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삼성생명 암보험금 지급 논쟁서 사측 승소 결론
금감원 암보험금 지급 권고 무색케 돼
금융사들, 즉시연금 및 키코 권고 등 줄줄이 거부

서울 여의도의 금감원 모습 / 사진=연합뉴스
서울 여의도의 금감원 모습 / 사진=연합뉴스

‘금융감독원 패싱(passing·배제)’이 금융권에 커지는 분위기다. 최근엔 금감원이 지급 권고한 암보험 요양병원비 지급에 대해 대법원이 삼성생명 손을 들어주며 금감원의 면이 안 서게 됐다. 은행들은 사모펀드 징계 및 키코 배상 권고 불수용에 나선 상황이다. 보험업계는 암보험 외에도 즉시연금 지급까지 금감원의 권고를 듣지 않고 있다. 금감원 권위가 계속 흔들리는 모습이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대법원은 ‘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우 모임(보암모)’ 공동대표인 이모씨가 삼성생명을 상대로 제기한 암보험금 청구 소송에 대해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을 내렸다. 심리불속행은 대법원이 원심에 법 위반 등 특별한 사유가 없다고 판단해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앞서 이 대표는 요양병원 입원치료에 대해 암입원비를 지급하라며 삼성생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1·2심에서 패소했다. 1·2심은 요양병원에서 받은 치료가 암치료를 직접 목적으로 하는 치료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삼성생명의 보험금 지급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지난 3년 동안 보험업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암보험 논란이 대법원의 판결로 마무리되면서 금감원의 고민도 깊어진 모습이다. 

◇“암보험 대법원 판결로 삼성생명 제재 어려울 것”

업계에선 금감원이 삼성생명을 상대로 이달 중에 열릴 삼성생명의 종합검사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암보험금 지급 건을 다룰 것으로 예상했다. 2018년 11월18일 금감원 분조위가 삼성생명을 상대로 제기된 암보험 분쟁 건에 대해 치료기간에 관계없이 입원비를 모두 지급할 것을 권고했지만 이 사안을 삼성생명이 제대로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암보험 문제가 발생한 대다수의 보험사들은 금감원 권고 내용에 따라 암입원비를 전부 지급했다.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의 전액지급 비율도 각각 90.9%, 95.5%로 나타났다. 삼성생명만 62.8%에 그쳤다. 지난해와 올해 3월 말까지 금감원이 처리한 암 입원비 분쟁 1298건 중 절반이 넘는 720건이 삼성생명에서 제기된 만큼 금감원 입장에선 삼성생명의 ‘전액 지급’이 중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금감원이 암보험 미지급을 두고 삼성생명을 제재하기는 어려워진 모습이다. 

일각에선 2017년 자살보험금 사태 때 대법원 판결에도 금감원이 밀어붙여 보험사들의 보험금 지급을 이끌어낸 것처럼 암보험금 지급도 비슷하게 해결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암보험 판결과 달리 대법원은 당시 자살보험금에 대해 “약관에 기재된 대로 자살에도 재해사망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다만 소멸시효가 지난 계약에 한해서는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단서를 달았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자살보험금과 암보험금의 대법원 판결은 완전히 다른 판결”이라며 “삼성생명의 지급 의무가 없는 만큼 금감원의 지급 권고도 힘을 잃은 상황이다. 애초 법적 의무가 없었던 분조위 권고가 대법원 판결까지 나와 무의미해진 것 같다. 금감원이 자살보험금처럼 징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생명의 암보험 분쟁 일지. / 이미지=김은실 디자이너

◇보험·은행업계, 금감원 권고 나오면 “거부 먼저”

이번 암보험 논란으로 보험업계에는 금감원과 갈등을 빚더라도 법적으로 다툴만한 사안은 소송에서 해결하려는 모습들이 계속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은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지급을 놓고 소비자와 채무부존재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 사안에 대해서도 금감원 분조위는 약관에 따라 ‘지급 재원’을 공제하지 않고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권고를 내렸다. 하지만 삼성생명, 한화생명 등 일부 보험사는 약관에 대한 법리적 해석이 더 필요하다며 분조위 권고를 불수용 한다고 밝혔다. 

은행권에서도 금감원의 권고 거부는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키코(KIKO) 피해기업에 대한 배상 권고를 은행들이 거부한 상황이다. 키코 배상은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후 의욕적으로 추진한 사안이다. 하지만 산업, 씨티은행이 금감원 조정안을 거부한데 이어 신한, 하나, 대구은행까지 거부하면서 우리은행만 유일하게 조정안을 수용하게 됐다. 

또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에 대한 금융당국의 과태료 부과에 대해서도 은행들은 반기를 들었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지난 3월25일 금융위로부터 DLF와 관련해 각각 168억원, 197억원의 과태료 부과를 통지받았지만 이에 대해 수용하기 어렵다며 법적 다툼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은행 입장에선 당국의 과태료를 받아들일 경우 DLF 사태의 모든 책임을 인정하는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에 수용하기 부담스러웠다는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이 여전히 두려운 존재인 것은 사실이나 최근 금감원이 최고경영자 연임에서부터 법적인 논란이 되는 사안들을 모두 일방적 강요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이라며 “분조위의 권고는 일단 거부하고 본다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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