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동안 프랑스에서 생활하다 9년 전 서래마을에 정착해 프렌치 인테리어의 진수를 보여준 라브르베르 코리아의 이혜림 대표가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프랑스의 시골 별장을 떠올리며 꾸민 집은 소박하지만 아늑하다.

다이닝 공간에서 바라본 주방. 촛대 모양 샹들리에와 가구들은 대부분 프랑스에 거주할 때부터 사용하던 것들이다. /사진=김덕창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

1 통창이 있어 언제나 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거실. /사진=김덕창
2 창가 옆에 평소 아끼는 소품과 자주 읽는 잡지를 두는 사이드테이블을 들였다. 3 집안의 소품들 중에는 프랑스에서 공수한 것들이 많다. 대부분 시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고 벼룩시장에서 구매한 것도 있다. 마음에 드는 아이템은 경매를 통해 사기도 한다. 4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벽난로. 벽난로 위 촛대와 저울 등은 모두 프랑스 벼룩시장에서 구매했다. /사진=김덕창

 

서래마을의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살면서 프렌치 인테리어와 감각적 라이프스타일을 각종 매체를 통해 소개했던 이혜림 대표. 그녀가 얼마 전 정들었던 서래마을을 떠나 용산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렸다. “회사를 설립하고 바쁘게 살다 보니 좀 지쳤던 것 같아요. 2018년에는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는데 편히 잠을 못 잘 정도 였어요. 어느 날 침실에 누워 있는데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5 벽한쪽의 큰 선반은 책장으로 사용한다. 스트라 이프 패턴이 책장의 멋을 더한다. 6 시어머니 에게 물려받는 작은 책상. 과거 프랑스의 비서 들이 많이 사용했던 가구로 책상을 덮개처럼 여닫을 수 있는 구조다.<br>
5 벽한쪽의 큰 선반은 책장으로 사용한다. 스트라 이프 패턴이 책장의 멋을 더한다. 6 시어머니 에게 물려받는 작은 책상. 과거 프랑스의 비서 들이 많이 사용했던 가구로 책상을 덮개처럼 여닫을 수 있는 구조다. /사진=김덕창

 

프랑스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 생각하다가 갑자기 이 동네가 떠올랐어요. 그길로 바로 부동산중개사 사무소를 찾아갔죠.” 아담한 주택을 구한다는 그녀의 주문에 30 분 후 매물이 있다는 연락이 왔다. 부푼 기대와는 달리 제대로 된 관리 없이 방치돼 이른바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집’을 보고 남편 프랑소아 씨는 기겁(!)을 했지만 이혜림 대표의 눈에는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집을 보니까 상상력이 마구마구 발휘되 더라고요. 대문 앞에서 바로 감이 왔어요. 왠지 동네 반장이 살아야 할 것 같은 위치도 마음에 들었고요. 공간마다 어떻게 고치면 예뻐질지 머릿속에 그렸으니 주저할 필요도 없이 바로 계약했고, 남편에게 ‘이제부터 시작이야!’라고 선언했죠. 남편이 두 달 동안 직접 고쳐서 지금의 모습이 된 거예요” 대대로 가구를 만들어온 가구 장인의 후손이자 아티스트인 남편 프랑소아 씨의 손재주는 이미 서래마을 집에서 확인된 바. 그의 손끝에서 낡고 오래된 주택은 프렌치 별장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작고 아늑한 시골 별장에서 받은 영감

상부장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은 주방. 싱크대는 남편 프랑소아 씨가 직접 만들었다.<br>
상부장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은 주방. 싱크대는 남편 프랑소아 씨가 직접 만들었다. /사진=김덕창

 

차가 쌩쌩 달리는 강변북로 바로 안쪽 골목이지만 이상하리만치 집 안에 들어서면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로 들어온것 같다. 실제로 아침이면 새들이 소란스럽게 지저귀고 길고양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이 집은 프랑스의 시골 별장을 염두에 두고 수선한 것. “예전 어떤 잡지에서 알프스 근처에 별장을 짓고 사는 예술가의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제대로 된 가구 없이 직접 만든 가구들로 채운 집이었는데 여유롭고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저도 이 집을 고칠 때 그런 느낌을 살리고 싶었어요. 멀리 놀러 온 기분도 날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런 감성을 만들어보려고 남편에게 원래 있던 주방 가구들을 모두 뜯어내고 간단한 가구를 제작해달라고 주문했죠. 프랑소아가 사이즈를 재고 디자인한 다음 나무를 재단해서 만들었는데 제 마음에 쏙 들어요.” 어디 주방뿐인가. 빛바랜 갈색으로 도배됐던 공간의 불필요한 구조 물을 싹 걷어내고 하얀 벽과 프렌치 스타일의 몰딩이 인상적인 새로운 공간으로 만든 것도 프랑소아 씨다. 페인트칠, 타일 붙이기 등 손이 많이 가는 작업도 거의 대부분 혼자 힘으로 해냈다. 그중에서도 현관 바닥은 일부러 빈티지한 느낌을 표현하고자 타일을 깐 다음 망치로 두들겨서 깨뜨려 완성했을 정도로 공간마다 심혈을 기울였다.

