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진교 정의당 의원, ‘금융사 지배구조법 개정안’ 발의
기업은행·수출입은행·캠코 등 연이어 도입 실패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에서 열린 ‘KB금융지주 사외이사 후보 추천 주주제안 기자회견’ 현장/사진=이기욱 기자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에서 열린 ‘KB금융지주 사외이사 후보 추천 주주제안 기자회견’ 현장/사진=이기욱 기자

금융사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이 금융권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KB금융지주 노동조합이 주주제안 방식으로 임시 주주총회에 사외이사 후보 2인을 추천하기로 결정한데 이어 정치권에서도 노동자 사외이사 후보 추천을 법제화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경영진에 대한 견제 장치 마련과 경영 자율성 보장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놓고 금융사와 노동계의 첨예한 대립이 지속될 전망이다.

◇정의당·더불어민주당, 금융사 노동자에 사외이사 추천권 부여 시도···건전성 제고 목적

22일 업계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최근 금융사 노동자 대표의 사외이사 추천권을 법제화하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에 따르면 금융사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에는 노동자 대표 1명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며 임추위는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할 때 해당 위원(노동자 대표)이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를 명단에 포함시켜야 한다.

또한 금융사가 사외이사를 재선임할 경우 외부 전문기관으로부터 해당 후보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임추위 구성에 대한 요건을 강화해 금융시장의 건전성을 제고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현재 해당 개정안은 정무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배 의원과 같은 정의당 소속의 심상정, 장혜영, 류호정, 이은주, 강은미 의원이 함께 참여했으며 더불어민주당 서동용, 허종식, 민병덕, 오기형 의원 등도 함께 발의자에 이름을 올렸다. 그동안 노동계 의견을 주로 대변해왔던 정의당뿐만 아니라 여당 의원들까지 함께 개정안을 추진하자 금융권에서는 ‘노조추천이사제’ 전면 도입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전망들도 제기한다.

노조추천이사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정권 출범 초기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꼽은 ‘노동이사제’와 비슷한 맥락의 제도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 대표가 이사로서 이사회에서 의결권과 발언권 등을 행사하는 제도다. 노조추천이사제는 노조가 전문성 있는 인물을 추천해 견제와 감시 역할을 대신 맡기는 방식이다.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여러 금융 기관에서 시도됐지만 아직 실제 선임까지 이뤄진 사례는 없다. 지난해 2월과 12월 국책은행인 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노조로부터 사외이사 후보 추천을 받아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으나 최종 선임에는 실패했다. 올해 8월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의 시도도 무산됐다.

◇KB금융, ESG 전문가 2인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실제 선임 가능성은 ‘글쎄’

현재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은 KB금융이다. KB금융 노조는 지난 2017년부터 매년 노조추천 또는 우리사주 주주제안 방식을 활용해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며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 2017년에는 하승수 변호사를 노조추천 방식으로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으나 주총 표대결에서 17.73%의 찬성표만을 얻으며 패배했다. 이듬해에는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를 주주제안 방식으로 사외이사에 추천했으나 4.23%의 표를 얻는데 그쳤다. 지난해에도 백승헌 변호사를 주주제안 방식으로 추천했으나 이해 상충 문제가 발견돼 자진 철회한 바 있다.

올해도 KB금융 노조는 주주제안 방식을 통해 오는 11월 20일로 예정된 임시 주주총회에 2명의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기로 했다. 지난 10일 KB금융 우리사주조합은 윤순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와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이사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 교수와 류 대표는 모두 ESG(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전문가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KB금융 우리사주 조합장을 맡고 있는 류제강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국민은행 노조) 위원장뿐만 아니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홍배 금노위원장(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도 함께 참석해 KB금융 노조에 힘을 실어줬다. 특히 박 최고위원은 국민은행 노조위원장으로 있으며 KB금융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을 직접 추진한 인물이기도 하다.

민 의원은 “사외이사 추천은 회사만의 몫이 아니다”라며 “경영을 합리화하고 투명화 하려고 하는 시도”라고 강조했다. 이어 “KB금융이 우리사주조합의 제안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고 받아들여 줄 것을 부탁한다”며 “관련 부분에 대해 이번 국감 때 챙겨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치권 지원에도 불구하고 KB금융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룬다. 과반 이상 지분을 보유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노동이사제, 노조추천 사외이사 등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KB금융 외국인투자자 비율은 65.56%로 하나금융지주(64.06%), 신한금융지주(60.47%), 우리금융지주(26.01%)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또한 이미 지난 2017년 말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는 노조 사외이사 후보 추천 안건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국내 소액주주들 중에서도 노조추천이사제를 노동자의 지나친 경영 간섭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KB금융 노조 역시 이런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외이사 추천이 노조추천 방식이 아닌 주주제안 방식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추천 후보를 노동 전문가가 아닌 ESG 전문가들로 구성한 것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박홍배 금노위원장은 “주주제안 방식을 통한 사외이사 추천은 노동이사제, 노조추천이사제와 차이가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밥통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사외)이사를 내세운다고 호도하는 이들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소수 주주로서 경영 투명성 높일 수 있는 제대로된 이사를 추천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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