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창업자·재직자·투자자 대상 설문조사···51.1% "M&A로 스타트업 생태계 성장 영향 긍정적"·41% "독과점 현상으로 부정적 시선"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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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해외 인프라와 자본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리 있나.”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와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의 인수합병(M&A) 소식이 발표된 직 후 스타트업 업계는 이같은 반응을 보냈다. 국내 배달앱 1‧2위를 다퉜던 배달의민족과 요기요가 한솥밥을 먹게 됐다며 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다수의 스타트업 업계 종사자들은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와 우아한형제들의 M&A)를 국내 생태계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라며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투자 규모가 작은 한국 시장에서 어쩔 수 없던 행보라는 견해도 나온다.

우아한형제들은 요기요, 배달통 모회사인 딜리버리히어로에 국내 투자자 지분 87%를 매각했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딜리버리히어로는 우아한형제들의 기업가치를 40억달러(약 4조7500억원)로 평가했다. 이는 국내 IT기업 M&A 사례 중 최대 규모다. 우아한형제들과 딜리버리히어로는 우아DH아시아를 세워 11개국 배달 시장에 뛰어든다.

시사저널e는 스타트업 창업자, 재직자, 벤처투자자, 지원기관 종사자 100여명을 대상으로 12월 23~26일까지 ‘배달의민족과 딜리버리히어로 인수합병’ 이슈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스타트업 종사자 중 10명 중 9명은 이번 M&A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

그 중 스타트업 업계 종사자 51.1%는 배달의민족과 딜리버리히어로의 합병을 ‘긍정적인 의견에 가깝다’고 답했다. 반면 ‘부정적인 의견에 가깝다’라고 답한 스타트업 종사자는 41.4%로 집계됐다. 미세한 차이지만 긍정적인 시선으로 배달앱 M&A를 바라보는 답변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 “국내 시장 좁고 M&A‧투자 적어, 외국계 자본 유입 긍정적”vs“배달 독과점 현상으로 부정적 영향 피할 수 없어”

우아한형제들과 딜리버리히어로의 합병 소식에 긍정적인 입장인 스타트업 종사자 38%는 이번 M&A로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가 성과를 이뤄냈다’고 답했다. 다음으로 ‘배달의민족이 성장하면 국내 배달 스타트업 시장도 함께 성장할 것(24%)’, ‘토종 배달앱의 글로벌 진출에 도움이 될 수 있다(23%)’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과거 스타트업 운영했던 한 창업가는 “국내 1위 기업으로 성장해도 제도나, 내부 역량에서 해외 진출의 한계가 있다. 국내에서 기반을 다진 뒤 해외까지 서비스를 확장한 서비스가 거의 없다”며 “독과점과 해외자본인수는 우려되나 해외진출 기회 확보와 국내 자본으로는 성장의 한계가 있다는 두 가지 이유로 (기업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햇다.

현재 스타트업을 운영 중인 한 대표는 “EXIT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으로 한국 스타트업에 대한 대규모 자본의 투자가 위축돼 있다”며 “이번 사례는 한국 스타트업 시장에 대한 인식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스타트업 창업가도 “해외 자본을 국내로 끌어온다는 데서 긍정적”이라며 “국내는 투자 자본 규모도 아직 크지 않고 스타트업이 투자받는 데 법적인 제약도 많다”며 “시장을 넓히려면 이런식의 간접적 해외진출이 필수적이라 본다. 그만큼 국내 스타트업이 해외에서도 인정받는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시장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다. 스타트업이 투자 회수(EXIT)하는 방법으로는 상장(IPO)과 M&A가 있다. 그러나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는 M&A 사례가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간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국내 대기업들이 M&A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규제나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 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외국계 자본이 필수불가결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 스타트업 재직자는 “대기업의 시장 독점, 산업 규제, 국내에서 대규모 투자가 어려운 점 등 여러가지 상황을 봤을 때 외국계 자본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국내 대기업이 M&A에 소극적이라 적극적인 외국계 기업이 기회를 잡는 것”, “국내 시장은 시야가 좁고 기회도, 투자도 야박하다. 창업자 입장에서 글로벌 M&A를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는 답변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배달의민족, 요기요, 배달통 등이 국내 배달 점유율을 독점해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앱 데이터 분석 서비스가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배달의민족, 요기요, 배달통 실제 사용자 수를 집계한 결과 1110만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 배달 앱 시장 점유율 98.7%에 달한다. 딜리버리히어로는 배달 업계를 거의 독점하는 셈이다.

