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기금운용 기본원칙 외 다른 고려 있으면 안 돼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최근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가 LG화학 배터리 분사와 관련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여론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의심 섞인 분석을 내놓는데 그 ‘여론’은 누구의 여론일까. 적어도 일반 국민은 아닌 것 같다. 도처에 다녀 봐도 LG화학 배터리 분사를 적극 반대한다는 사람은 보질 못했다. 사실 찬성하는 사람도 보기 힘들다. 정확히 말하면 업계가 아닌 일반 사람들은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

결국 국민연금이 눈치를 봤다면 소액주주들의 눈치를 봤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런데 이 해석을 믿고 싶지 않다. 그랬다면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의 인식에 문제가 크다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국민연금 납부자들을 위해 존재한다. 이들의 납부금을 안정적으로 굴려 장기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눈치를 봐야할 집단은 오직 하나, 국민연금 납부자들이어야 한다.

개인투자자는 자기가 자기 돈을 갖고 투자하는 것이지만 국민연금은 국민들의 미래를 위한 공기금으로 투자를 한다. 한마디로 본인들 돈이 아니다. 그래서 개인투자자와 달리 기금운용 원칙을 갖고 있다. ▲수익성 ▲안정성 ▲공공성 ▲유동성 ▲지속가능성 ▲운용독립성 이라는 원칙에 따라 기금을 운용하도록 돼 있다. 이중 수익성 원칙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기금의 장기적 안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한 높은 수익을 추구해야 한다. 기금을 굴려 하루아침에 대박을 노리는 것이 아닌 만큼,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개인 투자자들과 국민연금 등 기금의 투자방식이 다른 것은 이 같은 원칙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LG화학에서 배터리가 분사하면 LG화학의 주가는 당장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소액주주들은 대부분 반대했다. 당연한 반응이다. 그런데 세계적 투자자문사인 ISS, 글래스루이스 등은 대부분 물적분할에 찬성했다. 이들이라고 주가가 떨어지는 쪽을 선택할 리가 없다. 장기적으론 기업가치 상승에 도움이 된다고 본 것이다. 주가가 오를지 떨어질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허나 국민연금이 소액주주들과 같은 입장을 견지했다는 것은 분명 특이한 사례로 꼽힌다. 국민연금 자문사인 한국지배구조연구원도 찬성입장이었다.

사실 원칙만 고수했다면 국민연금이 LG화학 배터리 분사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허나 투자의 기본원칙이 아닌 다른 그 어떤 다른 변수를 고려했을 것이란 분석이 계속 나오는 것을 보니 상당히 우려스럽다. 국민연금 납부자 중 한 사람으로서 이번 LG배터리 분사 반대 결정이 원칙에 따라 내린 것이었다고 믿고 싶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국민연금 기금의 주인은 납부자들이고 오직 납부자를 위한 선택만 생각해야 한다. 그 외 다른 계산이나 고려가 더 필요한가. 그런 고려를 두 글자로 ‘정치’라고 한다. 정치가 들어가면 탈이 나고 탈이 나면 책임자와 관련자를 찾게 돼 있다. 박근혜 정권 때 국민연금이 왜 논란에 휘말렸었는지, 많은 관련자들이 감옥에 갔었는지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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