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통일부 장관, 2018년 평양 동행했던 기업인들과 정례만남 추진
5대그룹 중 유일하게 롯데만 제외···국정농단·사업구조 등 원인으로 꼽혀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최근 주요 경제계 인사들과 남북경제협력 논의를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 재계에서는 삼성·현대자동차·SK·LG 등 4대그룹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반면, 재계 5위 롯데는 초청받지 못했다. 롯데는 지난 2018년 6월 ‘북방TF’를 꾸리고 적극적인 사업진출 의지를 피력한 바 있어, 제외된 배경에 관심이 집중된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이번 만남은 지난 23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오찬을 겸한 간담회 형식으로 이뤄졌다. 미국 정권 교체기와 코로나19 백신·치료제 등 개발이 맞물리면서 비핵화협상과 대북제제 유연성 등의 가능성이 높은 만큼, 남북경협의 시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올 수 있다면서 이에 정부와 기업들이 힘을 합쳐 선제적으로 준비하자는 취지였다.

이 장관은 “코로나19 등으로 갖은 어려움을 겪었던 북한이 내년부터 경제적 성과를 창출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될 것”이라면서 “정부와 기업이 역할분담을 통해 남북경협의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지역 개별관광, 철도·도로 등 인프라사업, 개성공단 재가동 등을 언급하며 남북경협 준비를 위한 정부·기업 간 정례만남을 제의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오찬에는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박영춘 SK 부사장, 윤대식 LG전자 대외협력담당 전무, 이보성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장 등이 참석했다. 또한 포스코·현대아산 등에서도 주요 임원들이 자리했다.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연맹·중소기업중앙회·한국여성경제인협회·개성공단기업협회 등 경제단체 인사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반면 재계 5위 롯데는 이날 찾아볼 수 없었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 2018년 9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방북했던 기업인을 위한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정상회담 당시 특별수행원에서 제외됐던 롯데는 이번에도 함께할 수 없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이 특별수행원으로 평양을 방문한 바 있으며, 현대차에서는 김용환 현대제철 부회장(당시 현대차 부회장)이 동행했다.

남북정상회담 때마다 기업인들은 동행했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난 당시 정상회담은 역대 가장 많은 기업인들이 함께했다는 점에서 롯데의 불참은 다소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더욱이 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인 2018년 5월 롯데그룹이 대북사업과 중국·러시아 등을 무대로 성장 동력을 찾아보겠다는 ‘북방TF’ 운영을 공표한 상황이었기에 의구심은 더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국정농단에 연루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구속수감 중인 상태여서 동행이 불가능했다는 점도 초청불발의 원인이겠지만, 현대차그룹에서 정의선 회장을 대신해 김 부회장이 참석한 것을 비춰보면 꼭 그것만이 전부는 아닌 듯하다”면서 “앞선 정부에 기민하게 협조했다는 점에서 전국경제인연합과 같은 처우를 받고 있을 가능성도 짙다”고 지적했다.

국정농단 사태 직전까지 재계를 대표해 온 전경련은 과거의 위용을 잃었다는 평을 받는다. 주요 대기업들이 차례로 탈퇴하고, 현 정부 들어선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주요 행사에 초청받지 못하고 있다. 정상회담과 남북경협논의 등에서도 대한상의·경총·중기중앙회와 달리 철저히 배재됐다. 정부·정치권과 공식적인 소통창구 역할도 대한상의가 물려받은 지 오래다.

그렇다고 현 정부가 롯데를 철저히 배재한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1월 문 대통령이 대기업 및 중견기업인들을 청와대에 초청해 개최한 ‘2019 기업인과의 대화’ 행사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참석한 바 있다. 금년 1월 대한상의에서 ‘확실한 변화 대한민국 2020’이란 주제로 열린 신년합동인사회에는 출장을 이유로 신 회장이 불참한 바 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단순히 국정농단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경협논의서 제외된 것은 아닐 것”이라면서 “같은 기준이라면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 역시 배재됐어야 맞다”고 반박했다. 그는 “오히려 기업의 특성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면서 유통·소비재 중심의 사업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는 롯데에 비해 다른 기업들의 대북경쟁력 면에서 우위를 점하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대북사업은 철도·도로 등 인프라 분야와 관광사업 등이 우선적으로 주목받는 분야다. 같은 이유로 현대로템·포스코·현대제철 등을 비롯해 주요 건설사들과 현대아산 관계사들은 남북관계가 개선될 때마다 주목받았다. 가전·스마트폰 등의 수요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다. 특히 현지공장 건립 시 상당한 일자리창출도 기대되는 분야다.

남북경협의 근간은 북한의 니즈다. 북한이 추진하는 개발을 남한의 자본이 사업권을 확보해 실익을 얻는 구조다. 롯데를 비롯한 유통업계는 북한을 개척해야할 새로운 시장으로 보고 있지만, 정부 입장에선 기간산업 영위여부에 따라 특정기업들이 우대받을 수밖에 없으며, 이 같은 논의에도 우선시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게 주요 기업가의 공통된 견해였다.

대북제제가 장기화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롯데의 북방TF의 활동역시 과거처럼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북한을 비롯해 중국과 러시아 연해주 지역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시키겠다는 기조는 여전히 동일하지만, 북방TF 활동은 예전에 비해 침체된 것이 사실”이라 답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