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동안 프랑스에서 생활하다 9년 전 서래마을에 정착해 프렌치 인테리어의 진수를 보여준 라브르베르 코리아의 이혜림 대표가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프랑스의 시골 별장을 떠올리며 꾸민 집은 소박하지만 아늑하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
서래마을의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살면서 프렌치 인테리어와 감각적 라이프스타일을 각종 매체를 통해 소개했던 이혜림 대표. 그녀가 얼마 전 정들었던 서래마을을 떠나 용산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렸다. “회사를 설립하고 바쁘게 살다 보니 좀 지쳤던 것 같아요. 2018년에는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는데 편히 잠을 못 잘 정도 였어요. 어느 날 침실에 누워 있는데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프랑스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 생각하다가 갑자기 이 동네가 떠올랐어요. 그길로 바로 부동산중개사 사무소를 찾아갔죠.” 아담한 주택을 구한다는 그녀의 주문에 30 분 후 매물이 있다는 연락이 왔다. 부푼 기대와는 달리 제대로 된 관리 없이 방치돼 이른바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집’을 보고 남편 프랑소아 씨는 기겁(!)을 했지만 이혜림 대표의 눈에는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집을 보니까 상상력이 마구마구 발휘되 더라고요. 대문 앞에서 바로 감이 왔어요. 왠지 동네 반장이 살아야 할 것 같은 위치도 마음에 들었고요. 공간마다 어떻게 고치면 예뻐질지 머릿속에 그렸으니 주저할 필요도 없이 바로 계약했고, 남편에게 ‘이제부터 시작이야!’라고 선언했죠. 남편이 두 달 동안 직접 고쳐서 지금의 모습이 된 거예요” 대대로 가구를 만들어온 가구 장인의 후손이자 아티스트인 남편 프랑소아 씨의 손재주는 이미 서래마을 집에서 확인된 바. 그의 손끝에서 낡고 오래된 주택은 프렌치 별장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작고 아늑한 시골 별장에서 받은 영감
차가 쌩쌩 달리는 강변북로 바로 안쪽 골목이지만 이상하리만치 집 안에 들어서면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로 들어온것 같다. 실제로 아침이면 새들이 소란스럽게 지저귀고 길고양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이 집은 프랑스의 시골 별장을 염두에 두고 수선한 것. “예전 어떤 잡지에서 알프스 근처에 별장을 짓고 사는 예술가의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제대로 된 가구 없이 직접 만든 가구들로 채운 집이었는데 여유롭고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저도 이 집을 고칠 때 그런 느낌을 살리고 싶었어요. 멀리 놀러 온 기분도 날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런 감성을 만들어보려고 남편에게 원래 있던 주방 가구들을 모두 뜯어내고 간단한 가구를 제작해달라고 주문했죠. 프랑소아가 사이즈를 재고 디자인한 다음 나무를 재단해서 만들었는데 제 마음에 쏙 들어요.” 어디 주방뿐인가. 빛바랜 갈색으로 도배됐던 공간의 불필요한 구조 물을 싹 걷어내고 하얀 벽과 프렌치 스타일의 몰딩이 인상적인 새로운 공간으로 만든 것도 프랑소아 씨다. 페인트칠, 타일 붙이기 등 손이 많이 가는 작업도 거의 대부분 혼자 힘으로 해냈다. 그중에서도 현관 바닥은 일부러 빈티지한 느낌을 표현하고자 타일을 깐 다음 망치로 두들겨서 깨뜨려 완성했을 정도로 공간마다 심혈을 기울였다.
사랑을 주는 만큼 예뻐지는 공간
새로운 곳에 정착한 후 이혜림 대표의 삶은 조금 바뀌었다. 여전히 생활용품 등을 수입하는 회사와 광고 회사를 운영하며 바삐 일하고 있지만 집에만 오면 속세와 동떨어진 느낌으로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됐다. 서래마을에서살 때만 해도 편히 잠들지 못해 고생했지만 이곳에서는 밤 10시만 되면 숙면을 취하게 돼 그녀 자신도 신기할 따름 이다. “동네 분위기를 모르고 이사를 왔는데 따뜻한 이웃들이 있어서 더 잘 적응했던 것 같아요. 시장이나 편의시설도 멀고 주차도 불편한데 만나면 웃으며 인사하는 이웃들이 있어서 마음은 훨씬 따뜻해졌어요. 저도 원래 그런 스타일은 아닌데 이사 올 때 이웃들에게 떡을 돌리게 되더라고요(웃음).” 그녀는 애정을 쏟은 공간이 좋은 곳이 된다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파리 사람들은 대부분 월세로 살지만 자기 집이 아니라고 해도 열심히 꾸미고 살아요. 중요한건 미래가 아니라 현재고 내가 오늘 먹고 자고 생활하는 곳에 공을 들여야 내 생활에서도 자신감이 나온다고 생각 해요. 저 역시 이 집을 만나고 고치면서 생활의 활력을 얻은 것 같아요.” 폐허 같았던 마당이 부부의 손길 덕에 각종 허브와 꽃나무가 무성한 초록 정원으로 탈바꿈했듯이 그녀의 삶도 새로운 공간에서 꽃피는 중이다. 요즘 이혜림 대표는 이태원에서 재미난 일을 준비하고 있다. 남편 프랑소아 씨가 고른 물건들을 파는 잡화점과 이 대표의 요리 레시피를 함께 나누는 공유 키친을 오픈할 계획. 역시나 부부가 직접 꾸미는 공간으로, 이 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소소 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오래도록 나누는 게 이혜림 대표의 작은 바람이다.
리빙센스 2020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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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심효진 기자 사진 김덕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