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관련 법안 제출 늦어져 12월 국회제출 계획
시민사회 “소비자 피해구제·권익 밀접, 의원안 연내 처리해야”
경영계 “소송 증가 등 부담 커져···도입 반대”

지난 8월 31일 가습기살균제 참사 유족과 피해자, 환경보건시민센터 회원들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9주년 기자회견에서 추모 묵념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8월 31일 가습기살균제 참사 유족과 피해자, 환경보건시민센터 회원들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9주년 기자회견에서 추모 묵념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이준영 기자] 정부와 여당이 당초 연내 처리하려 했던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처리가 늦춰질 전망이다. 시민사회는 소비자 피해 구제와 권익을 위해 정부안이 아닌 이미 발의된 의원 입법안으로 연내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계는 소송 증가 우려 등으로 도입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BMW 차량연쇄 화재사고, DLF·라임·옵티머스 등 금융피해사건, 발암물질 라돈이 검출된 침대, 인터넷포털의 개인정보유출 등 대규모 소비자 피해에도 제대로 된 책임규명과 피해구제, 재발방지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법무부는 집단소송법 제정안과 징벌적손배제가 담긴 상법 개정안의 연내 처리를 계획했다. 소비자 피해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제대로 된 구제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집단소송법, 징벌적손해배상제도, 증거개시제도 등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판단에서다. 

당초 법무부는 늦어도 11월안에 관련 법안들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취재 결과 12월 법안 제출로 일정이 늦어졌다. 이에 올해 정기국회에서 정부안의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처리가 어려워졌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공정경제 3법은 올해 정기국회 내 처리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집단소송제와 징벌적손배제의 연내 처리는 당론으로 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 등 시민들은 물건 구매나 투자 시 입은 피해 등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집단소송제와 징벌적손배제의 처리가 시급하다는 의견이다.

26일 최숙자 가습기살균제 3·4단계 유족 모임 대표는 “집단소송제와 징벌적손배제가 도입돼 있었다면 우리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소송과 배상 과정에서 도움이 많이 됐을 것이다. 소비자들이 입은 피해를 구제하고 예방하는 이 제도들이 지금이라도 시급히 처리 돼야한다”며 “정부와 여당은 소비자 권익 향상이라는 말만 하지 말고 관련 법안 처리를 올해 안에 해야한다”고 말했다.

소비자 단체 등 시민사회는 정부 안이 늦어지면 국회에 제출된 의원 입법안으로 이번 정기국회서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회에는 집단소송법과 관련해 민주당 박주민, 백혜련, 이학영 의원 안이 각각 발의돼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법안으로는 오기형 의원 안이 올라와있다. 이들 의원들의 법안은 정부 법안과 큰 틀에서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김주호 참여연대 팀장은 “이번 정기 국회서 많은 소비자들이 피해를 받고 있는 부분부터 입법이 필요하다”며 “정부 입법안 처리가 늦어질 경우 소비자 권익 관련 내용이 담겨 발의된 의원 법안부터 처리하는 게 필요하다. 올해를 넘기면 대선이 다가와 동력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다만 의원 입법안들에는 정부의 집단소송제에도 담긴 부진정소급입법이 빠져 있다. 정부안의 집단소송제에는 시행 이전에 발생한 문제여도 현재 절차가 진행중인 사안은 적용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최숙자 대표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현재도 고통받고 있으며 사건 해결이 안됐다.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배제의 부진정소급입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경실련 관계자도 “현재 가습기살균제 사태, DLF, 라임 금융피해 사건 등 다수의 피해자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 분들의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 이에 집단소송제와 징벌적손배제의 논의 과정에서 이러한 부분에 대해 논의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경영계는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배제 도입을 반대했다. 소송이 급증해 그 비용 부담이 늘어 고용에 나서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은 정부가 입법예고한 관련 법안들에 대해 반대의견을 제출했다.

유정주 전경련 기업제도팀장은 “집단소송제와 징벌적손배제가 도입되면 소송이 급증하며 이에 따른 비용이 10조원으로 예상된다”며 “투자나 채용에 쓸 여력이 줄어든다. 관련 법안들의 도입을 반대 한다”고 말했다.

전경련은 정부 입법안이 통과되면 30대 그룹 기준으로 소송비용이 최대 1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는 현행 소송비용 추정액인 1조6500억원보다 6배 증가한 것이다.

유 팀장은 “무엇보다 소송 대응 여력이 없는 중소, 중견 기업들의 피해가 클 것이다”고 했다.

이형준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경제연구원 수석위원은 “법무부의 입법예고 기간 내에 반대 의견을 제출할 것”이라며 “개정법 시행 이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도 적용하는 집단소송제는 통상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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