의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인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안이 두 사람이 사망했을 경우에만 중대재해법이 적용되는 것처럼 보도가 됐는데 그렇지 않다. 사망 1명인 경우에 적용하는 것으로 합의가 됐다”며 “고 김용균 사망 사건과 구의역 참사 사건도 모두 중대재해법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합의됐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매년 2400여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한다. 23년간 2차례를 제외하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산재 사망률 1위다. 2001~2017년 정부 통계로만 154만3797명이 산재 사고를 당했다. 이 가운데 4만2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산재 사건 대부분은 기업 내 위험관리 시스템이 부재하고 안전불감 조직문화 등이 작용한 결과란 분석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재해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안전관리의 주체인 경영자에게 형사책임을 묻기 어렵다. 안전관리는 다양한 직급에서 이뤄지고 있기에 사고가 일어나도 대부분 중간 관리자가 책임을 진다.

영국의 국가기관인 보건안전청은 매년 발생하는 산재사망 중 70% 이상이 사업주의 무책임한 경영으로 인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법인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 등 개별법에 과태료나 벌금 부과규정이 있으나 인명피해에 대한 처벌 규정이 아니어서 최근까지 평균 벌금액은 430만원으로 매우 낮다. 산재사고가 발생해도 대부분 적은 벌금형과 집행유예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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