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거래세 낮출 듯하더니···7·10대책서 양도세 중과 인상 계획 발표
세금 부담에 다주택자들 요지부동···매물 순환 더뎌, 주택 시장 불안 여전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보유세(종합부동산세)는 강화하고, 거래세(양도소득세·취득세)는 낮추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역시 지난해 말 한 라디오에 출연해 “시장에서 보유세를 높이고 거래세를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정부도 장기적으로는 그 방향”이라고 했다.

이는 우리나라의 보유세가 상대적으로 낮고 거래세가 높다는 지적을 의식한 발언이다. 실제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동산 거래세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GDP 대비 부동산 거래세 비중은 1.5% 안팎으로 벨기에(1.14%) 이탈리아(1.05%) 등보다 높았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문 대통령과 홍 부총리의 말과 반대로 가고 있다. 정부는 올해 7·10부동산대책을 통해 종부세를 최대 6%까지 올리는 동시에 다주택자들에 대한 양도세 부담을 더욱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다주택자에 대한 최고 양도세율은 62%에 달한다. 내년 6월부터는 72%로 더 높아진다.

문제는 지금도 양도세 부담으로 다주택자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보유세를 적게 내려면 종부세 부과기준일인 내년 6월 1일 이전에 집을 처분해야 하지만 다주택자들 사이에선 양도세를 비싸게 낼 바에야 증여하거나 버티겠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기자가 만난 한 다주택자는 “집을 팔게 되면 양도세를 내고,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려면 폭등한 전셋값 탓에 대출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빚을 져가면서까지 굳이 집을 팔 이유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내년 6월부터 시행되는 2년 미만 단기보유주택에 대한 양도세율 인상이 매물 잠김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1년 미만 보유 주택에 대한 양도세율을 현행 40%에서 70%로 인상하고, 2년 미만 보유 주택의 양도세율은 현행 기본세율(6~42%)에서 60%로 높이기로 했다. 양도세를 줄이기 위해선 집을 가능한 한 오래 보유하고 거주하는 것이 유리한 셈이다.

해외 사례를 봐도 보유세를 높이더라도 거래세는 인하하는 것이 일반적 흐름이다. 정부가 7·10대책을 위해 벤치마킹했다는 싱가포르의 경우 다주택자로부터 높은 취득세·재산세를 물리지만, 양도세율은 2017년 12%로 4% 가량 낮췄다. 집을 3년 보유하면 이마저도 면제된다. 1주택자는 취득세를 내지 않는다. 프랑스는 6년 이상 보유하면 양도세 추가 공제가 적용되고, 22년간 보유하면 비과세다. 실거주 여부까지 따져 최대 80%까지만 공제해 주는 우리나라보다는 부담이 적다. 미국 역시 거래를 위축시키는 양도세율 중과는 없다는 게 특징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다주택자에게 주택 처분의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 현재 매물 순환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주택시장은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시장에선 양도세 중과로 공급은 더욱 위축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집값 안정화가 내년에도 힘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공급 확대를 위해 한시적으로라도 양도세 감면을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양도세 완화는 다주택자가 아닌 실수요자들을 위한 길이라는 점을 명심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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