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의료 공백 사태 경고···“정부 1년 동안 병상 확보 위해 뭐 했나”
감염병예방법 ‘정부는 의료기관 병상 등 동원해야 한다’ 명시
“대응 제대로 안한채 거리두기 격상해 국민에 피해 전가”

지난 1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중앙감염병병원 음압격리병동에서 의료진이 병실을 오가며 진료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1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중앙감염병병원 음압격리병동에서 의료진이 병실을 오가며 진료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이준영 기자] 연일 400~500명대의 코로나19 확진자가 이어지면서 중환자실 부족 사태가 현실화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중환자 병상이 부족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의료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전문가들은 우선 민간병원에서 중환자실을 징발하고 근본적으로 공공병원을 늘려 공공병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즉시 입원이 가능한 위·중증 환자 병상은 현재 59개에 불과하다.

코로나19 전용 중환자 병상과 일반 중환자 병상을 합친 전국 병상 560개 가운데 10%만 남았다. 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이어지면서 위·중증 환자 병상 확보가 환자 수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전날보다 위·중증 환자 병상이 12곳 추가됐지만 사용 가능한 병상은 7개 더 줄었다.

특히 경남, 전북, 전남의 경우 모두 사용 중이어서 이용 가능한 중환자 병상은 현재 없다. 대전과 충북, 충남, 경북도 가용 병상은 한 개뿐이다. 광주는 2개, 부산과 대구는 각각 3개씩 중환자 병상이 남아있다. 서울은 6개, 경기 9개, 인천 11개 중환자 병상이 남았다.

이날 서울시 방역통제관인 박유미 시민건강국장은 “서울의 중증환자 전담치료 병상은 총 59개이며 그중 53개가 사용 중이어서 현재 입원 가능 병상은 6개다”며 “중증환자 병상은 전실(前室)을 둔 1인실로 운영해야 해 일반 병상보다 공간이 더 필요하고 일반 병상 대비 필요 의료진도 5∼10배에 달한다. 의료장비도 인공호흡기나 에크모(인공심폐장치) 등을 추가로 설치해야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의료 공백을 피하기 위해 민간 병원에 중환자 병상 협력 요청과 중앙의료원의 병상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박 국장은 “장소 확보, 의료장비, 의료진의 의료 기술 등을 고려하면 민간 상급 종합병원의 협력 없이는 전담 병상 추가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다”고 했다. 또한 정부는 국립중앙의료원에 중환자 긴급치료병상 30개를 더 설치하기로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의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당장의 중환자실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병원의 중환자실 병상을 징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49조에 따르면 정부는 감염병의 예방 조치를 위해 ‘감염병 유행기간 중 의료인·의료업자 및 그 밖에 필요한 의료관계요원을 동원하는 것’과 ‘감염병 유행기간 중 의료기관 병상, 연수원·숙박시설 등 시설을 동원하는 것’을 하거나 할 수 있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병상 포화가 임박해있다. 조만간 병상이 소진될 것이라 예측되고 있다”며 “정부는 당장 민간병상을 징발해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 병상을 달라고 읍소만 할 때가 아니다. 비상상황에 걸맞은 민간 동원 대책을 내놓아야한다”고 말했다.

전 국장은 “민간병원들도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대형병원은 매년 천문학적 수입을 내왔고 이는 대부분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에서 왔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도 안되는 공공병상이 80%의 환자를 보도록 방치했다. 이 위기의 원인 제공자 중 하나가 민간병원자본이다. 당장 병상을 내놓고 비상 의료체계 구축에 기여해야한다”고 했다.

근본적으로는 공공병원 확대를 통한 공공병상 확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의 공공병상 비율은 지난해 8.9%로 70% 이상인 OECD 평균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이 때문에 프랑스 등은 연일 수만명의 확진자가 나오는 상황에서도 병상 부분에서 얼마간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500명대 확진자 수준에서도 병상 부족 문제에 부딪혔다.

전 국장은 “수익을 따지는 민간 병원에 손 벌려 병상을 확보하는 방법은 한계가 있다. 공공병원을 확충해야 근본적으로 코로나19 중환자 병상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공공병원 확충을 통한 공공병상 확대에는 관심이 없다. 보건복지부의 내년 예산안 원안에는 근본 처방으로 꼽히는 공공병상 확대를 위한 공공병원 확충은 담기지 않았다.

다만 국회 보건복지위 소위 논의 과정에서 김성주 민주당 의원이 지방의료원 감염병 전담병원 및 음압병실 설치 65억원, 공공병원 7개소 증축 지원 36억원 등 공공병상 확대와 관련 사항을 요구해 복지부가 수용했다. 그러나 이것도 여야 간 파행으로 정부 원안이 예결위로 넘어갔다. 이날 저녁에 진행되는 본회의에 회부될 최종 예산안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지금의 확산세면 중환자실이 무조건 부족해진다. 의료 공백 사태가 생겨 적절한 치료 없이 사람들이 죽을 수 있다”며 “시민단체들은 이미 올해 초 1차 유행 때부터 민간병원에서 중환자실 징발과 공공병원 확충을 통한 공공병상 확보를 요구해왔는데 정부가 지금껏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우 대표는 “정부는 거리두기 격상으로 자영업자와 노동자들에게 영업제한과 소득 감소 등 피해를 주는데도 단계별 격상에 따른 자동 지원 방식도 아직 만들지 않고 재난지원금에 의존하고 있다”며 “정부가 민간병원을 통한 중환자실 징발과 공공병원 확대 등 감염병 대응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거리두기 격상으로 국민에게 피해를 전가하고 있다”고 했다.

우 대표는 “현재는 무조건 민간병원을 동원해야 한다. 12월을 어떻게 넘겨도 1, 2월이 남아있기에 민간병원 동원 체계를 꼭 갖춰야한다”며 “민간병원은 중환자실을 지원하면 환자가 줄어드는 등 이윤이 감소하는 것을 꺼려한다. 그러나 민간병원은 건강보험 등 공적인 재정으로 돈을 벌면서 재난 등 급할 때는 외면하고 있다. 손실의 사회화, 이윤의 사유화다. 그러나 정부가 이를 방조하고 있다”고 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공공병원을 단기적으로 최소한 시도별로 2개씩 빠르게 신설하고 지역사회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 어려운 규모인 300병상 미만의 28개 지방의료원 모두 병상을 증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를 통해 공공병상 4만개를 확충해 인구 1000명 당 공공병상 2개를 확보해야 감염병 위기에 대응이 가능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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