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일자리예산 올해보다 21.3% 늘어···역대 최고 재정 투입
노인일자리에 1.2조원 편성···‘부정적 일자리 지표 감추기’ 지적도

정부가 내년도 일자리예산에 사상 최대 규모인 25조8000억원을 편성했다. / 사진=셔터스톡
정부가 내년도 일자리예산에 사상 최대 규모인 25조8000억원을 편성했다. / 사진=셔터스톡

정부가 내년에 일자리 부문에 사상 최대 규모인 25조7697억원의 예산을 편성하면서 세금으로 만드는 이른바 ‘단기 일자리’가 내년에도 쏟아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노인 일자리에 1조원이 넘는 예산이 편성된 반면, ‘고용 허리층’으로 불리는 40대를 위한 예산은 미미한 것으로 드러나 정부가 내년에도 고용의 질보다 양에 집중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0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일자리 예산은 25조7697억원이다. 이는 올해 일자리 예산 21조2000억원 보다도 21.3%(4조5000억원) 확대된 규모다. 특히 일자리 예산을 보면, 직접일자리사업은 올해 2조779억원에서 내년 2조9241억원으로 40% 이상 늘었다. 그 중에서도 정부는 노인일자리 규모를 올해(61만명)보다 13만명 늘어난 74만명으로 목표를 잡았다.

◇사회서비스 일자리 지속 확대···노인 일자리, 올해 61만개→2020년 74만개

정부는 2023년까지 일자리분야 재정투자에서도 돌봄·안전 등 수요가 증가하는 분야를 중심으로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우선 정부는 2022년까지 34만개로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확대하고, 청년·신중년·노인 등 연령별 일자리도 2021년까지 80만개 확대해 연령별 일자리 애로해소를 지속적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내년도 노인 일자리가 대폭 확대됐다는 점이다. 정부는 내년도 직접일자리 예산 가운데 1조2000억원을 노인 일자리로 배정했다. 올해 8220억원보다 3780억원의 재정을 더 투입해 노인일자리를 13만개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로써 올해 61만개였던 노인 일자리는 내년 74만개로 늘어나게 된다.

정부가 노인일자리 사업에 집중하는 표면적 이유는 고령화에 따른 각종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국가로 꼽히고 있어 정부가 노인 복지에 힘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통계청 분석에 따르면, 2040년이 되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현재 15%에서 34%로 늘어나게 되고, 2067년에는 이 비중이 47%까지 치솟게 된다.

하지만 노인일자리는 대부분 단기일자리에 저임금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많아 노인 빈곤과 실업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노인일자리는 사업유형에 따라 주로 저소득층이 참여하는 공익활동(월 27만원), 재능·나눔활동(월 10만원) 등으로 분류된다.

실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내년 노인일자리의 70%는 올해와 마찬가지로 월 30시간의 공익활동이 차지하고, 민간기업과 연계한 일자리는 17%에 불과하다. 또 노인일자리는 최대 9개월까지 일할 수 있게 편성돼 있어 계약기간이 끝나면 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노인은 또다시 빈곤난을 마주하게 된다.

2020년도 일자리예산안. / 자료=고용노동부, 표=이다인 디자이너
2020년도 중앙부처 일자리예산안. / 자료=고용노동부, 표=이다인 디자이너

◇고용 허리층 40대 지원은 미미···“장기적인 일자리 정책 마련 필요”

반면 ‘고용 허리층’으로 불리는 40대 중심의 일자리 예산은 여전히 미미하다. 중장년층의 경력을 감안해 취업 가능 방향을 상담해주는 생애경력설계서비스(31억원), 귀농·귀촌 활성화를 위해 교육하는 사업(36억원)으로 총 67억원의 예산이 전부다.

‘일자리 정부’를 내세운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첫 예산 편성 때 일자리에 19조2000억원을 투입해 올해 21조2000억원으로 확대했다. 세금으로 충당된 일자리 효과는 취업자 수 증가로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7월 고용동향을 보면 취업자 수는 1년 전 대비 29만9000명(1.1%) 증가해 2018년 1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연령대별로 보면 60대 이상 취업자 수는 정부 재정으로 운용되는 공공일자리, 보건·사회복지 분야 일자리 수요 증가로 지난해보다 37만7000명이나 늘었다. 이 중 65세 이상 취업자 수는 21만1000명에 달했다. 하지만 40대(-17만9000명)와 30대(-2만3000명)의 취업자 수는 2017년 10월부터 22개월째 동반 추락 중이다.

물론 미중 무역전쟁과 한일 경제갈등에 반도체 불황으로 악재가 겹치면서 고용 위기는 여전한 상황이지만, 재정을 투입하는 단기적인 노인일자리보다 고용의 질을 높인 장기적인 일자리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취업자 수 확대를 위한 노인일자리가 노동시장의 건전성과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해결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정부의 책무”라면서 “급속한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내년에는 44만명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저소득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를 확대해 취약한 사회안전망을 보완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세금으로 만들어내는 일자리는 가급적 단기간 많은 분들에게 혜택을 줘야하기 때문에 단기 일자리로 내몰리게 돼 결국 복지성에 불과하다”며 “청년·노인층 모두 배우는 게 아닌 시간 떼우기식 일자리로, 일자리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정작 이들에게 필요한 직업훈련, 고용안정서비스는 투자가 미미해 취업자들로부터 관심을 못 받고 있고 실업자를 해소하는 일자리사업도 우리나라는 현재 없는 상황”이라며 “실업, 미취업에서 탈출하는 길을 만들어준 게 아니라 실업률을 조절하는 일자리 재정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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