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마·잠실5단지·한강맨션 등 사전컨설팅 철회
희망 가구 수 ‘1만4000→ 3800가구’로 쪼그라들어
5만 가구 공급계획 빨간불···사업성 높일 획기적 대안 필요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공공재건축 사전컨설팅에 참여했던 강남구 은마아파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용산구 한강맨션 등 사업성이 좋은 단지들이 잇따라 ‘참여 불가’로 입장을 선회했다. 업계에선 예견된 결과라는 평가다.

정부는 지난 8월 수도권 주택 공급대책의 핵심 방안으로 ‘공공참여형 고밀재건축’(공공재건축)을 내놨다. 공공재건축은 이 정책에 참여하는 재건축 단지에 층고 제한을 50층까지 높여주고,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완화해 준다는 내용이다. 이런식으로 주택 수를 늘려 향후 5년 동안 수도권에 5만 가구를 공급한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 공공재건축은 강남권 등 서울의 주요 재건축 단지를 겨냥한 정책이다. 그동안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은 50층으로 지어지길 원했지만, 이 계획은 35층으로 제한된 서울시의 층수 규제에 번번이 가로막혀 왔다. 정부는 이 부분을 이용했다. 이들 단지가 그토록 원하던 50층을 허용해 주면 공공재건축에 자연스럽게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전문가나 시장 모두 흥행실패를 예상했다. 정부가 공공재건축에 참여한 재건축 단지에 ‘늘어난 주택의 50~70%를 기부채납하고, 용적률 증가에 따른 기대수익 중 90% 이상은 환수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부채납 받은 주택을 장기공공임대(50% 이상)와 무주택·신혼부부·청년 등을 위한 공공 분양(50% 이하)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강남 재건축 단지 주민들은 물론 전문가들까지 가구의 절반 이상을 공공이 환수하는 만큼 실익이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은마아파트 주민들은 공공재건축을 진행할 경우 대지지분이 줄어 조합원 1인당 11억원 가량의 손해를 입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용적률 향상으로 ‘빽빽한 닭장 아파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강남 노른자 입지에 대규모 임대주택이 들어선다는 점도 거부감을 키웠다. 각종 논란에도 정부의 기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달 접수를 받은 공공재건축 사전컨설팅에는 서울 재건축 아파트 단지 15곳이 신청했다. 강남권 재건축 시장의 상징인 은마아파트와 잠실주공5단지도 참여해 이목을 끌었다. 정부는 예상보다 많은 단지들이 사전컨설팅을 신청했다고 홍보에 열을 올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여러 단지에서 공공재건축 사전컨설팅을 신청하는 등 시장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전컨설팅 신청 단지 중 가장 규모가 큰 은마아파트(4424가구)와 잠실주공5단지(3930가구)는 조합원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일찌감치 포기를 선언했다. 규모가 세 번째로 큰 동대문구 청량리 미주아파트(1089가구)도 지난주 사전컨설팅 철회 방침을 내부적으로 확정했다. 용산구 알짜 재건축 단지인 한강맨션(660가구)은 애초에 사전컨설팅을 신청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들 단지는 조만간 LH에 철회신청서를 낼 계획이다.

4개 단지가 빠지면서 사전컨설팅을 신청한 단지는 1만4000여가구에서 3800여가구로 쪼그라들게 됐다. 향후 추가로 철회를 신청하는 단지가 늘어나면 가구 수는 더 줄어들 수 있다. 사업성과 상징성을 갖춘 단지들이 모두 빠지면서 공공재건축의 사업 흥행에도 빨간불이 켜진 모습이다. 정부는 최근 기부채납 비율을 기존보다 20% 낮춘 50%로 하겠다고 추가 ‘당근책’을 내놨지만 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이대로 가면 공공재건축 실패는 불 보듯 뻔하다. 정부는 간 보기식 당근책이 시장에 먹히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했다. 공공재건축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선 조합의 구미를 당길 획기적인 개선안을 내놔야 한다. 이러한 고민 없이 그대로 밀어붙인다면 5만 가구 공급 계획은 뜬구름 잡기식 정책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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