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국회 본회의서 ‘최고세율 45%’ 소득세법 개정안 통과“···정부 “사회적 연대·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화”
野 “국가채무 메우기 급급한 조치“···“세수확보·빈부격차 완화 vs 자본유출·저축감소” 엇갈린 부유세 평가

정치권에서 이른바 '부자증세'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치권에서 이른바 '부자증세'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이창원 기자] 이른바 ‘부자증세’ 논의에 탄력이 붙는 분위기다. ‘코로나19 사태’로 재난지원금, 코로나19 지원금 등 예기치 못하게 지출한 상당한 규모의 국가재정을 충당하기 위한 수단으로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아르헨티나, 스페인 등 국가들이 최근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부자증세’ 카드를 꺼내든 것을 부각시키며 이번 기회에 ‘부유세 도입’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이 관측된다. 다만 부유세의 경우 과거 북유럽 국가들의 대표적인 조세 모델이었지만, 실효성, 자본 유출 등 문제점이 발생하며 프랑스, 노르웨이, 스위스 등 국가들에서만 유지되고 있어 부유세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소득세 최고세율 45% ‘신호탄’···野 “‘미봉책’ 대신 ‘보편증세’ 논의해야”

여당은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소득세법 개정안이 통과시키면서 ‘부자증세’ 관련 본격적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개정안에는 오는 2021년부터 종합소득 과세표준 10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하고, 해당 구간의 소득세율을 45%(현행 42%)로 인상하는 내용이 담겼다. 5억원 초과 10억원 미만 구간의 소득에 대해서는 42%가 적용된다.

기획재정부는 신설 구간에는 약 1만6000명(소득 상위 0.05%)의 국민이 적용되고, 이를 통해 연간 약 9000억원(인당 평균 연간 5000만원 수준)의 추가 소득세를 징수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저소득층의 어려움이 상대적으로 더 커졌고, 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핀셋 증세’를 실시가 불가피했다는 것이 정부·여당의 설명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와 관련해 “사회적 연대와 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화하고자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초고소득자 소득세율을 인상코자 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등 국가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45%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국민소득 3만 달러, 인구 5000만명 이상인 국가(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미국 등)의 평균 소득세 최고세율도 43.3%인 만큼 ‘극단의 부자증세’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야당은 명백한 ‘핀셋·부자증세’이고, 중장기적 세원 확보를 위한 본질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국민의힘은 G7국가(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 중 최근 5년 간 소득세 최고세율을 인상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게 세 차례나 인상한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중장기 세원 조달 방식, 계층 간 배분 계획 등 ‘보편증세’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아울러 국민의힘은 ‘코로나19 사태’ 지원에 추가경정예산이 올해에만 3차례 집행되고, 내년도 예산도 이른바 ‘수퍼예산’으로 편성되면서 늘어난 국가채무를 충당하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의 증세 논의가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국가채무는 660조원이었지만, 올해와 내년 각각 847조원, 956조원 등으로 급등한 것을 메우기에 급급한 조치라는 지적인 것이다.

국가채무 추이. /사진=연합뉴스
2020년 국가채무 증가 추이. /사진=연합뉴스

◇‘부유세 도입’ 코로나19 영향 미국·아르헨티나 등에서도 쟁점

‘부자증세’ 논의는 ‘부유세 도입’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일 자신의 SNS에서 “우리나라도 이미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고,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더욱 어려운 사회취약계층 지원과 국가부채 급증에 대응해야 할 국가위기 상황이기에 부유세 도입이 절실하다”며 “부유세 도입을 적극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저도 부유세 법안을 준비 발의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사실 ‘부유세 도입’ 관련 논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0년 간 증세 관련 핵심 쟁점이 돼왔고,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입법 문턱까지 올랐지만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의 반발로 통과되지 못했다.

‘부유세 도입’에 찬성하는 측은 이 의원의 주장처럼 부족한 세수확보, 빈부격차 완화 등을 강조한다. 20세기 초 북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부유세가 도입된 것도 불평등 해소, 복지 확대 등이 중시되면서다.

지난 6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상원은 2억페소(26억원) 이상의 자산가 1만2000명을 대상으로 부유세를 부과(전체 납세자의 0.8%, 국내 자산의 최대 3.5%, 해외 자산의 최대 5.25%)하는 법안을 찬성 42표, 반대 26표로 가결 처리하기도 했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일회성 ‘부자증세’(3000억페소, 약 3조9746억원)를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해당 세금을 코로나19 관련 의료 장비 구매(20%), 중소기업 지원(20%), 사회 개발(15%), 장학금(20%), 천연가스 사업(25%) 등에 사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스페인도 소득세, 부유세 등의 인상을 꾀하고 있다. 지난 3일 스페인 하원은 소득세, 부유세 등의 부담을 늘리는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연 30만유로(약 3억9400만원) 이상의 근로소득자의 소득세율은 47%(현행 45%)로 인상(지자체별 차별 운영)하고, 1070만유로(약 140억5300만원) 이상의 자산가에 대해서는 부유세율을 3.5%(현행 2.5%)를 적용하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내년 68억유로(약 8조9300억원)의 재원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스페인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최근 대선에서 승리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도 부유세 도입, 법인세 인상 등을 공약한 바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미국의 백만장자들은 스스로 부유세(백만장자세, multimillionaire’s tax)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연소득 1000만 달러(약 112억 원) 이상 소득자 최고 소득세율 70%, 5000만 달러(약 560억 원) 이상 재산가 2% 재산세, 350만 달러(약 39억 원) 이상 상속 시 최고 77% 상속세율 적용 등 부유세 도입 방식이 언급됐다.

하지만 부유세 도입에 대한 부정적 입장도 많다. 특히 이들은 부유세가 도입될 경우 저축 감소, 자본 유출 등 부작용을 우려한다.

실제 스웨덴의 경우 부유세의 영향으로 1조5000억크로나(약 200조원)의 자본이 유출됐고, 이로 인해 투자, 창업 등을 위축시켰다는 보고가 있었다. 또한 높은 세 부담을 피해 국적을 옮기는 부자들을 막기 위해 오스트리아(1994년), 덴마크(1997년), 독일(1997년), 네덜란드(2001년), 핀란드(2006년) 등 국가들도 잇따라 부유세를 폐지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북유럽의 ‘상징’이었던 부유세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부유세를 도입함에 따른 긍정적인 영향과 우려는 동시에 존재한다. 제대로 된 의미의 부유세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이미 시행됐던 국가들의 사례를 보며 부작용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충분한 공감대 형성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재산의 해외 도피, 기업의 투자의욕 상실, 이중과세 등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한국 사회에서 부자를 바라보는 시각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부자들의 이탈 동기가 크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어떤 제도든 사회, 문화에 맞는 ‘최적화 적용’을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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