 

1 시부모에게 물려받는 식기류와 커틀러리가 주방 그릇장에 가득하다. 2 이혜림 대표는 매년 직접 딸기잼을 만든다. 수제 잼을 발라 먹는 토스트는 소박하지만 꿀맛! 3 조리대 맞은편에 식기장과 커다란 테이블을 두고 다용도로 사용한다. 식기장에는 각종 그릇과 커틀러리를 보관하고, 테이블에는 자주 사용하는 식기류를 올려두거나 피자 도우를 반죽하는 등 필요에 따라 용도를 바꾸니 일반적인 상하부장이 딸린 주방이 없어도 불편 함이 없다. 4 주방 곳곳에 프렌치 스타일의 주방 소품들을 적절히 배치해두었다. 5 이 대표도 요리는 자신 있지만 집에서는 남편 프랑소아 씨가 주로 요리한다. 모카포트는 프랑소아 씨가 매일 사용하는 일상용품! 6 오픈형 선반에 같은 종류의 용품들을 가지런히 올려두는 것만으로 시크한 스타일링이 된다. /사진=김덕창

 

 

사랑을 주는 만큼 예뻐지는 공간

1 정원에서 친구들과 함께 소소한 파티를 즐기는 게 요즘 이혜림 대표의 가장 큰 낙이다. /사진=김덕창

 

새로운 곳에 정착한 후 이혜림 대표의 삶은 조금 바뀌었다. 여전히 생활용품 등을 수입하는 회사와 광고 회사를 운영하며 바삐 일하고 있지만 집에만 오면 속세와 동떨어진 느낌으로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됐다. 서래마을에서살 때만 해도 편히 잠들지 못해 고생했지만 이곳에서는 밤 10시만 되면 숙면을 취하게 돼 그녀 자신도 신기할 따름 이다. “동네 분위기를 모르고 이사를 왔는데 따뜻한 이웃들이 있어서 더 잘 적응했던 것 같아요. 시장이나 편의시설도 멀고 주차도 불편한데 만나면 웃으며 인사하는 이웃들이 있어서 마음은 훨씬 따뜻해졌어요. 저도 원래 그런 스타일은 아닌데 이사 올 때 이웃들에게 떡을 돌리게 되더라고요(웃음).” 그녀는 애정을 쏟은 공간이 좋은 곳이 된다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파리 사람들은 대부분 월세로 살지만 자기 집이 아니라고 해도 열심히 꾸미고 살아요. 중요한건 미래가 아니라 현재고 내가 오늘 먹고 자고 생활하는 곳에 공을 들여야 내 생활에서도 자신감이 나온다고 생각 해요. 저 역시 이 집을 만나고 고치면서 생활의 활력을 얻은 것 같아요.” 폐허 같았던 마당이 부부의 손길 덕에 각종 허브와 꽃나무가 무성한 초록 정원으로 탈바꿈했듯이 그녀의 삶도 새로운 공간에서 꽃피는 중이다. 요즘 이혜림 대표는 이태원에서 재미난 일을 준비하고 있다. 남편 프랑소아 씨가 고른 물건들을 파는 잡화점과 이 대표의 요리 레시피를 함께 나누는 공유 키친을 오픈할 계획. 역시나 부부가 직접 꾸미는 공간으로, 이 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소소 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오래도록 나누는 게 이혜림 대표의 작은 바람이다.

 

2 남편 프랑소아 씨가 손수 고친 화장 실. 액자형 거울과 오래된 수전이 인상적이 다. 3 우산과 장갑, 모자 등을 걸어둘 수 있는 홀스탠드를 현관에 두었다. /사진=김덕창
4 현관의 자투리 공간에도 샹들리에와 가구를 두어 프렌치 스타일로 꾸몄다. 5 대문에서부터 집까지 작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하는데 길가에 허브 등 각종 식물을 심어 비밀의 정원에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사진=김덕창

 

리빙센스 2020년 06월호

https://www.smlounge.co.kr/living

기획 심효진 기자 사진 김덕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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