40%를 넘는 스타트업 종사자들도 이를 걱정했다.응답자 중 45.6%는 “국내 배달앱 점유율 98%를 가져간 딜리버리히어로 독과점 현상이 바람직하지않다”고 답했다. 15.6%는 “가맹점주의 수수료 인상으로 음식값과 배달비가 올라갈까봐”라고 답했고, “국내 기업이 외국계 기업에 팔린 것에 대한 배신감과 거부감”이라는 응답도 11%였다.

한 스타트업 창업가는 “어느 산업이든 과점을 넘어 독점이 형성되면 반드시 득보다는 실이 많다. 배달의민족이 (독과점 현상을) 인지하지 못했을 리 없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쉽게 기업합병을 승인받기 힘들다는 것을 예상했겠지만 왜 합병을 했을지 의심스럽다”라고 지적했다.

스타트업 지원기관 종사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수순일 수도있지만 지마켓 등 온라인마켓이 이베이에게 거의 합병된 상황에서 배달 시장까지 다 외국계 기업이 인수하고 있다”며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선정했던 대형 스타트업들이 외국계에 팔렸다는 것에 대한 섭섭한 마음도 든다”고 토로했다.

M&A를 부정적이라고 보는 스타트업 재직자는 “딜리버리히어로는 그 흔한 재무재표 조차도 공개되지 않는다. 국내에서 얼마를 벌어들이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에 점차 규제에서도 자유로워질 것”이라며 “결국 (독과점 현상으로) 국내 가맹점주와 배달대행 스타트업들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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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열한 배달 시장···배민과 쿠팡 간 경쟁 당연하다”는 시선

한편 딜리버리히어로의 배달의민족, 요기요, 배달통, 푸드플라이를 제외하고 국내 배달앱 점유율 4위를 차지하는 기업은 쿠팡이다. 쿠팡은 지난 2018년 11월 소프트뱅크로부터 2조억원에 달하는 투자 유치를 받은 뒤 2019년 5월부터 서울 일부 지역에서 음식 배달 서비스 '쿠팡 이츠'를 서비스하고 있다.

배달의민족은 보도자료를 통해 인수합병 소식을 알리며 “‘일본계 자본을 가진 쿠팡’이 각종 온라인 시장을 파괴하는 역할을 해 왔기 때문에 토종 앱이 살아남기 위한 글로벌 연합군이 결성됐다”고 IT업계 관계자의 멘트를 인용했다.

배달의민족과 쿠팡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 초 쿠팡이츠 영업 담당자들이 배달음식점주를 대상으로 “배민과의 기존 계약을 해지하고 쿠팡이츠와 독점 계약을 맺으면 수수료를 대폭 할인해 주는 것은 물론, 매출 하락시 최대 수천만 원에 이르는 현금 보상까지 해 주겠다”며 제안을 한 사례가 드러났다. 이에 배달의민족은 공정거래법 제23조(불공정거래행위 금지) 위반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치열한 배달앱 경쟁 체제에서 기업 간 공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스타트업 종사자 47.8%는 “배달의민족이 충분히 쓸 수 있는 문장이었다”고 답했다. “쿠팡이츠 담당자의 영업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스타트업 종사자 56.7%는 “후발주자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응답했다.

한 스타트업 홍보 담당 재직자는 “배달의민족이 보도자료에 쿠팡을 돌려 저격한 것이 대인배같아 보이진 않지만 입장은 이해된다. 앞서 쿠팡이츠와의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배달앱 시장은 그동안 후발주자가 진입하기 어려운 시장이었다. 스타트업 간 경쟁은 당연하고, 오히려 사용자는 (경쟁으로 인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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