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주식·부동산에 자금 유입 시들
투자자 니즈 충족할 새로운 아이디어 필요

투자 시장에 유동성이 흘러넘치고 있다. 2012년부터 시작된 기준금리 인하 기조에 시중 자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영향이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부동산에 유동성이 집중되는 모습이었지만 올해 들어선 이른바 ‘동학개미운동’, ‘서학개미운동’과 함께 국내외 주식 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공모주 대박을 꿈꾸며 SK바이오팜, 카카오게임즈,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기업공개(IPO)에 자금이 몰렸다. 

그런데 그동안 투자처를 힘있게 누비던 시중 자금이 최근에는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코스피에서 올 들어 9개월 연속 순매수에 나섰던 개인 투자자들이 이달에는 1조4000억원 규모의 순매도를 보이고 있다. 투자대기성 자금인 예탁금액도 지난 9월을 정점으로 꺾였다. IPO 시장에선 공모 철회가 나오는 등 찬바람이 불고 있다. 되레 은행 저축만 늘고 있는 상황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외 주식 시장은 지난 3월 이후 가파른 상승 흐름을 보였다. 코스피와 미국 나스닥 지수는 이 기간 각각 60%, 73% 넘게 올랐는데 투자자들이 느끼는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IPO 시장에서는 이른바 ‘따상’(공모가 대비 두 배에 시초가 형성 후 상한가 기록)을 기대하게 하는 확실한 대어가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부동산에 투자하자니 이 역시 그간 많이 올랐다. 돈이 될 수 있는 투자처에 대한 수요는 높은데 개인 투자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는 많이 좁아진 셈이다.   

투자 대기 자금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곧 누군가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상황이 공모펀드 시장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00년대 초 찬란했던 공모펀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인기가 시들해졌다. 그나마 남아 있던 수요도 사모펀드로 흡수됐다. 그러나 사모펀드는 환매 중지 사태로 주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투자를 통해 자본 이익을 취하려는 투자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많지만 갈 곳이 없다.

공모펀드 시장이 이 기회를 잡기 위해선 보다 더 투자자들의 니즈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예컨대 최근 빅히트엔터테인먼트 공모주 투자를 내걸었던 한 펀드에는 하루에만 2000억원의 자금이 모였다. 펀드 시장이 좋지 못한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자금몰이다. 공모주 투자를 원하는 투자자들의 수요를 시의적절하게 잘 건드렸다는 평가다. 지난해엔 일본의 무역보복에 대응해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애국 펀드가 등장하며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결국 공모펀드의 현 상황은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아이디어의 부족이라는 지적이다. 또 다른 운용업계 관계자는 “비슷비슷한 펀드가 너무 많은 데다 성과도 좋지 않다. 투자자 입장에선 직접 투자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며 “운용사들은 이와는 반대되는 생각이 들게끔 상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만큼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경제 불확실성에 당분간 저금리 기조는 이어질 전망이다. 늘어난 유동자금이 회수되기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다. 다시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에 직접 흘러들어갈 수도 있지만 다른 곳에 이들 자금이 유입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시장 위축에 생존싸움을 벌이고 있는 자산운용업계엔 전례 없는 기회다. 한국판 뉴딜 등 정부의 정책도 공모펀드 시장을 돕고 있다. 이제는 운용업계가 해답을 보여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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