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돈이 움직이지 않고 잠기는 게 문제”···기재부는 ‘속도 조절 필요’ 의견
고령화 등 구조적 재정 증가 상황서 ‘재원’ 마련 필요성 인식 커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3주년 대국민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3주년 대국민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위기에 따른 재정 정책이 확대되면서 그 속도와 쓰임새, 재원 마련이 주목받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국민과 피해 기업에 재정 정책을 통한 지원을 확대하면서 국가채무비율이 올라가고 있다. 

정부는 소상공인 긴급대출, 고용 안정 대책,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기업 지원 등을 위해 지금까지 1, 2차 추가경정예산으로 23조9000억원을 편성했다. 이에 국가채무는 819조원으로 본예산보다 13조8000억원 늘었다. 정부는 다음달 30조원 규모의 3차 추경을 계획하고 있다.

이미지=이다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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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 국가채무비율은 45% 내외로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수치는 정부의 2019∼2023년 국가재정운용계획 상 예측보다 2~3년 앞당겨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확대에 대해 위기 상황에서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특히 적시적소에 재정을 쓸 경우 오히려 국가채무비율을 낮출 수 있다고 했다.

◇ 한국 재정 여력, OECD 상위권

현재 한국의 재정 여력은 주요 국가들과 비교해 객관적으로 여력이 있다. 기재부가 지난해말 발표한 ‘2018년도 일반정부 부채 및 공공부문 부채’에 따르면 일반정부 부채(D2) 비율은 40.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09.2%에 비해 절반 이상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 33개국 가운데 네 번째로 낮다.

미국은 107%, 일본 224%, 영국 11%, 프랑스 123%, 독일 70%로 한국보다 높다. 일반정부 부채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부채를 포괄하는 국가채무(D1)에다 비영리 공공기관의 부채를 더한 수치다.

자료=기재부
자료=기재부

일반정부 부채에 비금융 공기업 부채까지 더한 공공부문 부채(D3)는 57% 수준으로 공공부문 부채를 산출해 제공하는 OECD 7개국 중 2번째로 낮다. 일본은 251%, 포르투칼 132%, 영국 92%다.

특히 한국은 부채의 질적 관리도 주요국과 비교해 양호하다. 한국의 일반정부 부채 중 단기부채 비중은 13.6%, 외국인 보유 비중은 12.5%로 다른 주요국들 보다 낮다. 이를 바탕으로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한 재정 확대가 지금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윤석천 경제평론가는 “정부의 재정 건전성은 주요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건전하다. 코로나19에 대응해 재정 정책을 보다 공격적으로 나설 수 있고 그래야한다”며 “기재부가 국가채무비율에 겁을 먹고 너무 소극적인 대응한다”고 꼬집었다. 윤 평론가는 국가채무비율의 기준이 얼마가 돼야 한다는 경제적 이론은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들도 한국의 재정 여력이 높다며 재정 확대를 권고한 바 있다. 지난해 10월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한국은 상당한 재정여력을 갖췄고 저금리 덕분에 재정 조달 부담이 줄었다며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도 지난해 5월 한국에 대해 확장재정이 성장세를 높일 것이라며 확장재정을 제안했다.

한국이 기축통화국은 아니지만 현재의 안정적인 원화가치가 적극적 재정확대를 펼칠 공간을 만들어 준다는 분석도 있다. 

윤 평론가는 “현재 한국의 달러대비 원화가치는 다른 신흥국들에 비해 매우 안정적이다. 통화가 안정적이라는 것은 재정 확대에 여유가 있다는 것”이라며 “재정 적자를 우려하는 것은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달러 유출을 우려하는 것인데 우리는 현재 달러대비 원화가 안정적이다”고 했다.

또 “미국, 유럽 등 다른 나라들은 급격히 재정 확대에 나서는데 우리만 보수적으로 하면 더 큰 위기를 부른다”며 “적극적 재정정책으로 적시적소에 돈을 잘 쓰면 소비와 세수를 늘려 결국 국가채무비율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조장옥 서강대 명예교수는 “지금은 위기 상황인만큼 정부가 돈을 써야할 때다”며 “다만 돈을 제대로 써야 한다. 보편 지원보다 소상공인과 저소득층에 집중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기재부는 늘어나는 국채 발행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홍남기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4월 2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만 아끼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재정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최대한 하겠다”면서 다만 “3차 추경까지 한다면 적자국채 발행에 따른 부담은 저희는 상당히 크게 느끼고 있다. 발행 규모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증가가 된다든가 하는 데에 대해서 재정 당국으로서는 조금 경계심을 갖고 검토가 이뤄져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국채 발행 속도가 너무 빠를 경우 국제사회에서 한국경제를 보는 시각, 시기적 문제 등이 있다”며 “속도가 빨라 우려가 있다면 내각에서 재정당국이 목소리를 내줘야 균형감이 있게 얘기가 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 고령화와 복지 증가 등 재정 확대 불가피···재원 마련 필요”

재정 확대가 구조적으로 필요한 상황에서 정부가 재원 마련을 위한 방안을 본격적으로 구체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세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이는 국민적 공감대와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문재인 정부는 재정 확대 정책을 코로나19 이전에도 추진해왔다. 문 정부는 복지 지출과 일자리 지출을 늘려 포용적 성장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혁신성장을 위한 동력도 강화하려고 한다.

특히 고령화와 저출산 등 사회구조적 요인으로 복지 지출 증가 등 재정 확대 정책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뒷받침 할 재원 마련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쓸 돈은 늘어나는데 조세 개편을 통한 재원 논의는 소극적인 상황이다.

박형수 교수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확장적 재정정책과 재정건전성’ 발표문에 따르면 고령화 효과만 반영해도 급속한 복지지출 증가는 중장기적으로 심각한 국가재정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코로나19 위기로 재정 쓰임새가 커졌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 같은 상황에서 재원 마련 계획을 본격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코로나 위기와 고령화 등 구조적 재정 확대 상황에서 정부는 증세를 통해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 다만 기업들의 경제 활동은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소득세와 누진율을 높이고 세금 내는 사람들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윤 평론가도 “보유세 등 불로소득에 대한 조세를 강화해 재정확대에 대한 세수기반을 확충해야한다”고 했다.

복지 확대를 위해 새로운 세목을 도입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복지에만 쓰는 세금인 ‘사회복지세’를 도입해 재정지출에 대한 불신을 낮추고 복지를 확대하자고 밝혔다. 사회복지세는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세액에 20%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다만 조세 개편은 국민적 공감대가 동반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박현석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지난 1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 “경제 위기가 심화하면서 그 충격으로 불평등이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적극적 역할과 사회안전망 확보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만큼 정부는 경제 위기 극복과 취약계층 보호에 적극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며 “이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조세 정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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