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1억원이상 신용대출시 “부동산 매매는 하지마”
고객의 대출 사용까지 관리 나서 논란 커질 듯
신용대출 증가세 안정 찾아 섣부른 규제될 수도

[시사저널e=이용우 기자] “주택금융 시스템이 고장 나지도 않았는데 수리했고, 그러고 나니 더 고장이 났다.”

존 케이가 쓴 ‘금융의 딴짓’에 나온 문장이다. 현재 정부가 벌이고 있는 ‘대출 틀어막기’ 정책들이 이 한 문장으로 잘 설명되고 있다고 본다. 

금융당국은 8월부터 신용대출이 크게 증가하자 놀라는 눈치였다. 부동산 구매로 이어질 것을 염려한 것이다. 결국 대출 조이기에 나섰고 먼저는 은행들에 월 신용대출 증가액을 2조원 안팎에서 관리하라고 했다. 최근엔 이런 정책에 이어 금융소비자의 대출 씀씀이까지 파악해 규제하겠다고 나서 논란이다. 

금융당국이 내놓은 것은 1억원에 달하는 신용대출 규제다. 먼저 이달 30일부터 연봉 8000만원 초과 고소득자가 신용대출을 1억원이상 받을 경우 개인 단위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고객이 신용대출을 1억원 넘게 받고 1년도 안 돼 서울 등 규제지역(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에 집을 사면 2주 안에 대출금을 갚도록 한 점이다. 만약 대출이 회수되지 않으면 대출 연체자가 되거나 채무불이행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금융당국 규제의 핵심은 부동산에 있다. 겉으로야 대출 부실 우려에 따른 신용대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아무리 규제해도 규제가 되지 않고 문제만 양산하는 부동산 시장을 더 옥좨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신용대출에까지 손을 대고 있는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신용대출 1억원 가운데 얼마만큼 규제 지역의 부동산 구매에 써야 대출 상환 대상이 되는지 그 기준조차 현재 모호하다. 소액을 사용해도 전체 상환을 해야 하는지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또 신용대출 자금이 어디에 사용될지, 당국이 그 사용처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대출 고객을 감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현재 금융권의 신용대출 시장은 우려와 달리 안정을 되찾고 있다. 금융위원회의 ‘10월 중 가계대출 동향’ 자료에 따르면 은행권의 신용대출 10월 증가세는 지난 8월과 비교해 상당히 완화됐다. 지난 8월엔 한 달에만 6조3000억원이 증가했지만 9월 들어선 3조6000억원, 10월 3조9000억원으로 떨어졌다. 코로나19 상황을 생각한다면 작년 10월 증가액(2조8000억원)과 비교해 크다고 보기 어렵다. 

8월에 발생한 신용대출은 SK바이오팜과 카카오게임즈,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같은 대형 공모주 청약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일반 공모주 청약에서 SK바이오팜에는 증거금이 31조원, 카카오게임즈와 빅히트에는 각각 58조원이 몰렸다. 이른바 ‘따상’으로 단기간에 돈을 벌자는 투자자들이 금리가 낮아진 신용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에 몰렸다는 분석이다.  

이 분석대로 대형 공모주 청약 이슈가 사라지자 은행권의 신용대출 증가세는 진정됐다. 특히 신용대출 10월 증가 규모는 올해 초 수준으로 돌아왔다(3월 중 신용대출 증가액 : 3조3000억원). 신용대출 시장은 당국의 우려와 달리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의미다. 현 규제는 고장도 없는 대출 시스템에 자꾸 손을 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높다. 대출 증가가 우려된다면 연체율의 흐름부터 봐야 할 것이다. 현재 규제 대상이 된 은행권의 신용대출 연체율에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섣부른 규제는 시장 왜곡을 양산할 수 있다. 고소득 연봉자의 고액 신용대출 규제니까 서민과 상관없다는 논리는 옳지 않다. 일부의 시장 왜곡은 허용해도 된다는 말은 비상식적이다. 시장은 복잡하고 유기적으로 연동돼 있기 때문이다. 한쪽의 시장이 왜곡되면 결국 서민의 금융 활동에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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