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국회 법사위 법안소위 단독심의···“1월 8일 전 본회의 처리 목표”
정의당·유가족 “본회의 처리까지 단식 지속”···“꼭 야당이 있어야 하나”
국민의힘 “막연한 심사, 무책임”···경총 “헌법·형법 기본원칙 중대하게 위배”
[시사저널e=이창원 기자] 정치권의 핵심 화두가 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심의가 시작됐다. 정의당과 고(故)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등 유가족이 해당 법안 처리를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조속한 통과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다만 국민의힘은 여권의 ‘단일안’이 마련되지 않았고, 발의된 법안들이 법체계도 맞지 않아 당장 논의가 어렵다며 법안 심의를 보이콧했다. 또한 정의당·유가족 등은 중대재해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 전까지 단식농성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영계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24일 국제 법제사법위원회는 법안심사 제1소위를 열고 중대재해법 제정안 심사에 착수했다. 이날 법안소위에 오른 법안은 여야가 각각 발의한 5건의 제정안이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안, 박주민·박범계·이탄희 민주당 의원안,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안 등이다.
세부 내용에는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중대재해 발생 시 기업(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강은미 의원안에는 ‘중대재해 발생 시 3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5000만원 이상 10억원 이하 벌금’. 박주민 의원안에는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에 대해 2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5억원 이하 벌금’ 등 내용이 담겼다.
특히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기업(사업주) 부담 정도, 인과관계 추정 조항 삭제, 공무원 처벌 규정, 타(他)법과의 형평성,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법 적용 시가 ‘4년 유예’ 여부 등이 핵심 쟁점이다.
우선 민주당은 임시국회가 종료되는 내년 1월 8일 전 국회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법안소위 논의에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이날 논의를 시작으로 다음 주 최소 2차례 이상 법안소위를 열어 관계부처, 단체 등의 의견도 수렴해 본회의에 상정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이날 기준으로 정의당, 유가족 등의 단식농성이 14일째에 접어든 만큼 최대한 일정을 당기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국민의힘은) 중대재해법 관련해 처리할 생각이 있다면 시간을 끌지 말고 진정성 있게 책임감을 갖고 임해달라”며 “여러 쟁점들이 많은 제정법이기 때문에 소위를 한 두 번 열어서 심사를 마칠 수 없다. 상당히 깊이 있는 토론이 돼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많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정의당·유가족 등의 단식농성장을 찾아가서도 “야당도 사실상 심의를 거부하는 상황이라 여러 가지로 악조건이긴 하다”며 “최대한 야당도 설득하고 해서 최선을 다하겠다. 이제 단식을 풀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의당·유가족 등은 단식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논의되고 무산된 것이 많아 본회의 통과될 때까지 있겠다”며 “제대로 중대재해법 골격을 만들어 사람을 살리는 법을 만들어달라”고 말했다.
아울러 “법사위 일정을 정하고 구체적인 안을 가지고 와야지, 이렇게 단식을 중단하라하면 동의할 수 없다”며 “여태껏 여당이 많은 법을 통과시켰는데 왜 이법은 꼭 야당이 있어야 하는가. 야당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여당이 그냥 해 달라”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민주당도 기업의 눈치를 보느라 적극적인 법안 처리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정의당·유가족 등의 시각이다.
국민의힘은 법안소위 심의 자체를 보이콧하고 나섰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마치 우리가 회의를 회피하는 듯 발언하지만, 민주당이 낸 법안만 3개가 되고 그 사이에도 차이가 많다”며 “민주당이 단일안을 만들어 협의하면 우린 언제라도 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자신들 내부 의견조차 정리하지 못한 채 체계에 맞지 않은 법안을 막연히 심사하자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법안소위에서 ‘들러리’를 설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에 정의당은 강력 규탄했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의에서 “그동안 중대재해법이 필요하다고 수없이 했던 말은 다 거짓이란 말인가”라고 반문하면서, “그동안 법안 소위에서 같은 당의 의원들이 몇 건의 법안을 제출하더라도 병합심사를 해왔다. 갑자기 단일안을 만들어야 논의를 하겠다는 것은 논의하지 않겠다는 핑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한편 경영계는 중대재해법 반대 입장을 재차 밝혔다. 경영계는 중대재해법이 기업(사업주)에 과도·가혹한 중벌을 부과하는 법안이고, 헌법·형법 등의 기본원칙을 중대하게 위배하는 ‘기업을 옥죄기 법안’이라고 반발해왔다. 이날도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법사위에 해당 내용을 정리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모든 사고결과에 대해 필연적으로 경영책임자(법인의 대표이사와 이사)와 원청에 대해 가혹한 중벌을 부과하는 법안”이라며 “헌법과 형법의 기본원칙과 원리를 중대하게 위배하면서까지 국회가 법안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헌법상 ‘기본권 제한’, ‘과잉금지 원칙’, ‘평등의 원칙’, 형법상 ‘책임주의 원칙’, ‘죄형법정주의’ 등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중대재해법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불명확한 의무와 과도한 법정형으로 인해 산재예방 효과 증대보다는 소송증가에 따른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며 “대부분의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중소기업만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는 등 부작용만 속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